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을 통해 우리의 다양한 삶을 이야기하는 <유아웟유잇 :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의 작품은 작가 마크 멘지바(Mark Menjivar)씨가 음식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평범한 가정의 냉장고 속을 기록한 사진입니다.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라는 공간을 통해 냉장고 주인의 삶을 상상하고 통찰해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 속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지극히 내밀한 개인의 공간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꺼려지고 반대로 손님이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는 것도 매우 조심스럽죠.
실리콘밸리에서 웬만하다고 불리는 회사들의 냉장고는 어떨까요? 그런 회사들의 탕비실에는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는 초코바, 칩, 컵라면, 커피 등이 무엇이든 가득한 모습은 부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국내 IT기업들도 마찬가지고요. 최근에는 바이트푸드라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자판기가 아마존, 테슬라, 시스코 등에 설치되었는데 이 자판기에서는 커피전문점 블루보틀의 커피부터 유명 샐러드 체인의 신선한 샐러드, 유명 베이커리카페의 샌드위치까지 누구나 꺼내먹을 수 있다고 하네요.
시민단체의 탕비실을 들여다보다
그럼 국내 시민사회단체의 탕비실은 어떨까요?
사실 탕비실이 있는 곳도 흔치는 않습니다. 작은 단체들의 경우 사무실을 함께 쓰는 경우도 흔하고, 탕비실은 활동가를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청소년, 이주민 등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함께 쓰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활동가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내려먹거나 앉아서 잠시 쉬어가는 공간을 가진 단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냉장고 안에도 특별할 것이 없지요.
다만 단체활동의 성격이나 단체 구성원들의 연령대에 따라 컵라면을 즐겨먹거나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 채워져 있기도 하고요. 후원받은 음식을 잠시 보관하기도 하기도 하고,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을 때 사용하기 위한 용도로 어느날은 가득 찼다가 어느날은 텅텅 비어있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IT기업처럼 넉넉한 운영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활동가의 사비로 커피를 채워놓기도 하고요. 또 어떤 단체는 누군가의 책상이 탕비실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야근이 잦다 보니 사무실에서 일하다 맥주 한 캔을 비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영리단체의 현실이 아름다운재단의 현실이다.
사회 현상을 보면 빠르게 변화하는 것과 느리게 변화하는 것 사이의 격차에서 대부분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술과 경제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법과 제도의 속도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자 노력해온 비영리단체들이 있습니다.
불평등과 부조리의 뿌리는 거대하고 깊기 때문에 한두 해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꾸준하고 지속가능한 대응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비영리기관들은 재정, 모금 지속성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효과성을 증명할 수 있고 측정가능한 활동은 투명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정확히 얼마가 쓰이고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활동에 대해 낡은 활동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개선활동이나 감시활동, 옹호활동은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기 쉽습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 가운데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낫다는 전제를 고려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2017년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개인적 사교 및 종교단체를 포함해 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 49.7% 중 8.4%만이 시민사회단체에 참여하고 있으며 기부 희망분야 중 겨우 3% 정도만이 공익활동에 기부하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비영리단체가 어려운 상황에도 휩쓸리지 않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꾸준하게 할 힘이 필요하고, 신뢰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비영리단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일 방법이 필요합니다.
비영리단체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을 바라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오래전부터 비영리단체의 물적, 인적 토대를 꾸리는데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역할은 비영리단체의 공익적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비영리단체의 활동을 통해 사회변화가 이뤄진다는 것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역량있는 비영리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름다운재단의 사업은 물론 의미있는 결과를 담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2018년 한 해 동안 다양한 캠페인과 조사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스러움’이 과연 무엇인지를 탐구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시민들의 사회적 자산으로 존재하기 위해 지켜야할 모습과 회복해야 할 모습은 무엇인지를 발견해보고자 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스러움을 찾아가는 마지막 여정으로, 공익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와 단체를 통해 아름다운재단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탕비실을 부탁해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아름다운재단(간사들)이 총 9곳의 서울, 경기지역 비영리단체를 직접 찾아갑니다. 아름다운재단스러움은 무엇인지를 단순히 묻기보다, 아름다운재단이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미래를 함께 그려가면 좋을지를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에게 듣고자 합니다. 비영리단체에 아름다운재단의 가치와 미래를 묻는 것은 아름다운재단을 신뢰하는 기부자를 위한 책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찾아가는 단체는 2018년 기부자님들의 기부금을 통해 지원받은 단체들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찾아가서 비영리단체의 탕비실 냉장고를 채워 줄 예정입니다. 야근할 때, 일하다 출출할 때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탕비실 냉장고를 음료, 간식, 커피 등으로 가득 채워줄 예정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활동을 하고, 그 활동에 기부자님의 기부금을 소중하게 사용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또한, 앞으로의 활동을 지지하며 충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응원이기도 합니다.
비영리단체의 사무실에 방문하여 탕비실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아름다운재단스러움’을 상징하는 오브제를 받아 올 예정입니다. 비영리단체들에게 받은 ‘아름다운재단스러움’의 오브제는 아름다운재단 1층에 전시되어 방문객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재단 간사들이 비영리단체에 방문한 이야기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 | 서경원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