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없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우연찮게 읽은 김수영 작가의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 내려가 봐’의 책은 꿈도 미래도 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무너진 가정의 아픔으로 유년시절을 삐뚤어진 비행소녀로 보냈던 그녀가 어느 순간 펜을 잡더니 도전 골든벨을 울렸다. 그 기운을 받아 명문대 영문과를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 입사, 이듬해 세계를 향해 더 큰 도전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과감하게 내 던진 그녀의 스토리를 모델로 삼아 나 또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진지하게 설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써내려간 59개의 꿈을 토대로 부지런하게 달려온 나는 현재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4학년 영문학과 학생이다. 대학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을 준비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은 정말 찬란하기 그지없다. 혼자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혀야했던 무수한 편견들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이지 않은 차별과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하며 매 순간순간을 값진 경험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끔 혼자서 견뎌내기 힘든 시간과 마주하게 될 때면, 19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던 아동복지시설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던 부모가 없는 ‘고아’로서의 나를 인정하고 지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나와 같은 상황으로 똘똘 뭉친 원생 친구들과의 시설에서의 생활은 아직까지도 내가 힘들 때면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따돌림 당해서 도망가고 싶었을 때, 선배들에게 너무 많이 맞아서 죽고 싶었을 때, 어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타 원생들과의 차별대우를 당하였을 때도 있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했던 무수한 억울한 일들처럼, 좋았던 추억보다는 지우고 싶은 상처투성이로 얼룩진 나의 과거가 진하게 묻은 시간들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런 시간들이 오히려 나를 더욱 굳세게 하였고, 냉정한 세상 속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최고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동복지시설 출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사실 쉽지만은 않다. 퇴소를 기점으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유학준비부터 LH전세 신청, 수급자 신청, 대학입학준비, 적금, 민원서류발급, 기업체 장학금신청, 그리고 자잘한 세상 살아가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 혼자 힘으로 발품 뛰어 알아보고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일 힘들었던 것은 가끔 누군가에 기대어 어리광도 부려보고, 힘들다고 칭얼대고 싶기도 하고, 푸념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울타리 같은 현실적 존재가 없다는 것을 자각할 때이다. 그러나 그런 울타리 같은 존재를 비로소 대학에 와서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하는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장학생들은 그간 나의 존재에 대해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혼란스런 정체성을 가진 채 살아가는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꿈과 목표를 가지고 야심차게 대학에 입학하여 당당하게 혼자 힘으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정말 깊은 감명과 위안이 되기 충분하였다. 그들 덕분에 나도 다시 일어나 힘차게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전공수업을 통해 더 깊은 매력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는 살아생전 이런 현명한 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단지 생각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
이 한마디가 설명해주듯이, 모든 순간들은 한 치의 앞도 예상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또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면 좋은 일들이,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고 나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올해 25살, 난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또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욕심쟁이 청년이다.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싶고, 책도 쓰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고, 스케이팅도 타고 싶고, 더 많은 자격증도 취득하고 싶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싶다. 남들이 볼 때, 혼자기에 더욱 불가능해 보이는 모든 일들을 보란 듯이 해내어 세상이 주는 편견에 당당히 맞서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오히려 혼자기에 더 절실한 마음으로 도전하고 실행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국 팔도 곳곳에서 꿈을 향해 끊임없는 도전과 혼자만의 싸움으로 어려움을 맞서는 보호종료 친구들이 그들 각자 가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묵묵하게 각자의 길을 걸어가길 희망한다. 비록 혈연도 지연도 없는 우리지만, 각자가 갖고 있는 공통된 아픔을 통하여 우린 더욱 하나로 결속되어 서로의 아픔을 달래고 치유해주기에 충분하다.
우연히 접한 책 한권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던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도전, 그리고 오늘을 있게 해준 값진 경험들처럼, 내가 쓴 이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특히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젊은 소외계층 친구들에게 강력한 치료제가 되길 바란다.
“얘들아, 우리 비록 세상 살아가는 게 쉽지 만은 않지만 절대 무너지지만 말자! 우린 홀로 설 때 비로소 빛을 발휘하는 보석 같은 존재들이니 말이야. 파이팅!”
글 ㅣ 2019 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 장학생 이승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