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가득 채운 변화의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을까요? [2014 변화의 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그 결과들을 공유합니다. 미미하지만 꾸준히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나갈 작은 움직임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교육복지문화공동체 하모니는 프로젝트 B 지원사업으로 자칭 두메산골인 봉화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때로는 주체성이라는 말에 갇혀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아이에게 혼자 일어서야 한다고 다그치지는 않았는지. 최소한 지팡이는 쥐어주면서 일어서라고 해야 함을 뒤늦게 깨닫고 우리가 줄 수 있는 지팡이가 남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투명인간..?
하모니가 활동을 해나가면서 겪는 현실적, 정신적 어려움은 단체 출범 순간부터 현재까지 ‘지역의 뿌리 깊은 보수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저 아이들만 바라보고 시작되었던 활동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벽에 수없이 부딪쳤습니다. 아이들이 처한 기막힌 현실보다 그것을 둘러싼 지역 환경에 절망한 적이 더 많습니다.
올해만 해도 경로당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복지회관을 어른이 써야지 왜 애들이 쓰냐’며 기어이 하모니가 쓰던 1층 공간으로 들어온 지역 어르신들, 그래서 방학기간 내 진행하기로 한 리모델링 공사가 기한도 없이 미뤄지다가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인 5월 어느날 자리를 비우라던 군과 면, 겨우 자리잡은 임시공간에서 시끄럽다며 어린아이들에게 내일부터 오지말라던 막무가내 주인할머니… 결국 ‘덜 시끄러운’ 청소년들만 남고, 하모니 아이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시던 동네의원 의사선생님의 호의로 어렵게 마련한 공간으로 초등학생들이 옮겨갔습니다. 졸지에 두 집 살림이 시작된 것이지요.
리모델링이 끝난 7월, 2층으로 입주한 뒤의 현실도 녹록친 않았습니다. 1층의 모든 공간들(마을회관, 공동공간, 경로당)의 전기요금은 분할 청구되거나 면에서 내주었습니다. 반면 하모니는 2층 서예실과 공동공간을 포함한 전체 요금으로 30만원 가량이 청구된 고지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고지서를 건네주는 면 직원은 ‘언제 관변단체로 등록할 것이냐’고 따지듯 묻고, 비영리단체등록을 위해 방문한 군 담당자는 ‘비영리단체 등록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우리에게 되묻는 상황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하모니를 둘러싼 환경입니다.
알콜중독의 아빠와 정신장애의 엄마와 사는 자매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매는데, 십리가 넘는 시골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생 세 명을 데리고 걸어가야 하는 여학생은 오늘도 가출을 꿈꾸고 있는데…그 아이들은 우리 눈에만 보이는 투명인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히 우리 눈앞에 있고 때론 눈물로, 때론 반항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어쩌다 이 깊은 산골에서조차 이 아이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일까요.
올 상반기 내내 이 아이들이 세월호의 아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눈 앞에서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쳐도 듣지 못하는, 아니 듣지 않는 현실의 축소판이 이 봉화, 춘양에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하모니에 모여드는 많은 아이들이 바로 투명인간입니다. 당연히 부모가 멀쩡한 집 아이들보다 마음이 훨씬 더 쓰입니다. 이 아이들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는 무기력과 낮은 자존감을 떼어버리기 위한 고민은 어떤 활동을 하든 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때문에 잘 하는 아이를 더 잘 하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적고, 하지 않으려는 아이, 잘 못하는 아이를 꾸역꾸역 같은 무대로 밀어올리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활동가들 내부에서 역차별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이 아이들과 함께 2년간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어떻게 해주리라는 기대는 이미 내던져버렸습니다. 아무도 안 도와주니 빨리 스스로 일어나보자고, 하모니 선생님들이 도와주겠다고 아이들을 부추겼습니다. <2014 아름다운재단 변화의 시나리오 B – 산골청소년들의 단체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역량강화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청소년들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주체성과 자발성을 길러 자기주도적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돕고, 단체의 주인으로 거듭나 그 힘으로 지역의 보수적 문화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초석을 만드는 것’이 2014년 사업의 핵심 내용입니다. 아이들은 밴드, 미술, 만들기, 사진 등 하고 싶은 동아리를 선택해 활동하였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책임져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처음엔 동아리 활동 속에서 사소하게 요구되는 자발성조차 힘겨워했습니다. 동아리를 이끄는 활동가들은 기대의 많은 부분을 접고 기다리고 지켜봐주는 일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시키는 일조차 해내기 어려웠던 아이들이지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고 동아리 활동 속에서 요구되는 기능적인 면도 점점 향상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의욕만 앞서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아이들, 주체성의 무게를 도저히 견디지 못한 아이들 몇몇은 중도 포기하는 안타까운 과정도 있었습니다.
