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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건의 벽 허물기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이하 월담)의 활동은 안산과 시흥지역의 반월시회공단의 노동자와 함께합니다. 민주노총이 조사한 ‘2015 전국 공단 노동실태’에 따르면 이 지역은 전국 8개 공단 중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 수치를 기록한 곳입니다. 전국의 파견 노동자 12만명 중 2만 명 (약 16%)이 두 공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노조 조직률도 전국 최저인 1%(전국 평균 10%)에 불과한 곳이기도 합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고착화되어 있는 이곳에서 월담은 올해로 5년째 노동자 인권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특히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노동자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확인된 피해사례에 대한 후속조치까지 진행하며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월담은 안산에서 반월시화 공단 초입의 한 건물에 있습니다. 사무실 근처의 즐비한 전파상과 공구상가들을 지나는데 저 멀리 공장들의 굴뚝이 보입니다. 아담한 국수집 위로 다섯 평 남짓한 월담의 사무실에는 각종 노동 상담책자와 노동법 책들이 저마다의 질서를 찾아 놓여있습니다. 노동운동으로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신 이미숙 대표, 올해 청년변호사상을 수상한 조영신 변호사 그리고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는 유월 활동가님과 여름날 오후의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Q.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규모가 얼마나 되나요?
이미숙 대표 : 이 지역에는 약 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어요. 노동조합 조직률이 전국에서 최저이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고착된 이곳에서 노동조건을 높이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전국의 공단들과 비교해봤을 때 이곳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무엇인가요?
이미숙 대표 : 이곳은 노동실태 관련 조사를 하면 전국의 여러 공단 중에 대구의 성서공단 다음으로 열악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그 외에 여러 가지 시스템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중소영세사업장이 노동시장의 70~80%를 차지하는데,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권이 향상되지 않으면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절대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인식이 있었죠.
Q. 2015년에 월담이 설립되기 이전에 대표님의 이력이 궁금합니다.
이미숙 대표 : 96년도에 공단에서 일했습니다. 그곳에 노동자편은 들지 않는 노동조합을 민주적으로 바꿔내려고 했죠. 회사 언니들이랑 ‘노동조합을사랑하는모임’ 꾸렸어요. 그때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분들은 다 해고됐어요. 결국 거기서는 노동조합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은 성공하지 못했죠. 그 후에 건설 노동조합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쉽지 않은 일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이미숙 대표 : 건설 노조가 지금의 형태를 띄기 전에는 직종 별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그때 저는 덤프연대에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2004년도쯤에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모인 거죠. 저는 초창기에 결합했고요. 당시 그분들은 노동자로서의 개념이 없으신 분들이었어요. 험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어요. 스스로가 노동자라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거죠. 그리고 회사에 직접 고용이 되어야하는데 일부러 사장이라는 굴레를 씌어놓고 부당하게 대우한다는 걸 알게 된거죠. 원래 이분들이 건설회사에 소속된 노동자분들인데 80년대 중반부터 개별 사업자 등록을 내게 했거든요. 처음에는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주니까 좋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차량 수리비도 자신들이 내야하고, 기름 값도 내야하고,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재 사고가 나도 처리가 하나도 안 되는 거죠. 그런 걸 깨닫고 부당하다고 얘기하는 변화가 있었고, 그 안에서 저도 힘을 얻었던 거 같습니다.
Q. 조영신 변호사님과 유월 활동가님은 월담에 결합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조영신 변호사 : 단체에서 활동하고 싶었어요. 어떤 단체로 갈지 고민하다가 이곳을 알게 됐어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 파견 사업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유월 활동가 :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노조에 있었고, 사회운동단체에도 있었습니다.
Q. 최근 개정된 최저임금법 관련해 노동 현장에서는 어떤 평가들이 있나요?
조영신 변호사 : 얼마 전 개정된 최저임금은 노동계에서는 임금을 삭감시키는 법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법은 임금의 여러 종류 중에 어떤 부분까지 상정 범위에 넣을 것인지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거의 기본급만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다른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이 상정 범위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번에 법이 개정되면서 상정 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을 포함한 수당들을 다 집어넣었죠. 그리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명시된 취업규칙을 바꿀 때는 과반수 노동자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반수의 동의가 아니라 의견 수렴만으로도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이 개정안에 들어갔어요.
Q. 노동자분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조영신 변호사 : 어제 만난 한 노동자분이 소상히 이 부분을 알고 굉장히 분개하셨어요. 기존에 최저 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고 일하라는 거 아니냐고요. 최저 임금법은 최저 수준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죠. 적어도 그 이상은 되어야한다는 걸 담은 제도인데 이것은 거의 상한선까지도 제한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죠.
이미숙 대표 : 공단 노동자들은 취업규칙이 부당하게 변경되어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하는 곳을 쉽게 바꾸는 경향도 있거든요. 일터를 옮겨 다니는 거죠.
유월 활동가 : 사직서를 낼까 말까. 일을 더 할까 말까하는 개념이 아니에요. 근속을 오래 하는 거 자체가 예외적인 일인 거죠. 그 정도로 일자리의 안전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이미숙 대표 : 공단은 3일 이상 일해야 급여가 나와요. 그만두는 일이 많으니까 취업을 하면 일주일동안 사람들이 말을 안 겁니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요. 일주일동안 그 사람은 유령처럼 지내는 거죠. 한 달 동안 50명이 나가는 사업장도 있었습니다.
