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자리에 앉자마자 셰어의 활동가 나영님과 후니님께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입니다.
이 길고 어려운 이름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이하 셰어)는 아름다운재단 공익단체 인큐베이팅 사업의 일곱 번째 선정 단체입니다. 많은 단계를 거쳐 지난 10월 공식적으로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셰어는 단체로서 본격적인 틀 갖추기에 들어섰습니다. 마침 인터뷰를 한 날이 임의단체 등록을 마친 날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는데요. 임의단체라 할지라도 아직 조직을 만들어 가는 단계라 정식 로고도, 독립된 사무실도 없지만 짱짱한 활동력과 전문성을 가진 실무 활동가 후니님과 나영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이들을 만나 셰어가 그리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들어 보았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
셰어가 처음 재단의 공익단체인큐베이팅지원사업에 신청서를 냈을 때, 담당 간사는 물론 해당 팀 간사들도 성적권리와 재생산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야 했어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할 뿐 아니라 개개인의 일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구체적 언어가 있는지 몰랐는데요. 이번 인터뷰를 빌려 셰어에게 정확하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이 다 무엇인가요?”
“우리가 성을 생각하면 보통은 일상생활이나 사회와 분리된 영역인 것처럼 생각하죠. 게다가 성을 떠올리면 보통 성생활 혹은 생식과 관련한 것들만 생각하는데, 성적권리라고 하면 좀 더 포괄적으로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면서 성과 관련해서 같이 연결되어 있는 제반의 권리들을 얘기해요. 좁게 보면 본인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성적 관계를 맺고 행위를 할 권리에서부터, 원치 않는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그리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나 몸에 대해서 자유롭게 탐색할 권리,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주거나 경제적인 요건을 보장받을 권리 등을 같이 포함하는 개념이죠.
재생산권리는 성적권리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아요. 재생산권리도 출산과 임신, 피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보장받을 권리만이 아니라 , 성적권리와 연결해서 그런 제반의 권리들을 사회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보장받을 권리까지 다 포함하는 개념이죠.
한국 사회는 사실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 모두 개인의 영역으로만 맡겨놓고 책임을 전가해 왔죠.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 단순히 여성이 처벌을 받느냐 마냐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과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임신 중지뿐 아니라 임신을 유지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불평등하게 요구되거나 혹은 현실적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신을 포기하거나 이런 조건이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게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저희는 권리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권리들이 실현 가능한 사회정의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 ‘재생산 정의’ 운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긴 이름의 단체가 되었어요. ”
성적권리와 재생산에 이어 이름에서 ‘센터’로 단체 성격을 정의한 데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셰어의 대표이자 활동가인 나영님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도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단체 등 각 영역에서 성적권리와 재생산에 대해 논의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 운동이나 지원단체 등에서는 청소년들의 피임이나 임신, 출산, 성교육에 관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여성단체나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관련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하지만 대상자 지원 경로나 정보, 정책적 논의 등이 영역마다 각기 다르게 접근하고 있어, 서로 잘 연계되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셰어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영역들의 성적권리와 재생산 관련 활동이 셰어를 통해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교육, 의료지원, 법정책 연구 등에서 서로 협력하고자 합니다. 또 필요한 자료를 셰어를 통해 함께 생산하고 배포할 수도 있고요. 이런 역할을 해내면서 더 장기적으로는 각 영역이 필요로 하는 의료지원이 가능한 클리닉의 역할을 해 낼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셰어가 바라는 활동의 장기적 비전을 담아 ‘센터’라고 부르게 된 거죠.
