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사업명에도 드러나듯 공익단체의 프로젝트에 ‘스폰서’가 되어 주는 지원사업입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은 연중 12개월, 매월 접수를 받아서 선정합니다.) 사업 기간이 3개월로 다소 짧지만 그만큼 알차고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으로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
안녕하세요.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입니다.
먼저 간략하게 단체소개 드리자면,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고용평등상담, 법률지원, 교육, 정책연구, 기타 활동을 통하여 여성 노동시장에서의 권익보호, 지위향상을 통한 성평등한 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입니다. 2000년 12월에 설립하였으며 주로 공인노무사, 변호사, 연구자, 실무자 등 330여명의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자발적으로 참여,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특성화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해오던 노동법강의를 작년부터 청년노동자를 대상으로 ‘청년직장인을 위한 노동법강의’, ‘청년직장인을 위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청년노동자 대상의 사업을 구상하게 됐고, 일환으로 「청년감정노동자 활력 프로젝트-청년들의 버킷리스트」라는 사업으로 「아름다운재단-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사업」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 한국사회 주요 노동문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에 감정노동자 보호조치와 법률 제정 권고를 했지만 아직 뚜렷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또한 서구적인 산업구조 변화 흐름에 따라 ‘서비스사회화’ 현상이 나타나듯, 서비스산업 비중과 종사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고객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과장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노동이 지속·반복적으로 유지될 경우 감정 격차, 부조화 현상으로 정신적 문제(우울증, 탈모, 박탈감, 공황장애 등)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고 심하면 자살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 이전에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관리’가 필요합니다.(출처 : 한국 사회 감정노동 실태와 개선방향 연구(2014))
프로젝트 기획에 앞서 약 60여 명의 청년감정노동자들에게 ‘돈과 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주제로 설문을 했습니다. 조사한 결과 여행, 운동, 취미개발을 위한 체험활동, 친구들과 밥 먹기, 영화보기 등 대체적으로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항목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과중한 노동에 얽매여 개인 여가가 없거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스펙 쌓기에 시간을 할애하거나 돈과 시간이 있는 상황에서의 상상력 부재를 의미했습니다. 청년감정노동자 활력 프로젝트-청년들의 버킷리스트는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관리’에 초점을 맞춰 청년감정노동자들에게 감정노동에 대한 문제를 인식시켜줌과 동시에 설문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 항목들을 프로그램화하여 함께하는 가치, 감정노동에 대한 해소에 도움을 주고 면역력과 대응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하게 됐습니다.
3개월의 사업 기간 동안 취미, 요리, DIY, 여행, 운동의 주제로 5가지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마지막 워크숍파티 형식으로 사업을 마무리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각 프로젝트의 명칭은 ‘우쿨렐레해볼렐레’, ‘맛좀볼끼니’, ‘업사이클링’, ‘내가몰랐던서울’, ‘야(夜)한산행’, ‘청년들의버킷리스트’였습니다.
‘우쿨렐레해볼렐레’는 청년감정노동자들에게 취미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원데이 클래스로 일정 비용을 내면 장소, 악기, 강습까지 제공해줍니다. 우쿨렐레 광고에선 1시간 클래스를 배우면 3~4곡 연주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하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악기치고 비교적 쉽게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고 흥미를 붙이기엔 적당한 시간이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후 우쿨렐레 학원을 등록해 우쿨렐레를 배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맛좀볼끼니’는 불규칙적이고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청년감정노동자들을 모집해 팀을 나눠 함께 요리하고, 함께 먹자는 취지로 기획했습니다. 싱크대 4개가 있는 쿠킹 스튜디오를 대관했습니다. 메뉴 구성은 감바스, 닭다리스테이크, 쫄면, 삼겹살김밥, 대패삼겹살덮밥, 차돌숙주볶음이었습니다.
업사이클링(재사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의 상위 개념으로, 기존에 버려지던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더해(upgrade) 전혀 다른 제품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recycling)을 말한다.)는 무언가 소유하거나 더 큰 소유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청년감정노동자들에게 소유적 소비보다 존재적 소비를 지향하도록 돕자는 취지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동대문에서 재료들을 사서 팔찌를 만들었고, 버려진 가죽을 이용해 카드지갑을 만들었습니다.
‘내가몰랐던서울’는 설문조사 결과 청년감정노동자들이 여행에 대한 욕구가 높았던 점을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여행 컨셉으로 계획을 짜게 됐고 그러던 중 경복궁을 다시 가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바비큐파티, 경복궁투어와 옥상(루프탑)에서의 바비큐파티를 결합시켜 진행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성인이 된 후, 시간을 내어 경복궁을 다시 방문하기가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청년감정노동자들을 모집해 경복궁투어를 진행했고 경복궁 투어 도중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옥상(루프탑)장소로 이동해 바비큐 파티를 했습니다.
