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단체들은 우리 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삶의 터전 곳곳에서 변화와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익활동에 헌신하는 풀뿌리단체 중에서는 아직 시민들의 후원이 부족하거나 정부의 지원이 없어서 활동의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변화의 시나리오로, 우리의 세상과 삶을 더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도록 [변화의 시나리오 스폰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한국여성민우회의 <성별임금격차! 하 기가 차!>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15년째 OECD 가입국 중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7년 한 해 동안, 이 문제적 수치를 알리고, 여성들이 겪는 성별임금격차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걱정되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월급도 모르는 세상인데 과연 사람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을 체감하고 있을까?’, ‘혹시 성별임금격차라는 용어가 낯설진 않을까?’ 이런 고민 끝에, 성별임금격차를 조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는 자리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성별임금격차는 익숙한데 랩은 처음이라!
바로 ‘성별임금격차 포에트리 슬램’, 포에트리 슬램은 자기 이야기를 운율이 있는 글로 써서 낭독하는 예술 장르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성별임금격차 사례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메시지가 한 층 더 확산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포에트리 슬램 워크숍’을 열었다.
“3년 차인 나(여성)보다 내게 일을 배우는 신입(남성)의 월급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희망연봉을 물어보기에 답했더니 남자는 다 쓸 데가 있는데 여자가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아서 어디다 쓰냐며 나(여성)의 연봉을 후려치더라.”
“아이가 생기면 남자 사원은 축하를 받고, 여자 사원은 눈치를 보게 된다.”
– 성별임금격차 포에트리 슬램 워크숍에서 나온 사례들 –
워크숍에 모인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서 성별임금격차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많은 여성이 종사하고 있는 돌봄/서비스 노동에 대한 저평가, 독박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강화유리처럼 견고한 유리천장, 성별에 따른 직종분리 등 성별임금격차의 여러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워크숍의 백미는 이 사례들을 랩으로 만들어 낭독해보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상사에게 화를 내며, 누군가는 회사를 비꼬듯이, 누군가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랩을 해보는 경험이 새로웠다. 아래는 직장에서 차별적인 상황을 겪는 여성들의 분노를 담은 한 참가자의 가사이다.
챕터 원, 이번에 앉을 사람 너야 너 바로 너 박부장
입사 후 첫 회식 날부터 남자끼리 남자끼리 우리끼리 하면서
내 입사동기 김땡땡을 2차 3차 4차까지 끼고 다니며 다음날 사우나까지 같이 가더니
재계약하고 보니 김땡땡은 정규직, 나는 무기계약이더라?
그렇게 우리 사이 임금 차이 많이 나니 너는 좀 사니? 살만하니? 살만하니?
성별임금격차? 하 기가 차!
한국의 성별임금격차 36.7%를 365일로 환산하면 여성은 8월 20일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그래서 무급으로 일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인 8월 25일 금요일, 성별임금격차를 알리는 장을 만들었다. <포에트리 슬램 워크샵>을 통해 완성된 랩을 무대에 올려 워크숍 때의 뜨거웠던 열기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또한 이 내용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신촌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내었다.
무대에는 성별임금격차를 겪고 있는 20-30대 여성들 뿐만 아니라 중년여성이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20대 남성이 남성의 입장에서 성별임금격차가 얼마나 부정의해 보이는 일인지에 대해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내용은 시, 편지, 춤, 노래, 랩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 흥과 분위기는 거리를 타고, 행인들을 멈춰 세우게 했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힙합공연에서 그러하듯 사회자와 관객이 ‘성별임금격차, 하 기가 차!/36.7%, 하 기가 차!’를 주고받으며 신촌거리를 채웠다. 공연을 시작하며 마칠 때까지 같은 구호를 여러 번 워낙 외친지라 이 때 신촌을 지나쳤다면 본인도 모르게 흥얼거렸을 지도 모르겠다. ‘성별임금격차/하 기가 차!/36.7%!/하 기가 차!’ 공연에 함께 한 분들에게 그 흥과 함께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이 함께 전달되었길 바란다.
거리에서 물었다. ‘당신의 한 달 수입에서 40%가 줄어든다면?’
오프라인 집회를 통해 많은 분과 소통했지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성별임금격차 이슈를 알릴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속에 온라인에서 성별임금격차를 알릴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인터뷰이는 십대부터 노년까지, 학생부터 자영업자,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까지,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 그리고 성비를 고려해서 구성했다. 첫 질문은 ‘당신의 한 달 수입에서 40%가 줄어든다면?’이었다. 인터뷰이들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며 고개부터 흔들었다. 그 반응들에 이어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임금을 40% 적게 받는다면?’ 누군가는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라 대답하지 못한 채 고민하는 표정을 오래도록 지었고, 누군가는 그게 말이 되냐며 되묻기도 했다. 이런 자연스러운 반응들은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성별임금격차를 시사적인 이슈가 아닌,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상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다양한 조건과 환경, 입장을 지닌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기 때문에 영상에는 한 가지의 입장과 의견만 담겨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혹은 일치하지 않는 인터뷰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편견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본인 혹은 주변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youtube에 ‘성별임금격차를 물었다’를 검색해 보는 걸 추천한다. 영상은 youtube뿐만 아니라 민우회 계정의 트위터,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업로드 되어 있어 쉽게 찾아보고, 공유할 수 있는데 부디 대한민국의 성별임금격차가 1위 자리에서 멀어지는 그 날까지 오래도록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고민이 퍼져 나가길 바란다.
글 | 이가희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