셰어가 되기까지
셰어는 사실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받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네트워크 형태로 활동해 온 베테랑입니다. 2015년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으로 만난 사람들이 셰어의 전신인 <성과재생산포럼>을 꾸렸고 , 장애여성뿐 아니라 청소년, 성소수자 등 담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대상들을 포괄해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와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또 모자보건법의 문제와 형법상 의 낙태죄가 현실에서 가지는 모순점 등을 짚어보며, 본격적으로 성적권리와 재생산에 관한 법적, 의료적, 사회적 문제들을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성과재생산포럼으로 2016년 낙태죄 폐지 운동에 참여하면서 낙태죄 폐지 이후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 있는 의료현장에서 어떤 제도나 역량이 필요한지, 정말 소외된 사람들은 앞으로 성적권리와 의료 서비스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성적 권리, 재생산 권리를 한국사회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등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성과재생산포럼은 각자 활동이 있는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모임으로 심화된 고민을 운동으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의료현장, 교육현장, 성소수자, 청소년, 장애여성 등 대상자를 만나 활동하기 위해서는 포럼의 형태를 넘어선 실무체계를 갖춘 조직이 필요했죠. 셰어는 그런 필요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성과재생산포럼>으로 성적권리와 재생산에 대한 담론을 말해 왔다면, 앞으로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라는 이름으로 담론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구체적 활동’을 해 나가게 된 것이죠.
셰어의 앞으로를 상상해 봅니다
아름다운재단의 공익단체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은 총 3년을 바라보고 단체 설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3년의 지원이 한 번에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매해 중간심사를 거쳐 연속 지원 여부를 꼼꼼히 판단합니다. 단체가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걸으며,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함이죠. 셰어는 올해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앞으로 걸어갈 3년을 미리 계획해 보았습니다.
“1차년도에는 일반적인 의료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장애인이나 청소년, 이주민, HIV/AIDS 감염인,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간담회를 통해 일반적인 보건의료 환경에 접근성이 낮은 분들, 사회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 복지 시스템 안에 있지만 장애나 무능을 증명해야만 하는 조건에 있는 분들이 셰어와 적극적으로 연계되고, 저희도 이와 관련한 법정책 연구 활동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감대!공감대!>와 <에브리바디 플래져랩> 프로그램도 기획 중입니다. <성감대!공감대!>는 소수자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대상자가 있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성 건강상담, 의료지원을 하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에브리바디 플래져랩>은 모두를 위한 포괄적인 성교육 활동이죠. 1년 차에는 <성감대!공감대!>에 우선하여 셰어와 연계될 수 있는 의료 현장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가칭)’셰어의 친구들’이라는 사업도 기획하고 있어요.
1년 차에 충분히 경험을 쌓아 2년 차부터는 보다 전문적으로 교육현장과 의료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을 직접 매개해 교육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활동을 해 나갈 예정입니다. 특히 현장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책들이 현재 필요한 실정이기 때문에, 관련 정책들을 연구하는 활동은 2022년까지 계속하고자 합니다. 또 3년 차에는 아시아권에 있는 단체, 활동가들과 컨퍼런스를 열 계획도 있습니다.
3년 차를 경과하면서는 구체적으로 셰어와 연계할 수 있는 클리닉을 준비하고, 구체적인 조직 형태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볼 것 같습니다.”
전문성과 탄탄한 활동 계획을 바탕으로 앞으로를 설계해 가고 있는 셰어는 이미 간담회를 통해 여러 대상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뷰가 있기 얼마 전, 청소년 간담회가 있었는데요. 이 자리에 참여한 한 참가자는 ‘셰어 같은 단체가 생겨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게 위로가 된다’며,’ 동정 어린 시선이나 보호받아야 하는 입장으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당사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역량을 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협력단체와 사람이 필요하다’고 소감을 남겨 주었습니다.
나영님은 이 소감이 참 힘이 되었다며 “참가자의 바람처럼 어디 가서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셰어에 와서는 사회적인 낙인이 찍혀있는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편하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셰어가 그런 이야기를 편히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라며 앞으로 만들고 싶은 셰어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활동가 후니님도 “담론적 차원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가 실제 사람들의 삶과 연결될 수 있기를 바라요. 의사가 환자에게 ‘스트레스 줄이고, 담배 끊으세요’라는 뻔한 얘기를 하듯이 말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적권리와 재생산 권리가 실현되는지, 실제 삶에 어떻게 연결 되는지 조밀하게 짜여 있는 영역들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더 많은 역량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셰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영역을 아우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이 연결하는 허브가 되어야겠죠.” 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밝혀주셨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라는 아직은 낯설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모두의 권리를 알리고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셰어. 앞으로 더 많은 응원과 관심이 필요한 셰어를 위해 아름다운재단도 변함없이 옆에서 같이 걷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를 외치는 데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도 셰어의 앞날을 함께 지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