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2019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산업재해를 당한 후 산재보상을 받지 못했거나, 불충분한 산재보상으로 인해 생계 곤란 및 사회복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 계층 산재노동자의 요양과 재활을 돕기 위한 공모사업을 통해 총 73명이 선정되었습니다. 64명을 대상으로 월 50만원의 긴급생계비를(최대 3개월/ 재해정도, 소득기준, 근로능력에 따라 지원기간 상이), 9명을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의 법률지원 비용(최대 100만원)을 지원했습니다. 공모사업 지원결과와 지원대상자 인터뷰는 제도 개선 연구에 포함되는 질적연구 자료로 활용됩니다. |
홀로 감당했던 고통의 무게를 덜다
보육시설 퇴소 후 리모콘 제조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신 이명진(가명, 56)씨.
화학물질, 고무제품 등을 뜨거운 열로 다루는 일이었지만 보호 장비로 장갑만 지급될 뿐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며 천식을 앓게 되었고, 합병증으로 부신피질 기능저하가 왔지만 공장에 다니는 동안에는 계속 일하기 위해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가 폐업하게 되자 산재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폐업한 회사 서류를 떼어 오라는 공단 요청에 주저하다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불량제품 분쇄 공장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고, 플라스틱 원료 알갱이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타박상으로 알고 진통제만 처방 받아 계속 일했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져서 걷기 불편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왼쪽 골반 골절 진단을 받고 보름 후 응급 수술을 받았습니다. 골절된 골반 뼈가 신경까지 손상시켜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어야 합니다.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는 지지와 응원
하청업체였던 회사에서는 보상금을 줄테니 산재보험은 신청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보상금은 잠깐일텐데 더 이상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괴로웠습니다. 그럼에도 산재신청을 주저하고 있을 때 의사선생님의 소개로 아름다운재단 지원사업을 알게 되었고, 노동건강연대 산재 신청 상담과 생계비 지원이 연결된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노동건강연대 상담 노무사가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산재신청을 하게 되었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사고 전·후 비교를 위해 다치기 전 엑스레이 사진과 의무기록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다치기 전에는 정형외과 검진이나 진료를 받은 적이 없었던 명진 씨는 재차 이에 대한 사유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신청과정이 짧지도, 쉽지도 않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 사람들이 있어 이번에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인테리어업체 사업주였지만 일감이 끊기자 다른 건설 현장에 일급 아르바이트를 나갔던 김상근(가명, 43세)씨는 노후 지붕 판넬 작업 중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다.
워낙 큰 사고라 가족들은 상근 씨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에 가까운 입원기간 동안 일감을 소개시켜줬던 중개인도 연락을 끊고 도망가 버리고, 일하러 갔던 사업장은 폐업신청을 했습니다.
“버림받은 느낌이에요. 내가 다쳤으니까 연락을 안 하고, 내가 다쳤으니까 돈을 안 갚고 그러는구나 하는 생각. 원래 사람은 나한테 필요하고 도움이 돼야지 찾지 않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그냥 이유 없이 화가 나요. 사고 나고 나서는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요.”
퇴원 후 통원치료를 하면서 산재보험 신청을 했고, 두 번째 시도 끝에 최근에서야 산재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보상을 받은 후에도 비급여 치료비와 약값은 여전히 부담입니다.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습니다.
김상근씨에게 생계비 지원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였습니다.
“금액을 떠나서 여기서 나를 지원해주는구나, 따뜻한 것 같아요. 인정받는 느낌.”
산재보험은 마지막 선택지
4개월간 진행된 공모 결과 재단 지원사업에 신청한 대부분 산재 노동자들은 회사에서 계속 근로하는 동안에는 산재보험 신청을 하지 않다가 회사가 폐업하거나, 퇴사를 하거나, 권고사직 또는 해고를 당한 경우, 근로능력을 거의 상실한 경우 산재보험을 신청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재로 인한 부상과 질병이 회복되지 못하였음에도 신청기간이 지나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와 산재보험으로 치료와 보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후유증이 발생하거나 비급여 치료비가 높아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아픈 것은 참아야 하고, 다친 것은 쉬쉬 해야하는 것이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었습니다.
노동은 고단한 것이지만 우리는 모두 살기 위해 일터에 나갑니다. 다치고 병들고 죽기 위해 일터에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동자의 건강은 안전한 일터의 지표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구조적인 무감각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약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절대로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며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정부는 아픈 사람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중략)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다쳤는데, 어떻게 세상이 이리 조용할까요. 그들 대부분은 아프다는 신음 소리조차 세상에 내지 못한 것 아닐까요. 한국 사회의 가장 절박한 질문은 ‘그들이 어떻게 해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들의 삶에 더 귀 기울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 상처를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그 고통은 노동자의 몸이 온전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통도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 김승섭 교수 2018.02.23. 시사IN ‘덜 다치고 더 죽는다 이상한 산재통계’ 中
글 | 오수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