‘야(夜)한산행’는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기획단 중 한 명이 어느 산에 올라갔는데 서울 야경이 그렇게 좋더라고 해서 고민해보게 됐습니다. 야밤에 혼자 산에 올라가기도 쉽지 않고,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사진들을 보니 야경이 정말 끝내줬습니다. 후보지는 응봉산과 인왕산이었습니다. 청년감정노동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산행할 곳을 경복궁역 근처의 인왕산으로 결정했습니다. 왕복 1시간 정도 소요되고, 계단으로 돼 있어서 정말 운동도 됐습니다. 등산로에 불빛이 전혀 없어서 플래시를 필수로 가져와야 했습니다. 사전답사를 진행할 때 시계가 좋아 잠실 롯데타워까지 보였지만 프로젝트 진행 당일 시계가 좋지 않아 전체적으로 흐릿했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 있었습니다.
위와 같이 취미, 요리, DIY, 여행, 운동 이 5가지 주제의 프로젝트는 2개월 보름 동안 단발성 프로젝트로 진행됐습니다. ‘맛좀볼끼니’에서 요리를 다 하고 소감을 나눌 때, ‘자신은 너무 결과에 집착한 것 같았다. 다른 분들은 과정을 즐기고 함께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진행이 매끄럽고,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이 더 많은 만족감을 얻고 돌아가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사업기간이 끝나고도 지속적인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 회의 때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하고 난 후에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즐기자고 기획한 프로젝트가 어느새 목적을 찾고, 의미를 찾고,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한, 두 번 진행하다 보니 맴돌던 고민이 해소되었습니다. 참여자들도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을 했고, 결과물을 내기 급급한 프로젝트가 아닌 마음 내려놓고 활동할 수 있는 이런 프로젝트를 원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일터에서 고립돼있던 청년감정노동자들의 소소한 탈출구가 됐고, 적극적으로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프로젝트에 의견을 주고 참여했습니다. ‘내가몰랐던서울’ 프로젝트 진행 후엔 처음 만났던 프로젝트 참여자들끼리 지속적인 친목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가 끝난 현재, 새로이 기획단을 꾸려 다시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사업 지원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정하고 합의된 목적을 얻으려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더라면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기획취지에서 말했듯이 위와 같은 활동들은 ‘사후적 관리’에 부합하는 활동들입니다. 감정노동 인식 공유와 일터에서 느낀 감정노동고충을 토로하고, 개인적 대응력과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사전적 예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활동들과 함께 매 프로젝트 앞부분에서는 감정노동 개념과 감정노동곡선(자신이 일터에서 느낀, 느꼈던 감정노동 상태를 곡선화하여 종이에 그림. 그린 것을 바탕으로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다뤘습니다.
서비스산업에서 노동자가 ‘고객과의 상호작용’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숨기는 노동을 감정노동의 개념이라고 말했습니다. 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다양한 청년감정노동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과연 감정노동이 서비스산업 직종에서만 발생하는 노동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노동을 수행하는 어느 조직에서나 과연 감정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자신의 인사평가에 영향을 주는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었을 때, 조직문화에 자신을 끼워 맞출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조직에서의 자신은 지워지고 감정 격차, 부조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존재하는 것은 미스 김, 이 대리, 박 사원입니다. 감정노동의 개념을 서비스산업 직종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확대하니 더 많은 청년감정노동자들을 만나게 되고 더 다양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청년감정노동자들에게 감정노동 인식 공유와 감정노동곡선을 다루면서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감정노동 개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감정노동을 이해시키고, 다른 사람의 감정노동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돌아갈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년감정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노동자 권리에 대한 이해와 청년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모인 단체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가 마지막 ‘청년들의 버킷리스트’(워크숍파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계획에 없던 청년유니온, 알바노조 강연을 급하게 준비하게 됐습니다. 강연에서는 청년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모인 두 단체에 대한 소개와 활동가, 여성활동가로서의 감정노동을 다뤘습니다. 40여명 정도의 참여자들이 모였는데 청년이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스스로 체감하면서 합리화하고 내재화시킨 참여자들이 많아 강연이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물꼬를 틔워주고,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나누고 타인의 고통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줬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고, 청년들의 버킷리스트 이외에도 자신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각자의 일터에서 고립된 청년감정노동자들이 연대하고 고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l 사진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