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함께 꿈꿀 거에요” – 안산이주민센터 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 인터뷰
부모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아동을 돌보는 일은 더 힘들고, 여러 이주아동을 돌보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이주민들이 대부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에 종일 아이와 함께 해야 하는 보육의 역할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최전선의 현장에서 교사와 활동가들은 오늘도 묵묵히 아이들을 지켜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주아동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감수한다. 때로는 위기에 놓인 이주아동을 위해서 해결방법을 찾고 자원을 모으느라 온갖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도 이렇게 바쁘고 힘든데, 굳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더 많은 활동을 하겠다며 경기도의 이주아동 보육단체들이 뭉쳤다. 아름다운재단 ‘이주아동 보육권리를 위한 지원사업(네트워크)’을 통해서다. 안산이주민센터,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 군포 아시아의 창, 오산이주민센터가 함께 했다.
왜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 간사단체를 맡은 안산이주민센터의 김영임 ‘코시안의 집’ 원장을 만났다. 김 원장은 20년 넘게 이주민 인권운동을 함께 한 베테랑 활동가이기도 하다.
사라지지 않는 사각지대… “한 단체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김영임 원장은 “한 단체만으로는 현실을 뛰어넘는 데 한계가 크다”고 말했다. 단체들이 아무리 갖은 노력을 다해도 보육이 필요한 이주아동들을 모두 돌볼 수는 없다. 고생 끝에 위기에 놓인 이주아동 한 명을 지켜내도 다른 이주아동에게 비슷한 위기가 닥치면 처음부터 다시 뛰어야 한다.
“실제로 저희가 맡은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었는데 심장판막에 구멍이 났다는 거예요. 출생신고도 안 됐고 국가 지원제도로는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죠. 일단 입원부터 시켜놓고 도움 받을 곳을 수소문 하여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잘 해결되긴 했지만 그때의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이럴 때 여러 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조금 더 빨리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김영임 원장의 말처럼 한국의 법은 이주아동, 특히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동보육정책의 주요 방향을 담고 있는 영유아보육법은 한국 국적을 가진 아동에게만 유효하다. 지방자치단체 조례에서도 미등록 이주아동 보육에 대한 내용은 찾기가 힘들다.
안정적으로 보육 받을 권리가 제도적으로 주어진다면 이주아동도 소외되거나 방치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주아동 보육단체들은 올해 말 네트워크를 공식 발족하고 이주아동 보육의 실태를 파악해 지자체와 관련 기관 등에 대안을 제안할 계획이다.
효과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률 연구가 필수다. 이를 위해 변호사와 연구자가 참여하는 법률 연구모임도 구성했다. 이 모임에서는 관련 법률과 조례를 검토하고 실제 사례를 수집한다. 올해 내에 사례집을 발간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갖고 있다.
김영임 원장은 “꼭 일반 보육시설이나 교사들, 정치인과 법률가, 더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사례집을 많이 읽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사회적 인식부터 바뀌어야 현실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똑같이 엄마고 아빠고 아이예요. 그 자체로 소중하죠. 그런데 우리들은 먼 나라의 아이들을 도와주면서도 한국에 있는 이주아동들에겐 참 무관심해요. 이주아동은 늘 맨 뒤에 있어요. 한국에 100대 과제가 있다면 이주아동은 100개에도 못 들어가고 그다음이죠. 사람들도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때만 찾아오고요. 다 함께 현실에 대해 같이 화도 내주고 국민청원에도 동참해줘야 현실이 바뀔 수 있는데 말이에요.”
“다 똑같은 엄마, 아빠, 아이… 너와 나는 동등하잖아요”
오랜 시간 노력해도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정적인 교사나 활동가도 결국엔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 사업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역량 강화’이다.
김영임 원장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교사들은 반드시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이주아동들은 늘 근심 걱정이 많은 부모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교사와 오랫동안 관계를 맺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주아동 보육교사나 활동가의 역량 강화는 결국 딱 한 가지, ‘너와 나는 동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자신이 항상 ‘돕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죠. 내 잣대로만 보면 이주민이 하는 방식은 다 틀려먹었어요. 하지만 이주민을 동등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해요. 이렇게 시각을 확장하면… (이 현장에서) 못 빠져나가는 거죠. 완전 늪이야(웃음).”
이렇게 근사한 사업이지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아무리 더 큰 목표를 위한 일이라도 단체들의 네트워크는 늘 어렵다. 당장의 실무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주아동 보육단체 상황은 더욱 특수하다. 이주민 부모들이 연차나 휴가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교사들도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김영임 원장도 처음에는 네트워크 사업이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네트워크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재단과 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이렇게 바쁜데 제대로 모일 수나 있을까… 사실은 많이 망설였어요. 그런데 아름다운재단과 기부자 님들이 힘을 주신 거죠. 그래서 단체들끼리 의견을 나누기 위해 모였는데, 만나보니 다들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더라고요. 흩어져있는 보육교사와 활동가들이 하나로 모여서 이주아동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꿈을 꾼다면… 그것이 작은 변화의 시작
이렇게 시작한 네트워크 사업은 이제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첫해는 4개 단체가 모여 네트워크만의 뚜렷한 색깔을 만들어야겠지만, 그 뒤에는 점차 외연을 넓혀 더 큰 연대를 이루고 싶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 바로 이주아동과 부모들이 운동의 주체로 네트워크에 참여했으면 좋겠단다.
김 원장은 “현실이 금방 바뀌지는 않지만 새 길을 모색하다 보면 좀 더 재미있어진다”고 말했다. 네트워크의 미래를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새로운 에너지로 반짝거렸다. 20년 세월 동안 힘들게 현장을 지켰어도 사라지지 않은 이 에너지는 아마 꿈 때문일 것이다. 이주아동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 말이다.
그래,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이제 여러 보육교사와 활동가들이 함께 꿈을 꿀 테니 현실이 더 많이 바뀔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운재단 기부자들과 여러 시민도 같은 꿈을 꾼다면, 분명히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주아동의 보육권리를 위한 지원사업(네트워크)’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변화의 출발점이다.
글 박효원ㅣ사진 김권일
권찬
김원장님, 저 혹시 기억하시려나요?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곧 찾아 뵐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