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이 <밀어주기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작은변화를 만드는 시민단체를 소개하고, 시민들의 기운을 팍팍 모아 이들의 활동을 밀어줍니다. 아름다운재단의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된 ‘문화기획달’은 지방의 스쿨미투를 이야기 하려합니다. 단체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지 않도록 ‘문화기획달’을 밀어주세요!

스쿨미투 피해자가 지역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요?

2018년 4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창문에 커다란 글씨가 등장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노란 포스트잇을 연결해 만든 메시지였다. ‘We Can Do Anything’, ‘#With You’. 그리고 ‘#Me Too’. 이렇게 시작한 스쿨미투 운동은 다른 학교들로 급속히 번져나갔다. 서울시교육청도 특별감사에 나섰다.

같은 해 5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이 경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이 학교에서도 스쿨미투가 터져 나왔다. 학교 측은 예정됐던 나머지 페미니즘 교육을 취소했다. 문제의 원인을 페미니즘 교육에서 찾은 셈이다.

달은 물러서지 않았다. 도교육청에 진상규명 민원을 내고 대책위도 꾸렸다. 돌아온 반응은 일치단결한 백래시(반발)였다. 지역민과 지역 언론사가 집단적으로 단체와 활동가를 음해했다.

달은 오히려 더 본격적으로 공론화에 나섰다. 해를 넘긴 2019년, 달은 아름다운재단 지원을 받아 ‘’지방’ 스쿨미투 잔혹사’ 사업을 시작했다. ‘지방’의 다양한 스쿨미투 사건을 조사해 이를 책과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다

회유, 협박, 2차가해…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스쿨미투

’지방’의 스쿨미투는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문화기획달의 두 활동가 달리와 자정에 따르면, ‘지방’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며, 지역사회 인식과 정서가 더 보수적이고, 수도권에 비해 사건화 되기도 어렵다. 스쿨미투 운동이 벌어지기 어려운 조건은 다 갖춘(?) 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지역이 좁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혈연과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있다. 공무원이 해당 학교 교사의 친구일 수도 있고, 지역신문 기자가 해당 학교 졸업생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 당사자가 노출되기도 쉽다. 지역 내에서 각종 소문이 퍼지고, 사건은 그저 가십거리로 소모된다. 해당 학교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지나갈 때 사람들이 “쟤네가 그거잖아”라고 수근대기도 한다.

그나마 사건에 침묵하거나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얌전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피해 당사자를 향한 회유와 협박, 2차가해도 흔하다. 교사들은 문제를 제기한 청소년들을 적극적으로 ‘색출’한다. 주민들은 “너희 때문에 학교와 지역의 명예가 실추됐다”고 당사자를 비난한다. 그래서 때로는 피해 당사자들이 미투에 나선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피해 당사자들이 이렇게 고통을 겪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알려지지 못한다. 전국 언론은 서울 밖 사건에 관심이 별로 없고, 지역 언론은 사건을 모른 척 한다. ‘지방’ 스쿨미투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고 누구도 공론화하지 않는 스쿨미투인 것이다.

문화기획달이 사업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달은 그 동안 다양한 ‘지방’ 스쿨미투 사례를 수집해 분석했다. 그리고 지금은 전국을 누비면서 피해 당사자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폭력 만연한 학교… 올해는 ‘백래시’ 강해져

그 동안 확인한 학교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교사가 아니라 남성 청소년이 가해자인 경우도 있었다. 성희롱 및 여성혐오 발언이 빈번했고, 수위도 매우 높았다. 두 사람은 “사건을 들여다보는 게 너무 괴롭다”면서 “활동가 심리 치료비를 사업 예산에 넣을 걸 그랬다”고 농담을 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최근 들어 학교에서 여성혐오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달리 활동가는 “지난해에는 청소년들이 교육 내용에 많이 호응했는데, 올해는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늘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여성혐오가 확산될수록 피해 당사자가 성폭력에 대해 말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도 바로 인터뷰이(인터뷰 대상) 발굴이다. 사람들은 처음에 호의적인 자세를 보이다가도 결국 마음을 바꾸곤 했다.

그래도 학교 4~5곳 사례와 관련해 여러 인터뷰이를 만났다. 달은 이번 인터뷰를 아주 세심하게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인터뷰이와 함께 사전에 조율한다. 피해 상황을 꼬치꼬치 묻지 않고 인터뷰이가 얘기하고 싶은 만큼만 듣는다. 사건에 대한 관점이 자신과 달라도 그냥 듣는다.

두 사람은 “한 사건에 연루된 청소년들도 기억이나 생각이 다르다”고 전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고 “사과만 받아도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사회는 흔히 ‘피해자라면 당연히 같은 감정을 겪고 같은 대응을 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정해진 ‘피해자다움’은 없다.

그래서 사건이 터진 그 때 학교가 나서서 피해 당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함께 해결방안을 논의해야 했다. 그런 과정 없이 침묵을 강요당했던 청소년들은 혼자 외롭게 고통의 시간을 관통했다.

광주 전남지역에 접수된 스쿨미투 사건들 서류

[광주 전남지역에 접수된 스쿨미투 사건들]

 “성희롱 하고 2차가해 하는 사람은 우리의 뮤즈”

경제∙문화적 기반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은 노후화 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방’이 그만큼 더 보수적이고 더 가부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귀촌 인구가 많은 곳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귀촌한 남성들이 농촌 문화에 동화되곤 한다. 진보적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달의 여성주의 문화기획은 아주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사실 달 활동가들이 처음부터 농촌 페미니즘 활동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더 나은 삶을 찾아 귀촌을 했고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하는데, 내가 너무 불편해서(달리)” 나선 것이다.

달은 2016년부터 ‘농촌 페미니즘’ 사업을 진행해 왔다. 직접 겪은 성차별과 성희롱 사례를 담아 ‘농촌 성문화 다시 보기’ 자료집을 만들었다. 제도와 문화를 바꾸기 위해 성평등 연구교사 모임을 열고, ‘여성공무원 리더십 임파워링’ 사업도 시작했다. 지역 미인대회 ‘춘향제’도 모니터링했다.

사업들은 다양하지만, 모두 활동가들의 생활 속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성희롱이나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을 두 활동가는 ‘뮤즈’라고 부른다. 끊임없이 사업에 대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지방’ 스쿨미투 잔혹사’ 사업도 이 같은 방식으로 기획됐다.

[문화기획달 단체 사무실 벽면에 붙여진 자치규약]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다른 모든 글들이 그렇지만, 성폭력 사건은 특히 독자의 자세가 중요하다.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편견 없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달리는 “청소년을 무력한 약자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쿨미투는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다. 청소년을 그저 ‘어른들이 보호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청소년들은 결코 학교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학교 안의 권력관계가 바뀌지 않으면 스쿨미투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정은 “사건이 일어난 지역을 비하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성폭력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해서 더 나쁜 지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더 가부장적인 ‘지방’의 상황 역시 수도권 중심의 사회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함께 고민해야 비로소 ‘지방’ 스쿨미투 운동이 성공할 수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피해를 경험한 청소년 당사자에게도 한 마디를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던 두 사람은 얼마 전 만난 청소년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느 날 학교의 모든 화장실에 페미니즘 슬로건이 담긴 포스트잇이 붙었대요. 누군가 몰래 붙인 거죠. 그 청소년은 자기만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있었던 거에요. 한 포스트잇에는 ‘나도 페미니스트다. 너도 있고 나도 있으니까 우리 잘해 보자’고 메모도 있었대요. 우리도 그 말을 하고 싶어요.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고요.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요.”

글 |박효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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