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 할 꺼리를 찾다가 아! 하고 떠오르는 주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코.바.늘.
사업내용보다 이런 신변잡기적인 내용의 블로깅을 더 즐긴다는 것은 탑씨크리트.
다양한 패턴으로 엔틱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는 코바늘을 늘 배우고 싶었으나 기회를 찾지 못하던 중, 재단의 지애킴님이 고급 기술 보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떼쓰고 매달려 코바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글을 뒤져보니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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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꼬물락 꼬물락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몰입해서 일하다가 쉬는 시간에,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 집에 가서도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짜잔. 이틀 만에 드뎌 첫 작품인 컵받침 완성! (감동의 눈물 大방출)
원형을 만들 때는 가운데에서 조그맣게 시작해서 코 수를 조금씩 늘려가야 하는데, 코가 모자라면 모양이 쪼그라들고 코가 남으면 프릴처럼 쭈글쭈글해진다는 것이 함정. 처음에 몇 번이나 풀었다 다시 했다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첫 작품에 이어 짝꿍 컵받침도 비교적 수월하게 하루 만에 완성.
네모, 동그라미 모양에 이어 다음은 패턴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도안을 보고 깨작거리다가 꽃모양, 프릴 모양도 만들어보고 즐거운 마음에 스승 지애킴님 자리로 자랑하러 뻔질나게 드나들었더니 이만 하산하라는 (청천벽력같은) 스승님의 말씀. ㅋㅋㅋㅋㅋ
이미 코바늘의 매력에 깊이 빠진 저는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몇 권 빌렸습니다. 실 뭉치도 여러 종류 사서 쟁여놓으니 마치 식량을 비축해 놓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 책을 보면서 패턴이 들어간 도일리를 제작해보았습니다. 암호 부호 같은 도안을 잘 보면서 똑같이 따라해 보니 제법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비슷한 모양으로 친구 부부에게 커플 컵받침을 만들어 선물하니 좋아라 하더군요.
↓ 아래 사진은 굵은 면사로 삼각형 패턴이 들어간 매트를 만들어 발받침(?)으로 쓰려고 했으나 정성스레 만든 것을 차마 발로 밟을 수 없어 의자 위에 방석 느낌으로 모셔놓았습니다. 탄성이 없는 굵은 실로 작업하는 것은 손꾸락이 너무 아프더군요. ㅠㅠ
패턴 만들기에 재미를 붙이자 상태가 심각해졌습니다.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코바늘을 하는 것은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머리속에 갖가지 패턴들이 돌아가고, 심지어 잠결에도 도안 연구를 하는 사태가…. 뭔가를 새롭게 배우면 파고드는 성격이긴 하나 컵받침 하나 만들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한 코바늘에 이렇게 푹 빠질 줄은 저도 몰랐다는.
하루는 옆팀 황모 간사님이 지난밤 꿈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 사무실의 까만 벽에 페인트가 떨어져 허옇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제가 나타나 코바늘로 그 땜빵을 메우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 꿈에까지 진출하고 참 바쁘네요. 허허허….
그 후, 내가 너무 코바늘에 빠져들었나 싶어 한 동안 좀 자제했습니다. 여름이 되어 날이 더워지니 실로 하는 작업이 힘들어 진 탓도 있구요. 그래도 가끔 생각날 때 하나씩 만든 것을 모아봤습니다.
지난 설날에는 저의 첫 조카가 사랑하는 ‘실바니아 인형’의 가방을 만들어 준 적이 있습니다. 배낭형, 핸드백, 숄더백. 내친김에 머리에 쓰는 가발까지… 조카의 폭발적인 반응에 자신감이 붙은 저는 친구 딸의 입학 선물로 인형옷이나 악세사리를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바비인형이 떠올랐으나 잠시 후 친구가 보내 준 인형 사진은….음….. 생각보다 좀 큰 느낌?
딸아이가 잘 때마다 꼭 안고 자는 토토리라는 이름의 귀여운 토끼인형의 미니스커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따님의 취향이 깐깐하기 때문에 실 색상, 패턴, 길이 등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하고 작업에 착수. 일주일 후 고객님께서 조금 더 길게, 그 다음 주에 조금 더 길게 주문하셔서 결국 미니스커트보다는 조금 긴 A라인 연분홍색 치마가 완성되었습니다. 입고 벗기에 용이하도록 허리 뒤편에 넉넉한 트임과 허리끈도 장착했습니다.
토토리의 치마 이후부터는 계단에서 구르는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손목을 살짝 다쳐 작업에 몰두하지 못했네요.
의욕은 항상 앞서나 한동안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꼬물꼬물 소꿉장난하듯 재미난 코바늘 놀이. 다음에 또 만나요~
Special thanks to 지애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