올해도 어김없이 ‘길 위의 희망찾기’(이하 ‘길희망’)가 시작됐다. ‘길희망’은 ‘청소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행’을 모토로, 아름다운재단과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이 지원하는 청소년 여행지원 프로그램이다. 여행 경비는 물론 여행전문가들의 멘토링까지, ‘길희망’의 든든한 지원은 여행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놓칠 수 없는 행운의 기회로 회자되고 있다.
2017년 ‘길희망’에 지원한 청소년단체는 총 94개 팀. 이들 중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선정된 15개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여수․영월 등지를 돌며 각 지역마다 어울리는 노래로 뮤직비디오를 찍고 오겠다는 ‘길 위에서 음악 찾기’, 메이크업아티스트․경찰․천문학자 등 자신이 꿈꾸는 직업의 롤 모델을 찾아가는 ‘Dream Job으러 가드래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일본 애니 성지순례 ‘덕후하라’…. 프로젝트명부터 톡톡 튀는 십대 여행자들은 지난 5월 20일과 21일, 공주한옥마을에서 개최된 ‘길희망’ 열기캠프에 참여해 본편이 더욱 기대되는 짜릿한 여행 예고편을 선보였다.
노래하고 기록하는 여행의 기술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찾아보는 것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라면, 이미 여러분의 여행은 시작된 겁니다. ‘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이 새로운 시선, 생각, 느낌을 갖는 계기가 되길,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아름다운재단 한태윤 팀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열기캠프는 참여단체 소개 및 전체일정 공지 후 본격적인 ‘여행의 기술’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팀별로 모여 앉았던 아이들이 각자 자신이 지원한 사진, 드로잉, 음악반으로 흩어지는 시간. 다른 단체, 처음 만난 친구들과 섞이는 자리인 만큼 각각의 교실엔 새 학기처럼 다소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수줍은 미소와 호기심어린 눈길을 나누며 경직된 마음과 안면근육을 풀어나가는 것이 여행의 첫걸음일 터. 아이들은 그렇게 ‘여행의 기술’의 첫 장을 펼쳤다.
사진 워크숍 진행을 맡은 ‘기억발전소’는 여행을 잘 기억하고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사진 활용법을 제시했다. 가물가물한 수년전 여행의 기억이 당시의 사진 한 장을 매개로 피어오르는 경험은 누구나 공감하는 것. ‘남는 건 사진 뿐’이란 말도 결국은 기록이야말로 기억의 원천임을 강조하는 말이 아닐까. 휴대폰 카메라를 기준 삼아 구도, 노출 보정 등의 기초적인 이론수업을 진행한 후 조를 나눠 한옥마을과 공산성, 무령왕릉으로 출사를 나갔다. 따가운 초여름 뙤약볕 속에서도 카메라를 든 아이들은 그날 배운 촬영 팁을 적용, 프레임을 활용하거나 원근감을 조절하며 시선의 재발견을 즐겼다.
음악 워크숍은 여행을 테마로 아이들이 직접 곡을 만들고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됐다.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인트로-벌스-훅-브릿지-엔딩으로 이루어진 곡 구성을 배우고, 서정적인 포크송 가사와 직설적인 랩 가사를 비교해 들어보며 노랫말 작업의 감을 살짝 맛본 후 3개 조로 나뉘어 여행 노래 작업에 들어갔다. 각 조마다 음악선생님이 한명씩 배치됐지만, 주도적으로 곡 작업을 이끈 건 기타리스트를 꿈꾸거나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하지만 흥얼거림만으로도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의 참여 역시 돋보였다. 함께 멜로디를 쌓고 가사를 입히는 과정 속에 처음 만난 아이들은 금세 친구가 됐다.
드로잉 워크숍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집중과 몰입의 시간을 경험했다. 구도 잡는 법, 강조와 생략을 비롯한 풍경 스케치 이론을 배운 후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챙겨들고 한옥마을 곳곳으로 흩어진 청소년들은 자신이 담고 싶은 풍경 앞에 앉았다. 어떤 화폭엔 풀꽃과 나무가, 또 어떤 화폭엔 잘생긴 한옥이 담겼다. 누군가는 섬세한 디테일로, 또 누군가는 굵직한 선으로, 기록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아이들이 사진, 음악, 드로잉을 매개로 여행의 기술을 배우는 동안, 인솔교사들을 대상으로 사업수행 가이드 및 공정여행 워크숍이 별도로 진행됐다. ‘자발성’에 방점이 찍힌 청소년 여행의 인솔교사들에겐 섬세한 멘토링이 요구된다. 여행 기획부터 여정, 이후 결과보고서 제출까지, 아이들 스스로 책임감 있게 진행하고 마무리 짓도록 독려하되 리드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개봉박두! 각양각색 15편의 여행기
저녁식사를 마친 후 처음 집결했던 대강당에 모였다. 오늘 하루 배우고 즐긴 여행의 기술을 공유하는 시간. 그림반과 사진반 친구들의 작품을 스크린에 띄워 어느새 추억이 된 하루를 되짚었다. 시선을 달리해 포착해낸 결정적 순간과 마음이 지긋이 머물렀던 풍경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을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음악반은 ‘길희망’의 테마곡으로 길이 남을만한 자작곡을 무대에 올렸다. 초등학생 때부터 기타를 쳤던 친구든, 이 워크숍을 통해 우쿨렐레를 처음 잡아본 친구든, 여행의 설렘을 담아낸 노래 속에 조화로이 어우러졌다. 공감의 언어로서 음악이 가진 힘은 낯선 길 위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이튿날 오전엔 한국응급처치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안전교육을 이수했다. ‘4분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심폐소생술의 가치를 새기며, 흉부압박과 인공호흡, 자동제세동기 사용법을 꼼꼼히 배웠다.
열기캠프의 마지막 이벤트는 보물찾기. 알록달록한 보물쪽지 속에 숨겨진 비밀은 여행 격언과 공정여행 수칙이었다. 쪽지 속 내용이 겹치지 않게, 격언과 수칙을 가장 많이 모은 팀부터 선물을 차지하는 시스템. 포춘 쿠키를 쪼개듯 풀어 본 보물쪽지 속엔 다음과 같은 글귀들이 담겨있었다.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기부해요.”
“여행지의 문화와 역사, 경제와 사회적 상황에 관심을 가져요.”
“무분별하게 지역의 식물을 채취하거나 동물을 혹사시키는 투어에 참여하지 않아요.”
“행복하게 여행하려면 가볍게 여행해야 한다. -생택쥐베리”
“혼자 걸으면 더 빨리 갈 수 있다. 하지만 함께 가면 더 멀리 간다. -아프리카 속담”
여름 한가운데 펼쳐질 15편의 여행기. 그 한 편, 한 편 마다 다양한 빛깔의 여행 스케치가 깃들 것이다. 두 친구가 나란히 앉아 바라본 풍경이 전혀 다른 두 장의 그림으로 재탄생했던 드로잉 시간처럼, 사진 속에 담긴 다양한 시선처럼, 청소년들이 채집해올 ‘길 위의 희망’ 역시 그와 같을 터. 처음 잡은 악기를 한 두 시간 만에 연주했듯, 새로운 경험 앞에 왕성한 흡수력과 소화력으로 대응할 어린 여행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이 웃고 꿈꾸고 여행하며 쭉쭉 빨아들일, 길 위의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글 고우정 ㅣ 사진 임다윤, 신병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