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만나 ‘나’를 고민하다
기준은 세계를 나눈다. 그 기준에 가까운 것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놓이고, 멀거나 생경해서 경계를 벗어난 ‘타자’는 울타리 밖에 자리한다. 그렇게 경계가 생기는 순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등장한다. 안정을 갈구하며 안으로 들어설지, 자유를 희구하며 밖으로 나설지 딜레마가 시작된다. 유영승(가명)은 대부분이 따르는 이 흐름이 따분했다. 그에게 안팎은 결과일 뿐 별 의미가 없었다. 기준을 없애고 ‘바깥 없는 세계’를 꿈꿨다.
“중학교 3학년 때 방과 후 활동으로 방송 댄스를 시작했어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환호 받는 게 정말 좋더라고요. 즐거웠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진학을 어머니 뜻에 따라 마이스터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죠. 원하지 않던 곳에서 1년을 지내려니 너무 안 맞아서 힘들었어요. 여러 사람에게 진지하게 상의했는데 그들은 그저 버텨보래요. 말처럼 쉬우면 하겠는데 정말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퇴했어요.”
비뚤어진 마음으로 반항하듯 뛰쳐나온 건 아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진짜 유영승’을 찾기 위한 여정이랄까. 기존의 질서를 반대(anti)하려고 시작한 만큼 즐기고 싶었다. 스펙터클 액션 어드벤처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나’를 탐색했다. 자칫 마음이 해이해질까봐 아르바이트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 끝에서 결국 하나의 진실을 알아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춤이구나.’
댄스스포츠로 꿈을 꾸기까지
춤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고민하다 무작정 첫발을 내딛었다. 마침 방과 후 활동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이러저러한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방송 댄스보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댄스스포츠를 알게 됐다.
“청주에서 일을 그만두고 대전으로 돌아와 댄스스포츠를 배웠어요.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해서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죠. 18세에 고등학교 1학년이 된 거죠(웃음). 3년 내내 전국체전에 대전 대표로 출전했어요.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대표로 출전해서 영광이었죠. 그 연장선에서 목원대학교 총장배 전국프로아마댄스스포츠선수권 대회에서 수상했고 특기생 수시 전형으로 입학했어요.”
늦은 나이에 시작한 춤은 그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자 모험이 시작됐다. 댄스스포츠는 분명 현실의 바깥이었으나 영승 씨를 깨어있게 하는 꿈의 안쪽이었다. 넓은 대회장에서 포즈를 취할 때마다 쏟아지는 환호가 그를 들뜨게 했다. 대회장에서 만나 친해지는 선수들과의 유대감도 좋았다. 예선을 통과하고 세미파이널에 오르고 파이널에 다다라 거머쥐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게 힘들었어요. 웨이브도 안 됐죠. 레슨 받으러 서울을 오가는 것도 벅찼고요. 좋은 여건이 아니라서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려니 지치기도 했어요. 1시간 레슨이 18만 원인데 파트너와 절반씩 나눈다고 해도 만만치 않잖아요. 만약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2016년에는 등록금과 생활보조금을 지원받았고 연장하면서 교육비 지원사업의 지원범위가 전공 관련 자격증 취득이나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비 지원으로도 확대되었는데, 전공 레슨비 2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자유로운 내일을 귀띔한 교육비 지원
지원 받기 전엔 아르바이트의 달인이었다. 각종 식당의 서빙은 물론이고 이벤트 회사 다니는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일하거나 택배도 뛰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녹초인데 학원까지 다니려니 체력이 바닥이었다. 수시로 졸음이 밀려와 학과 수업에 열중하기 힘들었다. 그런 영승 씨에게 지원금은 과부하 차단장치였다.
“지원금을 받으니까 조금은 평범하게, 남들과 비슷하게 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여유가 있으니까 춤도 더 잘되는 것 같았고요. 저한테는 터닝 포인트였어요. 바쁜 일상을 돌아보고 고쳐가면서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기회였죠. 스쳐 지났던 순간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으니까요.”
영승 씨에게 춤만큼 정직한 수단은 없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지지해 준 파트너와 작업하며 협업 없이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번 깨닫는다. 관계를 잘 맺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무엇인지 매순간 뼈저리게 느낀다. 춤 잘 추는 무용수 개개인만큼 서로 신뢰하는 팀워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깊이 생각한다. 그런 영승 씨에게 교육비는 단순한 물질적 지원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개체가 만나 빚어내는 의외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온몸으로 깨닫는 중요한 경험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그저 좋았다는 말밖엔 다른 표현이 없네요. 좋은 걸 말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교육비 지원 받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MT를 갔는데 그게 참 인상 깊었어요. 처음 가는 제주도에서 여러 경험을 한 것도,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요. 제가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만약 시설 선생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모르고 지났을 지원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이 더 많이 알려져서 여러 사람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요.”
교육비 지원 사업은 가능성을 선물했다. 남루한 일상을 벗고 자유로울 수 있는 내일을 귀띔했다. 인지도를 쌓아 프리랜서로 살면서 학원 강사나 동사무소, 방과 후 활동 레슨으로 일상을 꾸리고 국제대회에 참여하며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동권 씨. 그는 많지 않은 수입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춤을 추며 이뤄낼 삶이기 때문이다.
글 우승연 l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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