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을 위한 주요한 동력으로, 사회의 다양한 문제해결, 정부의 공공재 공급의 보충적 역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의 옹호, 공론장과 사회적 자본 창출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대부분 비영리기반의 공익활동가들은 사회의 발달에 따른 시장과 정부의 대응에 비해 심각한 정보 격차의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공익활동가 해외연수 지원사업은 이들의 활동역량을 강화하고 한국시민사회에 해외시민사회운동관련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여 지속가능한 공익활동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지원사업입니다. 이 글은 2019 공익활동가해외연수지원사업에 선정된 [세계대안교육대회 IDEC 참가 프로젝트팀]에서 활동한 제천간디학교 황선호님의 후기입니다. |
우리 대안교육 우크라이나에서 낯설게 바라보기
이번 해외연수는 우크라이나에서 개최된 2019 IDEC에 참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8월 2~3일 키에프에서, 8월 4~9일은 빈야차에서 진행되었으며 총 24개국 448명이 참여하였다. IDEC은 국제 민주교육 컨퍼런스로 우리나라는 민주교육보다는 대안교육이라고 더 많이 부르고 있다.
EDUCATION 2.0에 대한 발표를 한 야곱 헥트는 “학생들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누구와 공부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곳”이라는 하데라 민주학교의 철학과 점점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국가와 지역을 뛰어넘은 ‘교육망’ 구축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 발표해주었다. 하데라 민주학교는 피라미드 구조의 기존 학교 시스템을 그물망 형식으로 바꿔내며 학교가 속한 지역을 ‘교육도시’로 변화시켰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대안학교들과 소통하며 ‘민주교육’과 ‘넘나들며 배우기’의 노하우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신의 활동들을 소개해주었다.
‘넘나들며 배우기’는 미국 매트스쿨의 사례를 담은 『넘나들며 배우기』를 통해 대안교육 교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이다. 학교가 지역사회와 ‘교육망’을 구축해 학생들이 학교와 지역사회를 오가며 실제적이고 역동적인 교육을 추구하는 이 방식의 성공적인 사례인 하데라 민주학교 설립자의 강연과 『넘나들며 배우기』을 번역한 이병곤 교장 선생님이 연수팀에 속해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연수팀은 ‘넘나들며 배우기’와 우리 학교가 추구하고 있는 ‘마을 학교’가 지향하는 바가 같다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에게 더 필요한 부분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ECUCATION2.0에 대한 의견은 회의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너무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된 초고속 인터넷 망의 보급과 스마트 폰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스마트 폰 중독, 게임 중독에 대한 걱정이 많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화상 교육’은 거부감이 클 것이라는 의견, 우리에게 ‘교육’은 특정 지식에 대한 전수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생각과 감정의 교류를 통한 인성 발달을 크게 고려하는 측면이 많다는 것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 등을 나누었다.
ECUCATION2.0의 사례로 꼽은 TED 강연과 같은 온라인 교육은 이미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고 그것의 한계 역시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 유사한 개방형 온라인 강의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의 경우 ‘최상의 교육을 모두에게 무료로’라는 목적과 달리 미국과 브라질, 인도, 중국, 러시아 등 등록 학생들의 80% 가 이미 학위를 소지한 고학력자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온라인으로 깊이 있는 강연을 듣고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은 이미 그 사회의 엘리트로 꼽히는 자발적이고 학습동기가 강한 소수의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미국·유럽과 같은 1세계 역시 공교육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공교육의 실패는 비싼 사립학교 혹은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의 확산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새로운 교육을 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층은 그 사회에서 부유한 계층에 속한다. 이런 사회와 교육의 양극화 속에 대안교육이 어떠한 방법과 내용을 고민해야 하는지 연수팀원들과 곱씹어 볼 수 있었다.
대안학교 중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서머힐의 강연자로 나선 헨리의 강연은 가장 많은 청중을 불러모았다. 2021년은 서머힐 학교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이미 많은 교육학자, 공교육 교사·대안학교 교사들이 학생 자유의사를 존중을 제 1원칙으로 해 온 이 학교의 100 주년 행사를 주목하고 있다. 헨리의 강연은 다음과 같은 그동안 서머힐을 지탱해온 학교 교육 철학을 소개해주었다. ① 방종이 아닌 진정한 자유 ② 평등 ③ 자치 ④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자유.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치가 실제 학교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사례 중심으로 설명해 주었다. 실제 현장에서 아이들과 마주했을 때 결코 가볍게 풀기 어려운 주제들을 가볍고 유쾌하게, 유머를 섞어가며 스탠딩 개그처럼 풀어가는 강연자의 역량이 돋보였다.
