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심즈에는 ‘장애인’이 없어요.
2년째 이어오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어요. 어김없이 토론을 이어가던 어느 날, 발제를 맡았던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근데 그거 알아? 심즈에는 장애인이 없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독서토론 당일에도 심즈 게임을 하고 온 상황이었거든요. 심즈는 피부색, 안구색, 머리모양, 얼굴형까지 모두 조합해 캐릭터를 만들고, 인생을 설계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몇 년동안 40명의 캐릭터를 만들고, 수십채의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는 심즈에서 장애가 지워져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검색을 해보니 제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심즈에 장애인이 없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문제제기를 해온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게임 속에 휠체어 설정이 없으니 직접 모양을 만들어서 심즈를 태울 수 있게 만드는 유저도 있죠.
오랜시간 이 같은 제안이 누적되자 개발사가 장애인 심즈를 추가하거나 휠체어를 넣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장애인 심즈를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상황을 연출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를 둘러싼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링크] Why We Need Disability Representation in ‘The Sims 4’
이처럼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유저들 덕분인지 최근 유행하는 게임에서는 휠체어를 탄 너구리 캐릭터가 보이기도 합니다. 2019년 휠체어를 탄 라이언과 목발 짚은 브라운 인형이 등장했던 것도 그렇고요. 장애를 지우지 않는 의식적이고 실천적인 공동의 노력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장애 문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게임 세계처럼 비장애인의 존재만을 상정한 사회는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합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국회 출입에 ‘논란’이라는 분류가 붙는 것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이동권 투쟁에도 불구하고 고속버스 이용이 자유롭지 않은 것도, 투표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의 행사가 어려운 것도 모두 비장애인으로만 구성된 세상을 상상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처럼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소수의 문제로 국한시킨다면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은 공고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 문제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은 단지 장애인이 좋으면 비장애인도 좋고, 비장애인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비장애인이 장애 문제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장애문제의 해결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장애를 이런 식으로 이해할 때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비로소 타자화하지 않을 수 있다.” _책 <장애학의 도전> 중
‘오늘은 장애인의 날입니다’라는 말이 40번 나오는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또 많은 것이 그대로이기도 합니다. 40번째 ‘오늘’이 지나간 다음 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장애 문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상기하는 삶이었으면 합니다. 세상 곳곳에서 필연적으로 매일, 장애를 가진 이웃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