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

2017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 선정자 상담중인 하남시종합사회복지관 정현구 사회복지사

 

“동생은 아직 어린데… 친구들처럼 편하게 과자나 햄버거 먹고 싶을 때 그럴 수가 없죠. 아이스크림 사주면 제일 싼 거를 고르고, 햄버거를 사줘도 한참 메뉴판을 보고 서있어요. 뭐가 제일 싼 지 계산하느라. 그런 순간이 더 비참한 것 같아요. 통장 잔고가 부족할 때보다. 이제는 그런 일들을 편하게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지영이(가명)는 또박또박 차분한 목소리로 주거비 지원을 받은 이후 달라진 삶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물이 새는 전기포트를 아껴아껴 쓰다가 세일하는 전기포트를 큰 맘 먹고 사게 됐다. 큰 맘 먹고 동생에게 침대와 극세사 담요도 장만해줬다. 남들에겐 평범한 일일지 몰라도 지영이네 가족은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그래도 이제는 가능한 일이다. 이런 평범한 행복이 쌓여서 삶의 질도 높아졌다.

보배도(가명) 역시 마찬가지다. 발목을 크게 다쳐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병원에 갈 때도 택시를 타기는 힘들었다. 사이버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지만, 마음 놓고 물품이나 교재를 사지 못했다. 그는 휴대폰으로 다운받아 교재를 읽고 시험을 쳤다. 이제는 가끔씩은 택시로 병원에 다니고, 때로는 디자인 교재도 사서 편하게 읽으면서 공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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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이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을 펼친 지 올해로 14년째다. 영구임대 아파트 등에 거주하는 실질적 소년소녀가정을 대상으로, 1년 임대료 및 관리비, 체납임대료를 지원하는 본 사업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와 파트너십을 맺어 공동으로 진행된다.

이들에게 아름다운재단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은 빈 틈 없이 조여오던 삶에 트인 숨구멍 같은 것이다. 차가운 겨울 벌판의 칼바람을 지나면서 꺼내입는 장갑 같은 것이다. 아직 삶은 버겁고 바람은 매섭지만 그래도 이 작은 구멍 하나, 장갑 한 켤레만으로도 이제는 좀 더 살 만 하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행복이제 좀 살 만 하다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그러나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우리 집은 명절마다 윷놀이를 해” “그 집은 요즘 어때? 무슨 일 없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건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집은 곧 가족이고 가족은 집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집은 곧 자산이고 자산은 곧 집이기도 하다. 부동산공화국에서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다.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 같은 집값의 속도는 어쩌면 탐욕의 속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속도전에서는 늘 덜 가진 사람이 불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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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네 가족을 보자. 어머니와 동생까지 세 식구가 사는 이 집의 한 달 소득은 기초생활수급을 통해 들어오는 100만원이 전부이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루푸스를 앓고 있어서 병원에 갈 때마다 몇백만원씩 의료비를 내야 한다.

집 관리비는 한 달에 많게는 20만원까지도 나온다. 가족들이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데다가 루푸스 치료 때문에라도 겨울철에 전기장판을 틀어 따뜻하게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한 번씩 치료를 덜 받고 보배가 한 권씩 교재를 덜 사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 집을 잃게 될까봐, 보배네 가족은 늘 걱정이다. 오랜 세월 부채에 임대보증금이 걸려있는지라 어느 날 강제퇴거 명령이 날아오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이다. 이 작은 집은 보배네 가족이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는 둥지이기 때문이다.

주거비 지원 이후달라진 가족들

여전히 두 가족의 삶은 어려워 보였다. 지영이는 뇌병변2급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어머니 역시 건강이 안 좋다. 동생은 한참 성장할 중학생이라서 가족 중에는 돈을 벌 사람이 없다. 보배는 지적장애3급이다. 어머니가 앓고 있는 루푸스는 완치할 수 없는 질병이다. 수입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채까지 짊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비 지원이 가져온 변화는 작지 않았다. 일상이 달라지니 삶이 달라졌다. 지영이네는 소소한 행복이 늘어나고 삶이 안정되면서 가족들 사이의 관계도 훨씬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어머니였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려워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어머니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동주민센터에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정리수납 자격증도 땄다. 집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싶더니 깔끔한 정리정돈이 비결이었다. “시험에서 1개 틀렸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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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소년소녀가정 지원사업에 선정된 보배(가명)

지영이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2학년 1학기지만 학점을 대부분 이수해서 조기졸업도 가능할 것 같다. 그는 참 단단해 보였다. “학점 잘 나왔냐”는 질문에 “장학금을 받아야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사회복지에도 여러 분야가 있다”면서 야무지게 따져보고 있었다.

보배는 자격증도 따고 싶고 프랑스도 가고 싶은, 꿈 많은 전형적인 20대다. 자기만의 방도 절실할 때지만 작은 방 하나는 동생에게 주고 어머니와 한 방에서 지낸다. 방에는 어머니의 약병이 빼곡히 놓인 서랍장과 보배의 책상이 사이좋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키우고 있다.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 가족들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곳

2017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

이들에게 집은 많은 자산을 늘리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을 지키기 위해 ‘사는 곳’이다. 그리고 이들의 집을 그냥 ‘사는 곳’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재단은 ‘소년소녀가정 주거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거비 지원은 그냥 얼마의 돈이 아니라 일상을 바꾸는 기회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이다.

집은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곳이고, 나의 소중한 꿈을 현실로 일구어가는 곳이다. 그래서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 노래하기도 한다. 앞으로두 이 작은 집들의 행복이 계속되기를, 그래서 즐거운 집이 일상이 되기를 꿈꿔본다.

글 박효원 l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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