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2학년인 이수민 씨는 삼남매의 맏이다. 둘째는 중학생이고 막내는 아직 어린 유치원생이다. 수민 씨는 이제 슬슬 동생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자신이라도 아껴보려고 되도록 공공 도서관을 찾아 무료로 공부를 한다. 역시 고등학생 2학년인 고희석 씨는 곤충을 사랑하는 ‘곤충 덕후’다. 유난히 말수가 적은 그는 대부분의 대화를 단답식으로 끝냈지만, 곤충 얘기가 나오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휴대폰에 저장된 곤충 사진들을 보여줄 때는 설명도 제법 길어졌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재단의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장학생들이다.
아름다운재단은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와 함께 고등학생들에게 200만원씩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장학생들은 이 돈으로 입학금을 낼 수도 있고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통학 교통비 등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자격증 취득이나 예체능 활동을 위한 학원에 다니거나 공부에 필요한 참고서를 살 수도 있다.
교육비 지원은 돈만 주는 사업이 아니다
아름다운재단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의 특징은 성적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장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 성공하는 것은 사업의 목적이 아니다. 그보다는 저마다 원하는 방식대로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래서 교육비 항목으로 입시학원 대신 예체능이나 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넣었다. 공부에 관심이 있는 고등학생은 교재를 사고, 예체능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은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학생들을 직접 만나 사례관리를 하는 이한결 부천나눔지역자활센터 주임은 “소설이나 과학 잡지를 사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 장학생들은 이 교육비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학업에 나가는 돈이 많아서 부담이 컸다”던 수민 씨는 이 돈으로 시험 기간 동안 독서실을 끊었다. 이 때는 공공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서 제대로 공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목별로 필요한 문제집도 샀다. 방학에는 헬스장에도 나갔다. 3살 때부터 곤충을 채집해온 희석 씨는 새로운 곤충을 만나기 위해 자주 집을 나선다. 경기도를 누비기도 하지만 종종 강원도까지 떠난다. 장학금을 이용해 차비를 내고 표본 제작에 필요한 용품도 샀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곤충을 직접 잡으면서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교육비 지원은 단순히 돈을 주고 마는 사업이 아니다. 장학생들의 삶을 제대로 알고 목소리도 제대로 들어야 정말 필요한 것을 지원할 수 있다. 그래야 장학생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제대로 지원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현재는 장학금을 줄 때 교육비를 세부 항목으로 나누고, 항목마다 사용 한도를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불편해하는 장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내년부터는 총액 안에서 교육비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기로 했다.
마침 수민 씨는 “사업에 참여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냐”는 질문을 받고 “지원받는 사람마다 필요한 게 다를 텐데, (항목별로) 한정이 되어있고 초과하면 안 돼서”고 조심스럽게 불만을 제기했는데, “내년부터 달라진다”는 답변을 듣고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렇게 장학생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듣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한다. 그래서 각 지역자활센터의 사업 담당자들은 장학생들을 직접 만나 상담을 한다. 그러면서 교육비 사용 과정에 대한 내용도 듣고, 장학생들의 관심사와 고민도 듣고, 가족이나 학교 안에서의 생활도 듣는다.
두 사람도 이한결 주임을 만나 상담을 한다. 학교생활도 이야기하고 진로 문제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이들에 따르면, ‘복지사 쌤’들은 확실히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보다 편하다고 한다.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할 거 같은 압박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한 마음 속 이야기도 쉽게 나눌 수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하고 싶은 거 다 해”
사실 두 사람은 정작 지원 신청을 할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희석 씨 역시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민 씨는 “(많이 기대 했다가) 안 되면 속상하니까”고 말했다. 이들에게 희망은 낯설고 두려운 무언가인 듯 했다. 뜻밖의 선물처럼 교육비를 지원받고 나서 두 사람은 조금 더 행복해졌다. 바라던 대로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더 즐겁게 취미 생활도 하면서 꿈에도 한 발짝 가까워졌다.
요즘 수민 씨는 한참 진로 문제가 걱정이다. 어릴 때는 그냥 다들 좋은 대학교에 가서 좋은 직장에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방식의 ‘성공’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 수민 씨의 꿈은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그렇게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학에 대해 물어본 친구들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을 때, ‘멘토’로서 도와주던 중학생의 수학 성적이 정말 올랐을 때 기분이 너무 좋다.
희석 씨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곤충이다. 요즘에는 특히 지네에 관심이 많다. “그 지네요?”라고 놀라서 반문하자 그는 “절지동물인 지네요”라고 답했다. 그에게 지네는 징그러운 벌레가 아니라 정확한 생물 분류를 갖고 있는 고유한 생명체이며 신비로운 관찰 대상이다. 아직 희석 씨는 진로를 정하지 않았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지금 배우는 전공이 적성에 잘 안 맞는 거 같다고 했다. 곤충 박물관이나 관련 샵에서 일하는 등 관련 직업도 고려하고 있지만, 그 분야에 진출하지 못해도 현재의 취미는 계속하고 싶다.
앞으로 이 사업에 지원할 또래 친구나 동생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하자 두 사람은 “꿈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사정 때문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한결 주임은 지원을 받는 장학생들을 향해 “많은 지원은 아니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성적은 상관없다. 많이 놀면서 꿈을 찾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참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꿈을 찾아야 할 시기에 대학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조언이다. 어찌 보면 200만원은 그렇게 큰돈이 아니다. 이 정도 액수의 돈으로 삶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돈은 낯설었던 희망과 행복을 다시 품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불평등한 사회의 출발선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 출발로부터 먼 길을 걸어가는 성장의 시간 동안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는 장학생 옆에 나란히 함께 할 것이다.
글 박효원 l 사진 김권일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가난해서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면 또다시 가난해집니다. 세대를 잇는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안정적인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배움과 미래에 대한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지탱해줄 버팀목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의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성적순으로 주는 ‘상금’이 아니라 미래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에 힘을 실어줄 ‘희망’이 되고자 합니다. ‘고등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은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와의 협력사업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