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0이 넘어가면서 엄마는 70을 넘겼다.
엄마는 자식들이 품에서 떠난 시간을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으로 보내셨다.

엄마 나이 72세에 미끄러져서 고관절 골절이 되었다. 그때 엄마는 아파서 운 것 보다 슬퍼서 울었다고 했다. 일어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애들에게 기대어 살면 어떡하나…

다리 수술을 마치고 침대 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또 몇 바늘 꼬맸다. 그때도 엄마는 아파서 운 것 보다 더 큰 수술을 받아야 하면 어떡하나, 기대어 사느니 차라리……. 이런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엄마는 지금 당장 아픈 것 보다, 남을 걱정하며 더 큰 고민을 하는 분이다.

엄마 나이 81세 막내딸인 내 나이 41세. 막내딸이 휴가를 맞이해서 한 달 정도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니, 부모님은 출국 몇일 전부터 해외로 나가는 딸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먹이고자 서울에 올라오셨다.

엄마는 이것저것 챙기느라 전날까지 잠도 못잔 상태인데도 서울집에 도착하자마자 딸의 집정리를 하셨다. 그리고 저녁 시간. 사부작 사부작 움직이던 엄마의 움직임은 점점 커졌다. 내게 와서 의치가 없어진 것 같다고 어디다 두었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울상을 하며 도와 달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아빠와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방 쓰레기통을 뒤지며 엄마의 의치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대전에 있는 식구들에게도 물어보고 집에서 놓고 온 것은 아닌지 점검 하고, 나는 철도청 분신물 센터에 전화를 했다.

엄마는 내내 치매인가 보라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분명 음식을 먹었으니 썼을 터인데 가져왔는지, 어디에다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한참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어~흐억” 하는, 감정을 소리에 미쳐 다 담지 못한 갑갑한 통곡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엄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당신이 가져온 짐더미를 들추면서 가슴을 치며 울고 계셨다.

다른 가족들의 나이 듦이 서운한 일이자 그럴 수 있는 일이라 여겼지만, 정작 엄마는 당신의 나이 듦이 퍽퍽하고, 기댈 곳 없는 막막함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치매인가 보다. 이제는 쓸모가 없는가 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는 억울함과 슬픔에 혼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계셨다.

나는 엄마에게 ‘그럴 수 있는 일이며, 엄마는 엄마로서 존재 하는 것이지 그런 것 때문에 엄마 스스로 엄마 가치를 없애지 말라’며 아이를 안아 달래듯 엄마를 진정시켰다. 엄마는 마음을 진정하고 화장실 근처 탁자 위에 종이로 살짝 가려진 의치를 발견했다. 엄마는 마저 저녁 준비를 하셨다.

엄마의 의치는 찾았으나, 엄마의 그 울음소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그 절절하고 갑갑한 울음. 나이 듦이 서운한 것뿐만이 아니라, 나이 듦으로 정신을 잠식해간다면 어떻게 될까…..

내게 일어난 일은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나는 자식된 도리로서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암담했다. 치매는 노화로 생길 수 있는 일임에도 막상 현실이 되면 당황스럽고 막막할 것 같다. 때로는 금기어처럼 말하는 것 조차 피하게 되는 것이 ‘치매’ 이다. 당사자가 받아들이기 어렵고, 가족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치매어르신과 보호자를 위한 보조기기 지원사업을 한다. 치매 어르신에게도 그 가정에도 정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치매여도, 삶의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즐기고 보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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