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등록 엄마입니다. 아이를 한국에서 공부시키고 싶은데 너무 어렵습니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어린이집에서는 ‘(이주아동 보육은) 못 하겠습니다’ 하고, 미등록 아기를 맡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어린이집에 올 수 있었지만 학비를 100% 내야 했습니다.
제가 미등록이라 8시간만 근무하기 어려운데 (저녁에 되면) 어린이집은 ‘아기 데려가 주세요’ 했습니다. 사장님이 화나서 일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기는 어린이집을 6번 바꿨는데, 그때마다 낯설어서 많이 울었습니다. 아기 데리고 회사 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일할 때 아기는 자고 놀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뚜안(가명)씨의 사연이다. 그는 ‘경기권 이주아동 보육 네트워크’ 발족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의 보건, 복지 시스템과 인식, 문화가 모두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주아동 하나를 키우는 데는 더 많은 마을과 사람들이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제도나 인식이 이 땅의 이주아동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하기에, 일단 여러 시민단체가 먼저 나섰다. 이주아동 보육권리를 위한 한국 최초의 연대체 ‘경기권 이주아동 보육 네트워크’를 발족한 것이다.
안산이주민센터, 남양주 외국인복지센터, 군포 아시아의 창, 오산이주민센터가 네트워크를 위해 힘을 합쳤다. 아름다운재단은 단체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기획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각자의 상황은 조금씩 달라도 간절한 꿈은 하나, 바로 ‘이주아동들의 보편적인 보육권리’다.
네트워크 소속 단체들은 더 나은 활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1년 가까이 기획과 준비 기간을 거쳤고, 지난 11월 18일 일요일 오후 드디어 공식적으로 네트워크 발족식을 열었다.
“응원군이 있어서 힘이 난다” – “필요한 순간에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할 것”
이날 발족식에는 단체 활동가들은 물론 이주아동과 부모들도 함께했다. 일요일은 매일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주민들이 밀린 집안일도 하고 꿀잠도 잘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도 부모들은 내 아이의 보육권을 지키는 자리에 빠질 수가 없다. 부모란 그런 것이니까.
행사장은 온갖 연령과 피부색의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아직 부모 품에 안긴 아이,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 행사장 곳곳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이 내는 온갖 어린 소리가 행사 내내 어우러졌다. 아직은 자신이 겪는 차별과 소외를 잘 모르는, 그래서 한국 국적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하고 밝은 표정의 아이들이다.
발족식은 이 모든 사람과 함께 따뜻하면서도 결연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쉽지만은 않았던 그 간의 과정을 돌아보고 서로의 노력에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길도 쉽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이날은 더욱더 굳세게 나아가기 위해 서로를 응원하는 날이기도 하다.
네트워크 간사단체인 안산이주민센터 ‘코시안의 집’ 김영임 원장은 “각자 흩어져 있는 단체들이라서 그동안 함께 모이는 것도 참 어려웠지만, 모두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끼리만 노력하면 결국 힘든 순간에 포기할 수도 있는데, 응원군이 있으니 더욱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 ‘응원군’이 바로 아름다운재단이다. 권찬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은 “재단은 이렇게 단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먼저 문을 여는 곳, 먼저 손을 내미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크는 이미 지난 3월부터 여러 차례 보육실천가 모임을 열고 합동 워크숍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이주아동 보육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나눴고, 공동의 보육권리 의제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9월에는 ‘이주아동 법률사례 연구집’을 펴냈다. 이어 11월에는 각계 전문가와 도의원, 당사자인 이주민 부모 등 11명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까지 꾸렸다.
네트워크 법률지원팀에 참여하는 최정규 변호사는 이날 경기도 이주아동 관련 조례 개정 방안을 설명했다. 법률지원팀은 그동안 외국인주민 지원조례 · 경기도 보육조례 등 이주아동 보육과 관련된 기존 조례 11개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개정안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경기도 이주아동 지원조례안’도 제시했다.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최 변호사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제 막 대안을 만들었을 뿐 이를 현실에 반영하기 위한 과정은 더욱더 길고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트워크에는 더욱더 많은 격려와 응원, 다짐이 필요하다.
경기도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져나갈 ‘이주아동 보육권 제도화’
앞으로도 네트워크는 이주아동 보육서비스를 공공정책으로 만들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특히 당면한 활동 과제는 조례 개정이다.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김현산 경기도의원은 “세상에 모든 어린이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함께 노력해서 좋은 조례를 만들어보겠다”고 개정 의지를 밝혔다. 오영미 오산이주민센터 대표는 “조례 개정이 안 이루어지면 경기도지사도 만나러 가고 의원실도 찾아갈 것 같다. 다 함께 힘을 보태 달라”고 호소했다.
네트워크의 주체인 4개 단체의 특성을 생각해 보니 이런 활동에는 딱 안성맞춤이다. 일단 모두 이주민 인권을 위해 뛰고 있는 풀뿌리단체이며,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면서 누구보다 가까이서 이주아동을 보육하는 현장 단체들이다. 덕분에 네트워크는 이주민들의 인권을 지키는 시민단체의 역량과 이주아동을 보육하는 어린이집의 전문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매일매일 이주아동들과 함께 하는 보육현장의 상황, 특히 보육교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정책과 활동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사실 보육교사들에게는 아동권리 옹호활동이 매우 낯설고, 이 같은 활동 사례도 무척 드물다. 보육 현장의 힘든 노동환경 때문에 네트워크 활동이 추가적 노동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정성껏 보살피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교사들도 함께 나섰다. 사회변화 없이 어린이집 안에서의 돌봄만으로 이주아동들을 온전히 키워내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단체들의 공통점이 또 있다.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주민이 많은 경기도, 그중에서도 특히 이주민이 많은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단체라는 점이다. 국내 체류 중인 이주아동은 5만 8천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36.2%인 3만 1천여 명이 경기도에 산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이미 지난 2006년부터 경기도는 이주아동을 보육하는 어린이집에 교사 인건비 일부를 지원해오고 있다. 안산시는 올해부터 전국 최초로 이주아동에 대한 누리과정 지원에도 나섰다.
이 같은 경기도에서 먼저 이주아동들의 보육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례가 만들어진다면, 다른 지역에도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점차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인식까지도 바뀔 수 있으리라. 경기권 이주아동 보육 네트워크는 그 큰 변화의 작은 시작인 셈이다.
‘미등록 엄마’ 뚜안씨는 “아이가 언제까지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베트남에 아이를 보내기도 어렵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에게는 베트남의 환경이 너무나 낯설다. 심지어 아이는 베트남어도 할 줄 모른다. 그는 “좋은 해결 방법을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이 간절한 부탁에 답해야 한다. 국적과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를 외면하는 차별의 사회를 유지할 것인지, 모든 아동이 평등하게 보육을 받으면서 자랄 수 있는 인권의 사회를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아이 하나를 무사히 키우는 것은 온 마을이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 때문이다.
글 박효원ㅣ사진 김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