밴드동아리는 틈틈이 인터넷 강좌로 악기를 익혔고, 어렵사리 닿은 인연으로 강습다운 강습을 받게 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1년 동안 총 여덟 곡을 완주하며 자신감도 붙었고 지역 행사에 참가해 여러 차례 공연 무대에 서는 등 하모니 동아리의 선두주자로서 전체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미술동아리는 벽화로, 만들기 동아리는 서각 기법을 배워가며 하모니의 새 공간에 걸 간판 만들기로, 사진동아리는 출사 나가서 찍은 사진을 엽서로 예쁘게 인화하며 한 해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들은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것에 스스로도 놀라워합니다. 작은 변화와 성장에도 기뻐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그저 이쁘고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하모니 안과 하모니 밖의 온도 차는 무척 큽니다. 조그만 관심을 기울여주고 조금만 도와주면 정말 예쁘게 성장할 아이들을 방치해두는 지역의 무관심을 어떻게 걷어 나갈 수 있을지 정말 고민입니다. 하모니는 활동가 모두 하모니가 활동하는 지역의 이웃 면에 살고 있는 여성들입니다. 여자가! 남의 마을에 와서! 학교에 가두어 두어야 안심인 청소년을 끌어내 분란을 일으킨다는 시선 속에서 3년을 꿋꿋이 버티어 왔습니다.
하모니 3년차,
올해의 과정을 통해 얻은 몇 가지 교훈
그 첫째는 어떻게든 이 산골마을에 맞는 순환적 활동구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시와 시골은 삶의 패턴이 매우 다릅니다. 아침이면 집을 떠나 출근하고 일들이 분화되어있는 도시와 달리 일-집-마을이 공존하는 구조인 시골은 삶의 구조자체가 다릅니다. 활동가들의 삶도 이 구조 속에 온전히 녹아나야 합니다. 직업으로서의 활동가가 아니라 마을에 뿌리내린 한 주민으로서 삶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확보해야 합니다. 마을과 집, 일터가 자연스레 순환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마을을 기초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도시는 어른이 모이는 곳,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분리됩니다. 시골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모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서 서로의 삶을 의지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아, 아동, 청소년, 어른 각각이 다른 공간에서 따로 모이는 분리된 구조가 아닌 형과 누나가 어린 동생과 함께 올 수 있는 구조, 어른들은 그곳에 드나들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는 공간. 내가 많은 것은 나누기도 하고 부족한 것은 얻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 작은 마을 단위들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런 작은 마을이 기초단위가 되어 조금 더 큰 단위에서 서로 연합하여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할지 모르지만 하모니는 더 작아지되 더 통합적인 모습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아동청소년이라는 분리된 한 부분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삶이 모두 함께 스며들어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것입니다. 더 작게 더 깊게 마을 속으로… 그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이 겨울 하모니의 과제입니다.
글 / 사진 : 교육복지문화공동체 하모니
교육복지문화공동체 하모니는 다양한 교육, 복지, 문화 활동을 통하여 지역민이 서로 도와주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지역 공통체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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