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2003년부터 ‘한부모여성가장건강권지원사업’을 통해 한부모여성가장의 근로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건강검진과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노동력이 생계를 위한 유일한 자산인 여성가장들에게 건강은 필수조건이라는 점에서 한부모 여성가장의 건강권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2019 한부모여성가장건강권지원사업’은 한국사회복지관협회(www.kaswc.or.kr)와 협력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그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살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장희숙(가명, 53)씨는 “생각을 못 했다”는 답변을 유난히 많이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드시냐고 물어도, 운동은 어떻게 하시냐고 물어도 그랬다. 자신의 건강은 희숙 씨에게 이처럼 ‘생각도 못한 일’이다.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는 부양자이며, 성인 장애인 자녀를 돌봐야하는 엄마니까.
희숙 씨는 국가에서 무료로 해주는 생애주기 검진도 지금까지 딱 한번밖에 받지 못했다.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그 오래 전의 검진에서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고 수술도 했다. 당시 의사가 “상태가 다시 나빠질 수 있으니 꾸준히 검사를 받으라”고 했는데, 그는 몇 번 병원에 가다가 말았다.
그러던 희숙 씨가 다시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번엔 큰 병원에서 제대로 받는 검진이었다. 또다시 자궁내막증이 문제가 됐고, 재검진 끝에 수술까지 받았다. 그러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훨씬 가뿐하다. 아름다운재단 ‘한부모 여성가장 건강권 지원사업’이 희숙 씨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공짜 건강검진을 앞두고도 그녀가 망설인 이유
장애아동의 부모는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다. 아이를 돌보는 노동이 워낙 고되기 때문이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사는 부모들도 대부분 손목에 무리가 가는데, 계속 성장하는 자녀를 오랜 세월 업고 안아 돌보는 부모들의 몸이 성할 리가 없다.
게다가 희숙 씨의 큰아들은 혼자서 신변 처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손이 많이 가는데, 사회에서는 선뜻 이 손을 내주지 않는다. 맡길 데가 마땅치 않으니 엄마가 나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 큰아들은 공격성이 심해져서 정신과 치료도 받는다. 입원도 생각했으나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었다. 희숙 씨는 자기보다 몸이 큰 아들의 손을 끌고 함께 다닌다.
이렇게 살아온 세월만큼 몸이 삭았다. 이제는 컵이나 문고리 잡는 것조차 힘들 정도다. 지난해에는 오른쪽 손을 쓸 수가 없어서 결국 정형외과에 갔다.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 검사도 했다. 근육이 다 파열됐고 날갯죽지까지 망가졌다고 했다. 그러나 한번 병원에 가면 이런저런 치료와 주사 비용으로 20만 원 정도가 나갔다. 이것도 대여섯 번 나가다가 말았다.
몸과 함께 마음도 다쳤다. 희숙 씨는 “위를 보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위’는 대단한 상류층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신랑 얘기, 가족 얘기를 하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도 희숙 씨는 혼자 참 많이 외로웠다. “거짓말이라도 쳐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배가 자꾸 아팠다. 10년 전부터 한 번씩 위장이 뒤틀렸고, 한번 아프기 시작되면 오래 증세가 지속됐다. 4~5년 전부터는 머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면 속도 나빠져서 먹은 걸 다 게워낼 정도였다. 그래도 며칠을 참다가 결국 응급실에 갔다.
희숙 씨는 아들들만 돌볼 수는 없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예전에는 파출부 일도 했는데 손이 아파서 지금은 다른 장애아동을 돌보는 활동보조인 일만 한다. 4년째 돌보던 아동은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그 동안 덩치가 커지고 고집도 세졌다. 그러나 희숙 씨는 “그 집도 한부모 엄마”라면서 “내가 아이를 못 돌본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갑자기 실감한 위기… “아들을 시설에 보내긴 정말 싫은데”
이렇게 스스로를 챙기는 일에 영 젬병인 희숙 씨가 드디어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름다운재단 지원이 좋은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럴 때조차 희숙 씨는 마음이 흔쾌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검진을 받기 전에 좀 망설였다고 한다. 담당 복지사에게 “검진 안 받고 싶다”는 말도 했다. 진짜 병이 있을까 봐 무서웠던 것이다.
“처음에는 한다고 했는데, (검진) 받기 싫더라고요… 장애아동을 둔 엄마는 아프면 안 돼요. 그런데 내가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니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큰아들이 생활할) 시설에 대기 신청을 해야 하나?”
희숙 씨는 “혼자 살면서 왜 장애 자녀를 데리고 사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시설에 보내라는 것이다. 그 말이 그에게는 그렇게 큰 상처였다. 그는 “하루에 10원을 벌어도 아들과 함께 있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아들을 돌보고 싶다”고 했다.
막상 검진을 받아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의사들은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대우 받는 느낌”으로 검진을 받았다. 그러나 검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몸을 혹사한 결과가 수치로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괜찮다”고 아무리 스스로를 달래도 몸은 속지 않고 있었다.
희숙 씨는 진단 결과를 100번 쯤 읽었다고 했다. 자궁내막증, 녹내장, 고지혈증, 갑상선과 유방의 혹… 그의 말대로 “좋은 내용이 별로 없는” 진단서였다. 그는 급한 마음에 바로 다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녹내장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지만, 고지혈증은 꽤 위험한 상태였다. 그리고 자궁내막증은 수술을 해야 할 정도였다.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수술도 마쳤다. 그러나 수술을 할 때도 편하게 쉴 수 없었다. 그는 22살 아들과 하룻밤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오전에 큰아들을 성인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 보내고 수술을 한 뒤 당일에 퇴원하는 일정을 잡았다. 작은아들에게 형을 데리고 와달라고 부탁하고, 활동보조를 하는 집에도 양해를 구했다.
이렇게 여러 곳에 부탁을 해놓고 나서야 일정을 조정하고 나서야 희숙 씨는 한 나절의 시간을 수술에 쓸 수 있었다.
‘스스로를 돌보기’, 아직은 영 어색하고 낯설지만
참 심란한 검진 결과를 받았지만, 희숙 씨는 자신을 돌보는 일이 참 낯설다.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고지혈증 영양제는 챙겨먹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들은 눈에 대해서는 좀 소홀하다. 눈 영양제 먹는 걸 자꾸만 까먹는다. 희숙 씨는 도무지 이런 일에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는 미안한 듯한 말투로 “아직은 정신을 못 차렸나 봐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변화는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 먹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몸을 움직이려고 한다. 매일 큰아들을 센터에 데려다주고 난 뒤에는 근처 공원을 돌면서 산책을 한다. 그에게는 그게 가장 큰 운동이자 자신에게 주는 여유이다. 앞으로는 생애주기 검진도 놓치지 않고 받을 생각이다.
마음도 좀 더 편하게 먹으려고 생각한다. 희숙 씨는 그 동안 너무 긴장하면서 살았다. 주변에선 늘 그에게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르냐”고 했다. 늘 바쁘게 사는 게 걸음걸이에까지 익어버린 것이다. 요새 그는 복지관에서 알려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명상도 한다.
여전히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이 더 익숙하지만, 희숙 씨는 이렇게 조금씩 자신을 돌본다.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가 첩첩이지만, 희숙 씨는 조금 더 건강하게 한발 한발을 내딛을 것이다. 쫓기는 듯 바쁜 걸음이 아니라 산책하듯 행복한 걸음으로. 변화는 이제 시작됐다.
글 박효원 | 사진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