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지원사업’은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공익활동, 특히 ‘시민참여와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공익활동’ 지원을 핵심가치로 합니다.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A 지원사업은 시민사회단체 및 풀뿌리 단체가 자신들의 선행사업을 기반으로 2~3년간의 중장기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사업비를 지원합니다. |
기본소득이라는 넓은 바다로의 한 걸음
근래 가장 핫한 의제 중에 하나가 기본소득이다. “모든 사람에게 자산심사, 노동요구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일정 정도의 현금 소득”이라고 정의되는 기본소득은 나이가 많든 적든 공평하게 개인을 대상으로 지급된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우리 시대의 대안이라고 불린다.
국가 단위에서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나라는 아직 없다. 지역 단위에서 30년 이상 실행되고 있는 미국의 알래스카 주가 잘 알려진 사례다. 실현 불가능한 몽상으로 치부되던 이 정책이 세계적인 이슈로 점화된 시점은 스위스 국민투표가 성사된 때였다. 2013년 10월, 13만 명의 스위스 시민들이 국민투표 발의에 서명함으로써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지구적으로 번졌고, 우리나라도 비껴가지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5년 중순, 성남시가 정책으로 구현하겠다고 발표했던 정책이 ‘청년배당’이었다. 만19세~24세 청년에게 연 100만 원 상당의 성남사랑상품권(지역화폐)을 조건없이 지급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성남시는 그 해 청년배당조례를 제정했고, 2016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그렇게 2016년부터 현재까지 만24세 청년들은 연 100만 원 상당의 청년 배당을 지급받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을 신청하게 된 동기는 ‘청년배당을 제대로 조사해보고 사회적으로 토론해보자’는 것이었다. 총 2년간 사업으로, 1년차에는 청년배당을 심층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목표였고, 2년차인 2017년 사업은 이를 바탕으로 전국을 돌며 청년배당 혹은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토론・소통・공론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시흥에서 청년들과 만났고, 남원에서 농민들을, 광주에서 청년들을, 여수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인천에서 조례제정운동하는 시민들을, 제주에서 공유재와 기본소득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지리산에서 기본소득 파일럿 실험을 하는 주민들을, 부산에서 기본소득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양산과 광명과 해남, 그리고 다시 광주에서 청년들을 만났다.
이 사업의 기획팀은 <방방곡곡 기본소득 전국투어>라는 제목을 붙여 참여를 원하는 지역을 사전에 모집하였다. 프로그램 형식은 미리 설정하지는 않았다. 강연회, 토론회, 워크숍, 간담회, 수다 모임 등 참여를 희망하는 지역의 조건에 맞게 협의하여 진행하였다.
전국투어의 시작은 시흥이었다. 남달리 시흥이 특별한 이유는 <기본소득 전국투어>를 계기로 시흥의 청년들이 ‘청년기본소득조례 청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참여했던 청년들은 기본소득이라는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살아오면서 ‘모두에게 조건 없이 현금소득을 지급한다’는 개념을 겪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보니,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저성장 시대에 직면했고, 일한 만큼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과 건물이 있는 만큼 돈을 버는 사회 속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청년들은 말한다. 그래서 전국투어에 참여했던 청년들은 성남시 청년배당을 모델로 시흥시에 거주하는 청년 중, 19세의 청년 1인 당 1년 간 매월 <최저임금×10시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해달라는 청원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꿈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은 없다. 그러나 행정부가 주도한 성남시 청년배당과는 달리, 청년 당사자들이 한 명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새로운 대안에 대한 작은 영감을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뒤따른다. 남원에서 진행된 토론회는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대안으로 농민기보소득이 제시되었다. 농민의 삶을 보장하지 않고서 농업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데 참여자들이 공감했고, 그 대안으로 농민기본소득을 바라보고 있었다. 농민 소득보장 정책으로 직불금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사각지대와 절차적 복잡성으로 한계가 명백하다는데 참석자들이 공감했고, 따라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대안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충남 등 여러 지방정부가 농민기본소득에 눈길을 보내는 이유도 실효성이 높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진행한 전국투어는 공유자원의 이익을 기본소득의 철학으로 주민들과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토론과 워크숍이었다. 제주도는 풍부한 공유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태양과 바람, 해양은 물론이고 삼림, 생물종 다양성, 관광, 지하수 등 알래스카처럼 공유자원을 통한 수익모델이 가능한 지역이다. 공유자원은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나오는 수익은 당연히 모두가 나눠야 한다는 원리에서 기본소득이 대안이라고 뜻을 모았다. 그것을 어떻게 정책으로 실현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지리산 산내면에 거주하는 몇 몇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실험 중이다. <청년활력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청년 2명에게 매월 조건 없이 1년간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2018년에는 청년 1명을 더 추가할 예정이다. 실상사 근처 한 공간에서 기금을 모으는 사람, 기금을 받는 사람이 함께 모여 두런두런 별별이야기를 나누었다.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지만, 기본소득을 고민하는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는 사례다.
이제 막 기본소득에 대해 알아가는 지역이 있었고, 이미 실험까지 하는 지역이 있었다. 각각의 지역 상황이 같지 않고, 관심의 출발도 달랐지만, SF영화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처럼, 우리가 겪게 될 불안한 사회에 한 줄기 숨 쉴 수 있는 통로가 기본소득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런 가능성을 성남시 청년배당의 실례가 보여주었다. 녹색전환연구소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지난 2년간의 사업을 의미 있게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그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토론하고 공론했다는 점일 것이다.
글ㅣ사진 녹색전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