8월 3일 오후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빈니차(VINNITSA)로 출발하였다. 키에프에서 남서쪽으로 버스로 2시간 반을 이동해 빈니차의 스톡크(Stork) 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한 황새(Stork) 번식지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했다. 마을 안 민가에 황새가 둥지를 만들 수 있는 높은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실제 황새 둥지와 야생 황새를 만나볼 수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각국에서 모인 대안학교 교사들끼리 자체적으로 세미나를 열어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아침이면 식당 앞에 큰 스케줄러가 만들어지는데 각자 기획한 세미나들을 스케줄러에 표시해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즉석에서 여러 세미나들이 만들어져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모임답게 중앙 통제식이 아닌 산발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참여자 중심으로 구성되고 진행되었다.
그 중 인상 깊어 서로 길게 이야기 나눈 주제는 ‘청소’와 ‘정치’였다. 이런 국제적인 교사 컨퍼런스에서 청소를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긴 했는데 각국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학교 청소를 어디까지,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학교 청소는 학생들이 자기 공간을 관리하고 가꾸는 것의 기본이자 공동체 생활에서 자기 역할의 최소 기본 활동으로 볼 수 있는데 수많은 학교에서 청소 업체에 용역을 주는 문제가 화두였다. 생활과 교육이 분리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에서 청소는 ‘불필요한,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마땅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생활과 교육이 일치해야 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활동’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잘살아보세’라는 학생회 부서에서 청소 당번과 검사까지 알아서 맡아주고 있다는 사례를 들려주자 각국 교사들이 놀라워하며 부러워했다. 학생 자치 역량 강화를 위해 학생들과 싸우고, 설명하고, 설득했던 그 지난한 시간들이 위로받는 것 같았다.
또한 이번 2019 IDEC은 유럽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EUDEC(유럽 민주 교육 컨퍼런스)과 공동진행되었는데 모두 유럽의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세미나가 없는 것에 의아해했다. 영국 브렉시트의 경우 정치와 교육 모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였는데 한참 논쟁 중인 그런 주제가 없다는 것에 대해 우리끼리 ‘답 없는’ 토론을 벌였다. 브렉시트의 경우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국민 투표로 진행했는데 많은 영국 국민들이 EU가 무엇인지 구글 검색했다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졌었다. 유럽 각국이 협력 관계를 넘어 ‘공동체’까지 모색하며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며 자유로운 국경 통과, 관세 철폐, 유럽 내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까지 피부로 느낄 만한 체계를 구성했었는데 그것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다수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유럽 교육자들에게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건가? 물론 검색량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양’으로 치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대영제국 운운’하며 ‘노딜 브렉시트’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은 영국 국민 교육의 실패로까지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브렉시트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제’ 자체가 아예 없다는 사실이 우리끼리 오해와 억측으로 품은 의문이 아닌 ‘유럽 대안교육’과 ‘우리 대안교육’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닿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덱이 열렸다면 남북관계, 북미관계와 관련된 통일교육, 세월호와 같은 사건을 통한 민주시민 교육, 한일 관계 악화를 중심으로 한 역사교육의 중요성과 같이 정치를 통해 교육을 들여다보고 점검하는 세미나가 주를 이루었을 것 같다. 그건 우리 정치가 ‘후져서’ 그런 것도 없지 않겠지만 그런 환경을 딛고 ‘촛불혁명’을 막 이루어낸 ‘국뽕’ 때문인가? 해방 후 미군정 하에서 “한국인들은 3명만 모여도 정당을 만든다”고 비웃음을 샀던 ‘정치 과잉’이 ‘종특’인 민족이기 때문인가? 한국 대안교육진영은 ‘군인 독재 정권의 시대’의 시대가 끝나며 ‘시민사회의 시대’가 열려가던 차에 태동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와 교육 그 사이의 접점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인가? 우리는 브렉시트로 출발한 의문들을 다시 우리 안으로 들여오며 우리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크라이나라는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나눌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연히 만난 우크라이나 분과 체르노빌 사고와 그에 따른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 어떻게 이 컨퍼런스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 오렌지 혁명(2004~2005)까지 이루어 냈지만 특정 기업가의 강력한 후원을 등에 업고 코미디언이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선되는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이 일어난 상황들에 대해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등 ‘세계 시민’ 관점에서 여러 논평과 탐사보도를 줄기차게 이어갔다. 위태롭고 불안한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 벗어나 조금은 한가롭게 다른 나라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일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늘 짓누르고 있던 순국선열과 민주열사 이하 수많은 ‘깨시민’에게 갖고 있던 부채감과 책임·연대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어 ‘시대정신적 휴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글/사진 ㅣ제천간디학교(gandhischool.org) 황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