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다는 낙인은 억울하다. 삶을 어떻게 수치로만 판단할까. 한데 세상은 효율성을 들이밀며 늙음을 외면한다. 갈 곳 없는 마음이 돌아갈 곳은 집뿐이다. 숨어들 듯 들어선 방에 우두커니 앉아 TV를 켜고 과거를 향해 걷는다. 이상하다. 한 번도 게으르지 않았는데 왜 일상은 스러지고 있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곰곰 더듬어 봐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지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수년 전까지만 해도 꽤 잘 나가는 가죽 도매상을 운영했거든요. 그땐 3개 국어를 하는 직원을 두고 고단한 줄 모르고 일했으니까. 젊은 시절 남편과의 불화로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일이 있어서 살아볼 만했는데….”
장밋빛 노후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 바람에 오랜 1인 가구의 삶도 그리 헛헛하지 않았다. 때때로 홀로 늙는 것이 두려웠으나 언제나 성실했기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데 불행은 한순간 그녀를 휘감았다. 무역회사를 꾸리는 동생의 부도에 모든 게 무너진 것. 가게는 물론이고 집 한 칸 지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월세 집을 얻고 다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어렵게 이 집 보증금은 마련했는데 월세가 버티고 섰지 뭐야. 가스비, 전기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죠. 얼마 전에 알았는데 나라에서 주던 것도 이젠 안 준다더라고. 제 살기도 빠듯한 자식들 때문에 그렇다나봐. 동사무소 가서 아무리 말해도 안 된대.”
긍정적으로 살자고 마음을 다잡아도 ‘내일은 또 어찌 지내나’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안경순(가명) 할머니. 아름다운재단의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은 그녀의 삶에 든 볕이다. ‘딸깍’ 스위치가 켜진 듯 사방을 밝히는 작은 희망. 그 바람에 주눅 든 늙음이 위로받고, 스쳐 지났던 세월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 두려웠던 내일을 기다리게 만든다.
희망으로 복지사각지대를 비추다
“안경순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 지급되던 기초생활수급이 끊기고 현재 별다른 수입이 없으세요. 월세와 공과금을 포함한 최소한 기본적인 생활비가 있는데 해결할 길이 없어 참 막막하셨죠. 아름다운재단의 생계비 지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을 통해 송파노인복지센터에서 생계비를 지원한지는 4년째다. 아름다운재단이 단독으로 운영하던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을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와 함께 진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원 대상과 절차의 전문성을 고려한 파트너십. 이유는 단 하나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대상, 3년 동안 제공되는 생계비 지원으로 삶의 희망을 찾을 어르신에게 닿고 싶었다.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듯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가 복지사각지대예요. 이미 여러 서비스를 받고 계신 다중수혜자 그늘에서 이 지원금이 꼭 필요한 분들을 찾는 게 저희 일이죠. 이를테면 수급자에서 탈락됐는데 자녀가 부양을 포기한 분들이요. 한 달에 단 5만 원으로도 삶의 희망을 꾸릴 수 있는 그분들은 그러세요. 누군가 내게 관심을 가지니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정윤정 과장은 생계비 지원금을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돈이라고 재정의한다. 어떤 어르신은 주거 불안을 해결하는 월세로, 또 다른 어르신은 몸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진통제 주사 값으로. 각자 용처는 다르지만 옥죄던 그들의 삶을 홀가분하게 해준다.
“저희 센터 서비스를 받으시는 분들 중 10%가 복지사각지대에 있어요. 안경순 할머니처럼 수급비 대상자가 아닌 거죠. 물론 이것저것 현물 지원을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만족도도 굉장히 높아요. 통장으로 입금되니 무엇을 하든 뒷심이 되는 거예요. 어떤 분에겐 난방비이고 어떤 분에겐 꼭 해보고 싶던 것, 정말로 먹고 싶은 것이 가능한 돈이예요.”
생계비 지원은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다. 욕구 만족을 넘어서고 욕망을 실현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저마다 품은 마음의 결을 획일화해서 재단하지 않는, 일종의 선택권을 제공하는 게 이 사업의 특장점이다.
“경제적 지원만큼 정서적인 풍요도 중요해졌습니다.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고려해야 합니다. 저희도 어떻게 하면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들이 의미 있는 노년을 꾸리실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일시적이고 일방적이며 수혜적인 사업보다 지속적으로 변화를 선물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한 이유죠. 아마도 생계비 지원은 그 출발선의 사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디 그뿐인가. 사각지대의 어르신을 찾아내고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사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은 무관심에 갇힌 어르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끈이고, 문인 셈이다. 누군가 자신을 궁금해 하고 기억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일은 막막하지 않다. 그것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대다수의 사업 담당자들이 생계비 지원을 돈이 아닌 희망을 주는 사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임다윤
아름다운재단의 ‘사회적 돌봄 사업 영역’이 바라보는 복지는 ‘사회로 부터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권리’ 입니다. 주거권, 건강권, 교육문화권, 생계권을 중심으로 취약계층의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홀로사는 어르신 생계비 지원사업’은 <케토톱홀로사는노인지원기금>을 기반으로 진행합니다.아무도 찾아 와 주지 않는 단칸방에서,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 대신 방문 앞 조그만 계단에 음식을 보관하는 홀로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