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저기 걸린 바이올린 배울 수 있어요?” 교실에 걸려있던 바이올린 몇 대가 아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는지 해맑게 물어왔다. 6년 전, 졸업한 아이들이 배우던 바이올린이었다. 2015년 발령받은 임복희 선생님(논산희망지역아동센터)은 작년 봄부터 바이올린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도시가 아닌 논산 연무읍이란 농촌에서 그 일은 하늘에서 별 따기였다.

바이올린을 집어드는 손

바이올린은 아이들의 로망이었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오면서 보셨겠지만 여기는 농촌이라 바이올린 학원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가진 인맥을 총동원했죠.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 바이올린 선생님 없냐고 물어보고, 읍내에 있는 피아노 학원까지 찾아갔어요.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구한 끝에 다행히 25년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을 만났다. 임복희 선생님이 이처럼 열성을 다한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꿈을 접는 일이 없길 바라서였다. 그녀는 지역아동센터가 ‘문제집 풀이만 하는 지루하고 힘든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펼칠 수 있는 ‘진정한 배움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바이올린 선생님

어렵게 섭외한 25년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

악기부터 동아리 이름, 무대 의상까지 아이들이 직접 결정했어요.

그렇게 작년 5월, 논산희망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선생님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바이올린 동아리 ‘희망의 소리’를 결성했다. 회의와 투표를 걸쳐 아이들이 직접 선택한 결과다. 한 달에 한 번 여는 ‘자치회의’를 통해서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악기부터 동아리 이름, 무대 의상까지 함께 결정하며 주도적으로 동아리를 꾸렸다.

스스로 원해서 만든 동아리여서 그럴까. 즐거움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작년 1기 동아리 대표였던 박자현 학생(12세)은 연습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바이올린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악기였다.

2017 희망의소리 대표 최은지 학생(우)

2017 희망의소리 대표 박자현 학생(우)

바이올린 하면 여기 턱이랑 어깨 그리고 팔, 다리 다 엄청 아파요! 근데도 소리 나는 게 신기하니까 계속 하는 거예요. 학교에 가져가면 친구들이 신기해해요. 막 만져도 되냐고 물어보고, 가르쳐주면 뭐라고 해요. 너무 어렵다고. (웃음)

인터뷰할 때 자현은 “아직도 저는 소리도 제대로 안 나요”라고 엄살을 부렸지만, 연습 시간엔 멋지게 독주를 해냈다. 장장 두 시간을 서서 연습하는 데도 집중하지 않는 단원은 한 명도 없다. 화요일 2시는 ‘희망의 소리’가 일주일에 한 번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연습은 합주와 독주로 진행됐다. 한 명씩 돌아가며 가장 좋아하는 곡을 독주할 때는 끝날 때마다 “우와, 잘했다”라는 말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응원과 지지가 어떻게 서로에게 힘이 되는지 알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무대에 선 아이들

2017 아하콘서트 공연무대

<아하 콘서트>라는 큰 무대에서 맛본 ‘잊지 못할 기쁨’

아이들이 고통을 무릅쓰고 계속 연습하는 건, 이미 기쁨을 맛봤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날 때마다 서로 해주는 독려의 박수,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은 게임을 통해 얻는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작년 11월, <아하 콘서트(아름다운 하모니 콘서트)>라는 큰 무대에 서봤던 경험은 잊지 못할 기쁨이다. 2기 대표인 최은지 학생(12세)은 <아하 콘서트>를 특별하게 기억한다.

2018 희망의소리 대표 박자연 학생

2018 희망의소리 대표 최은지 학생

아하 콘서트 연습할 때 엄청 열심히 했어요. 얘는 막 울었어요. (웃음) 콘서트 또 하고 싶어요! 그때 고모랑 친척들도 다 왔어요. 사람들한테 저희가 연습한 걸 보여줘서 좋았어요.

결성된 지 5개월이 된 ‘희망의 소리’가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선생님들은 “틀리더라도 후회 없이 자신 있게 연주하자.”라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이전에 미용실을 운영했던 학부모 한 분은 발 벗고 나서 화장과 머리를 손질을 도왔다. 전국에서 가족, 친구, 친척들이 찾아왔다. 연주팀이 아닌 아이들은 응원팀을 꾸려 함께 서울로 향했다. 공연장에는 “꽃보다 OO”, “희망둥이들만 보인단 말이야” 같은 색색의 피켓과 함께 응원의 소리가 관중석을 가득 채웠다. 8살부터 11살이 모인 ‘희망의 소리’ 단원으로서는 생애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짜릿함과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희망의 소리’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버린 지인들의 피켓 신공

<아하 콘서트> 이후 센터에는 바이올린 붐이 일고 있다. <아티스트 웨이>를 2년 연속 지원받으면서 중도 포기하는 단원 한 명 없이 인원이 10명에서 15명으로 늘었다. 지금은 센터의 반 이상이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올해부터는 원할 때 수시로 들어올 수 있도록 문턱도 낮췄다. 가르치는 품은 더 들겠지만, 선생님들은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답하고 싶다.

2017 아하콘서트 사진첩 (무대 데뷔를 위해 머리를 손질해주신 어머니)

사실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만으로는 이런 문화예술 활동을 꾸려가는 일은 만만치 않다. 지역아동센터의 한 달 운영비는 400여만 원(29인 이하 시설 기준)이다. 최저시급인 2인 인건비 포함해서 공과금과 도서비 등을 사용하고 나면, 문제집 풀이 외 다른 프로그램을 할 여유가 없다.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지원하고 싶은 선생님은 계속 새로운 기금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희망의 소리’ 역시 악기 구매가 어려워 바이올린을 돌려쓰며 연습할 때도 있었다.

희망지역아동센터 임복희 선생님

희망지역아동센터 임복희 선생님

악기 구매 비용을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요. 또 지자체에서 구매 자체를 허가해주지도 않고요. <아티스트 웨이(아동청소년 특기적성활동 지원사업)>를 연속 지원받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아이들이 한 명씩 공평하게 악기를 가지고 연습할 수 없었을 거예요.

어려움이 많지만, 임복희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려 한다. 우선 11월에 맞이할 <아하 콘서트>부터 준비하고 있다. 논산 연무읍에 울려 퍼지던 ‘희망의 소리’가 <아하 콘서트>에서도 울려 퍼지기를,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한 번 무대에 서면 아이들이 확 성장하더라고요. 계속 무대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노력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힘닿는 데까지 바이올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어요. ‘연무대’라는 군대 훈련소 이미지가 강했던 논산 연무읍에 우리 아이들의 ‘희망의 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보태준 기부자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 꼭 전하고 싶어요.

 

글 우민정ㅣ사진 임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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