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방에 대여섯 명이 들어서자 김순자(가명, 82세) 어르신이 환히 웃으며 환대했다. 그녀는 한 명, 한 명 편히 앉도록 자리를 살펴주었다. “화장실은 저쪽”이라며 공간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 있는 사람이 보이자 “안 무너져요, 들어오세요” 유쾌한 농담을 던지며 자신이 앉아있던 자리까지 양보하려고 일어섰다. 누군가 “오늘 주인공이시니 편한 데 앉으시라”며 만류했다. 그 소리에 그녀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주인공은 무슨, 나그네죠” 짧지만, 울림을 주는 한마디였다. 그녀의 삶의 철학이 묻어나는 말이기도 했다. “열여덟 살에 우리 아버지 심부름 와가지고 고모네서 하룻밤 자니까 그날로 집에 못 가는 거예요” 그녀에게 6.25 전쟁은 하룻밤 사이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그 길로 가족과 영영 헤어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홀로 남은 서울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일궈야 했다. 지난 팔십여 년 그녀의 인생은 홀로서기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도 독실한 신앙생활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주춧돌이었다. “직장이 성당”이라 말할 만큼 매일 성당에 나간다. 두꺼운 성경책도 네 번이나 정독했다. “이제 편히 땅에 묻힐 때도 됐건만, 하느님이 데려갈 생각이 없다”며 허허 웃으면서도, 제 손으로 갈 수는 없다는 게 그녀의 신념이다. 나그네지만 머무르는 것도 떠나는 것도 제 뜻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유의 성실함은 독서에서도 드러난다. 험악한 이야기가 많은 TV보다는 책을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게 좋다. 여유가 생기면 책도 사본다. 얼마 전에는 「불평 없이 살아보기」란 제목이 끌려 사 왔다. 일생을 ‘받아들임’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녀의 담담하고도 겸손한 철학과 잘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다.
매일 새벽, 미사에 가기 전에는 폐지를 줍는다. 그녀는 자기 일을 “재활용한다”고 표현한다. 그날도 새벽같이 나가 재활용을 해서 팔백 원을 벌었다. 새벽 네 시에는 길을 나서야 작은 종이 상자라도 주울 수 있다. 그 자체로도 여든 노인에게는 힘든 노동이지만, 얼마 전 허리 수술한 그녀에게는 더 고되다. 하지만 일을 멈출 수가 없다. 현재 그녀가 정부에서 받는 지원은 월 이십만 원의 기초연금이 전부다. 그중 월세로 십육만 원이 나가고 나면, 사만 원이 남는다. 그 돈으로는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일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다.그녀의 수입 중 8할이 월세로 나가지만, 두 평 남짓한 방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제 구실을 못한다. 단열이 안 되는 벽은 열기와 한기를 그대로 흡수한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 낮에 어디서 지낼지 매일 연구”할 지경이다. 곧 돌아올 겨울도 걱정이다. 매일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쉽지 않다. 허리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계단을 오가는 일이 힘들 뿐 아니라 자칫 헛디디면 위험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얼마 전 집주인은 월세를 올리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갔다. 언제 또 이 집에서 나가야할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그녀의 손을 잡아줄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존엄한 노후를 위한 지원
황인경 사회복지사(마포어르신돌봄통합센터)는 김순자(가명)어르신과 같은 노인을 만날 때마다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절절히 느낀다고 한다.
“김순자(가명) 어르신은 자식과 연이 끊겨 아무 지원도 못 받는 상태인데도, 호적상 자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세요. 차상위 계층이라 의료혜택만 받을 수 있어요. 근데 그마저도 비수급 항목이 많아요. 얼마 전 허리 수술을 하시면서 빚이 생겼는데, 이 생계비 지원 덕분에 갚을 길이 생겼어요.”
아름다운재단은 2003년부터 김순자(가명) 어르신과 같이 홀로 생계를 이어가는 복지 사각지대 어르신들에게 최대 3년간 매달 십만 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노인 빈곤율이 50%에 가까운 한국 사회에서 노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 함께 풀어 나가야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김은영 팀장(마포어르신돌봄통합센터)은 이 ‘홀로 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을 말 그대로 의식주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의식주가 해결되어야만 살 수 있고 또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녀가 봐온 노인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장에서 김은영 팀장은 어르신들에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발판’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
실제로 생계비 지원은 그런 발판이 되고 있다. 매달 받는 십만 원으로 병원비를 갚기도 하고, 공과금을 내기도 한다. 생활의 필요에 맞게 돈을 쓸 수 있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 돈이 아니면 병원비를 갚을 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현금으로 생계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황인경 사회복지사는 현금 지원을 당사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지원이라 말한다.
“얼마 전에 책을 사셨다고 하는데, 어르신이 좋아하는 책은 후원 물품으로 들어오기 어려워요. 현금 지원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현물 지원이 많고, 현금 지원은 매우 드물어요. 현물 지원도 필요하지만 당사자에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생계비를 지원하면 본인이 생활을 계획할 수 있고, 사회 구성원으로 좀 더 존엄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후를 개인의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존엄한 노후를 위해 노력하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계비 지원사업이 더 늘어나길 바라요.”
생활의 필요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만큼 꼭 필요한 소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각자가 생각하는 존엄한 노후의 기준 역시 다 다르다. 그런 면에서 십만 원의 용도를 따져 묻지 않는 ‘홀로 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의 지원 방식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 바탕에 깔려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존엄한 노후’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글 우민정ㅣ사진 김권일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 2017년, 우리 사회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14%를 넘으면서 고령사회에 진입했습니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정부의 지원으로 기초연금, 노령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 중이지만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중복 지원이 어려워서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은 2003년부터 가족의 돌봄없이 홀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에게 최대 3년간 매달 10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은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와 협력사업으로 진행하며, 주거비, 의료비 등 어르신들이 각자의 용도에 맞게 지출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원하여 경제적·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