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담아내는 디자이너를 꿈꾸며


졸업전시회를 마치고 겨우 한숨 돌렸다며 미소 짓는 그는 이제 곧 사회인이 된다. 지난 5년여, 새롭고 다양한 경험이 밀물처럼 들어찼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을 듣고 프로그램 다루는 게 재미있어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한 이후부터다.

사실 미술에 관심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공부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간과 재능뿐 아니라 경제적 지원도 무시하지 못할 분야라서 고민했지만 결국 모험을 선택했다. 입시미술 경험 없이 입학 가능한 전문대학에서 2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했다. 알수록 부족했고 채울수록 허전했다. 배워야 할 게 차고도 넘쳤다. 편입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3학년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어요. 기초를 닦아야 해서 그림을 배우느라 바로 편입할 순 없었어요. 1년 동안 학원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죠. 학원비 벌려고 편의점이며 레스토랑, 카페 가리지 않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다녔어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드디어 본격적인 디자인 공부가 시작됐다. 파면 팔수록 어려워 갈증이 일었지만 사람을 향한 예술이라는 게 매력적이었다. 디자인은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무엇을 담아낼지 고민한 흔적이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걸까 노력한 대가라고나 할까. 인간을 담아내기 위해 인간을 닮을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이 궁금했다. 그 과정에서 깊은 공감이 가지는 힘을 깨달았다. 설핏 평범해 보이지만 본질과 마주할 때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알아챘다. 관건은 깊게 관찰하고 경청하며 사유하는 것. 공감을 바탕으로 한 관심이 만들어낸 가능성이었다.

서울 여행 1년, 예술과 산책하기


“2016년엔 휴학하고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 1년 동안 여러 경험을 했어요. 학교에서 궁금한 걸 다 채울 순 없더라고요. 여기저기 알아본 후 부족한 건 찾아가며 공부했죠.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자각한 건 디자인 역사를 가르치는 국민대 교수님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서였어요. 그때부터 책을 유심히 찾아보게 됐죠.”

지인 소개로 서울 소재 인쇄소에서 3개월 간 일하고 그 돈으로 다른 강의를 찾아들었다. 그 중 하나가 KT&G상상마당에서 하는 드로잉 수업과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 툴 수업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단골 가게나 다름없었다. 무료이기도 하고 걸을 만도 해서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사유를 실천했다.

“드로잉 수업을 듣는데 작가님이 그러셨어요. 20대에는 침묵의 실천을 해야 한다고, 어디선가 계속 실천하라고.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어요. 단순히 드로잉을 배웠다기보다 드로잉하기 전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곳곳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 설레는 시간이었어요.”

1년 동안의 서울 여행. 진우(가명) 씨는 타인이 짜준 일상에서 벗어나 무수한 가능성을 실험했다. 가지 않는다면 폐허가 된 채 닫힐 그 길 위에서 움튼 희망을 보았다. 계층 간 문화 경험의 차이가 꿈꿀 권리를 등급화하고 미래마저 규정짓는다는 정글의 틀을 관조할 만큼 성장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그의 세계를 확장시킨 탓. 경제적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선 게 사람과 세계 그리고 예술을 넘나들며 자유를 거머쥐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기회

“올해 초 자립생활관 선생님이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 사업을 알려주셨고, 디자인 관련 전공 학생에게 지원되는 아름다운재단의 송혜교 기금을 통해 지원 받았어요. 교육비를 받아 서울에서 진행하는 타이포 관련 수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샀죠. 유명 디자이너가 집필한 책, 사진집, 소설책… 보고 싶던 책을 잔뜩 사서 책장에 꽂아놓았어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요.”

필요한 강좌와 책을 잔뜩 품으니 행복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졸업전시 비용 부담을 덜어내서였다. 회비 70만 원에 작품 제작비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부담스런 작업을 걱정 없이 치러내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돈 때문에 구현하고픈 이미지를 덜어내거나 삭제하지 않아도 되니 절로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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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페스티벌 관련 디자인으로 구현한 졸업 전시 작품

뮤직 페스티벌 관련 디자인으로 구현된 졸업 전시 작품

“디자인보다 더 좋아하는 게 음악이에요. 공연기획과 음악소속사 이런 분야의 디자인은 자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졸업전시도 뮤직 페스티벌 관련 디자인이었죠. 보통 페스티벌, 하면 낮을 연상하지만 저는 밤에 시작해서 새벽 5시, 해가 떠오르면 끝나는 콘셉트로 이미지를 구연했어요. 로고와 포스터, 맥주 상품 콜라보레이션, 팔찌, 배지, 티켓이나 엽서, 모자에 이르는 각종 굿즈까지 패키지로 만들었죠. 정말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비용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니 더 많은 시간을 작품에 투자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지원이었지만 1%의 아쉬움도 없다. 적확하고 충분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도 자신과 같은 경험으로 충만해지길 바란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할 기회를 놓치지 않길 희망한다.

“뭔가에 몰입하다 보면 그게 길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많이 활동하고 많이 행동하면 다른 길들이 보이더라고요. 정해진 길이 아니라도 걸어가면 결국 길인 거죠.”

진우 씨는 더 이상 정규 과정을 밟고 싶진 않다. 오래도록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싶을 뿐이다. 찰나의 아이디어에 메시지를 담아 타인과 이야기하고 싶다. 나누고 소통하며 각자의 마음에 서로를 들이는 ‘관계’를 돕고 싶다. 사람을 품고 기술도 상술도 아닌 인술(人術)에 뿌리내린 디자인. 그것이 아름다운재단 대학생 교육비 지원 사업이 응원한 한 청년의 아름다운 꿈이다.

 

글 우승연 l 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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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빈곤 등으로 인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은 만 18세에 도달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보호가 종료됩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여러 자립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분한 준비나 유예기간 없이 자립 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사회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은 불평등한 출발선에 있는 이들의 자립을 응원하며 학업유지 및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준비를 위한 역량강화 및 지지체계 형성을 돕고자 합니다.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보건복지인력개발원 아동자립지원단‘(www.jarip.or.kr)과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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