Q. 사업장의 노동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이야기인거죠?
이미숙 대표 : 2년 전에 인권침해실태조사를 했습니다. 심층 면접조사 과정에서 파견직 한 분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방진복을 입어야하는데,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에 이 옷을 쇼핑백에 넣어 간다는거에요. 파견 노동자들에게 사물함을 안주는 거죠. 밥을 먹는 테이블도 색깔이 정해져있다고 했습니다. 정규직, 파견직, 계약직 구역이 따로 있다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 분이 회사에서 겪었던 일 중에는 아파서 지각한 적이 있는데, 관리자가 서류더미를 집어던지면서 욕설을 하더래요. 관리자에게 듣는 욕설과 반말이 반복적으로 일상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기계 부속품에 불과한 거 같다고 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했어요.
조영신 변호사 : 한 달에 한번 거리 상담을 나갑니다. 공단에서 경비 일을 보시는 70대 노동자께서 오셨어요. 그분은 일주일 중 반나절만 쉬세요. 수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쉬시고 나머지 시간에 계속 공장에서 일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한 달에 150만원 받으신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이상한거죠. 그래서 내가 잘 받는 게 맞냐고 질문을 하러 오신거에요. 물론 근로계약서를 봐야하지만 실질 근무시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을 받고 계산다고 말씀드렸죠. 대충 최저임금에 맞춰 계산을 해보니 최소 250만 원 정도는 받으셔야 했어요. 임금 체불로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진정을 넣을 수 있다고 알려드렸는데 얼굴이 환해지시는거에요. 회사에서는 분명 문제될 게 없다고 했는데 본인이 생각했을 때는 이게 아닌 거 같아서 답답했던 거죠. 앞으로 체불된 임금도 받아야하고 할 일이 많으시지만 아니라는 걸 확인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시는 게 보였어요. 당장 노동청을 찾아가지 못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걱정 때문에. 그래도 알고 있다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다르죠.
Q. 최저임금법 개정 이후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진 문제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유월 활동가 : 사례는 많이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상여금을 깎아서 기본급에 넣고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임금을 안 올리는 거죠. 예를 들어 기본급이 130만원이고 상여금이 30만원이었으면 개정된 최저 임금법에 따라 기본급이 157만원으로 오르고, 상여금이 30만원이 돼서 187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 30만원을 그냥 기본급에 넣는 거예요. 이렇게해서 총 임금이 최저임금을 넘는다는 식으로 만드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Q. 열악한 노동환경인데도 법제도적가 뒷받침되고 있지 않은 상황인데요, 당사자들의 참여가 없이는 후속 조치 진행도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이미숙 대표 : 노동부에 신고하는 후속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동부의 태도가 문제가 됐는데, 문제가 있으면 다시 절차를 밟으라고 하죠. 회사는 직원들의 동의를 받았고 절차 따랐다고하면 근로감독관이 상황을 끝냅니다. 현장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벽에 서명 용지 붙여 놓고 서명하라고 하는거죠. 노동조건에 대한 설명도 없고 노동자들이 논의도 할 수 없어요. 저희가 계속 물고 늘어져야 그나마 진척이 조금이라도 되는 정도입니다. 실제 바꾸려면 노동자들이 과반 이상 반대해야하는데 그걸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유월 활동가 : 최저 임금이 올라도 사업주가 꼼수 부리면 적용이 안 돼요. 법제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인거 같아요.
이미숙 대표 : 그래서 하반기에는 최저임금 관련해 피해나 불이익을 겪은 분들이나 상담하는 동안 만나왔던 분들을 모아서 당사자 모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3차례 정도 계획하고 있어요. 그 모임을 통해서 피해나 불이익에 대해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바꿔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교육도 하는 모임을 생각하고 있어요. 임금관련해서 더 잘 알 수 있게 소책자도 만들어서 배포할 계획입니다.
Q. 이번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선정된 단체 중 한곳에서 월담의 사업 이야기를 듣고, 월담의 작은 변화에 대해 ‘당연한 권리를 찾는 목소리 내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작은 변화’는 무엇인가요?
이미숙 대표 :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의 노동자들께서 노동부에 이를 신고한 사례가 있었어요. 회사에서 노무사를 고용해서 임금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노무사가 체불된 임금도 있지만 회사가 더 지급한 항목도 있다는 것이에요. 노무사가 노동자들에게 부당이득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회사는 노무사를 고용해서 자꾸 꼼수를 쓰고, 노동부는 지도만하고 끝내려는 과정이 있었죠. 그 노동자분들이 끊임없이 저희랑 얘기하고 문제제기하면서 계속 대응했어요.
우리가 외부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사실은 현장이 바뀌려면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움직여야합니다. 그분들은 실제 그렇게 움직여서 체불된 임금을 다 받게 되었죠. 없던 취업규칙도 만들어졌고요. 야근이나 특근도 원래보다 줄었는데 기존에 받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거죠. 그것이 엄청 큰 위험을 감수한 일이 아니었어요. 내가 좀 나서기 시작하니까 이런 변화가 생긴거죠. ‘내가 나서면 바꿀 수 있다. 최소한 떼인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 , “별거 아니지만 크게 다가오는 것. 하면 바꿀 수 있다.” 가 작은변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노동현장에서 희망이 없고, 다른 공장 찾아가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이분들처럼 현장에서 작은 변화라도 직접 바꿔가면서 ‘아, 움직이면 할 수 있구나. 뭔가 바꿀 수 있구나.‘ 이런 희망들이 좀 퍼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글 권연재 간사 ㅣ사진 송혜진 간사
2018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시민사회단체 및 시민의 공익활동을 지원합니다. 올해는 총 38개의 단체와 7개의 시민모임이 선정되었습니다. 1년간의 사업수행 기간 중 선정 단체와 모임의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중간방문을 진행하였습니다. 그중 7개 단체와 1개 시민모임을 방문하였고, 8개의 인터뷰 콘텐츠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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