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예민한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남기고, 나누다

“예민하다는 말에 담긴 악의를 다시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넘어가는 문제를 우리는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기에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말은 우리의 행동을 끊임없이 구속했다. 하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예민하다는 말보다 예리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언제나 예리하게 지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오지 않았던가.”
– 자료집 기고문 ‘당신들이 틀렸다’(참외 글)에서”

2018년 한국 미투 운동의 큰 줄기에 ‘스쿨미투’가 있었다. 전국 80여 개 학교에서 성차별 문화와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용감한 (여)학생들의 목소리는 지금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의 공간으로 존재하는가를 다시 묻게 했다. 우리(문화기획달)는 우연히 그 흐름에 함께했다.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성)교육을 하고 나서 스쿨미투 운동이 벌어지자 학교는 남은 교육을 취소하겠다 통보했고, 우리는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 학교에 다시 수업을 하러 돌아갈 때까지 몇 달간 지난한 싸움을 통과하며 우리는 예기치 않았던 지역의 강렬한 백래시와 맞닥뜨렸다. 학부모를 위시한 지역 주민들은, 성차별주의와 젠더폭력이 아닌 스쿨미투가 학교와 지역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문제를 만든 이들이 아니라 그 문제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부 지역 언론사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들의 주장을 그대로 실어 나르며 여론을 형성했다.

단체의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과 피해도 컸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여학생들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학교 밖에서도 이렇게 공격을 당하는데, 매일 얼굴을 마주보며 살아야 하고 자신이 고발한 선생님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입장인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또 사건이 종결되고 나서 과연 지역과 학교가 변화하고 나아질지도 걱정이었다. 스쿨미투를 한 학생들에게 “너희는 부모를 신고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교사들, “아이들 성적 떨어질라” 걱정부터 하는 학부모들이 스쿨미투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우리만 알고 있기엔 아깝고 아무도 모른 채 사라지도록 내버려두기엔 아쉬웠던 스쿨미투 사건 관련 자료들을 우리는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피해자/고발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해 세상에 남기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건 당시부터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지역과 학교가 긴밀히 연결되는 구조에서 젠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지방’의 스쿨미투를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이라 프로젝트의 주제를 ‘지방 스쿨미투’로 정했다. 기존 스쿨미투 관련 언론보도에서 가장 선정적인 피해 사례를 헤드라인으로 뽑아 ‘클릭수 장사’를 하는 것이 지겨워 우리는 피해 사례 수집을 넘어 여성혐오적인 지역/학교 문화의 백래시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프로젝트가 선정된 덕분에 사건 당시 이메일이나 메시지로만 소통했던 스쿨미투 당사자들을 1년이 지나서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지역을 떠났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학교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었다. 스쿨미투가 자긍심과 보람이 아니라 자책을 동반한 상처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함께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용기에서 출발한 스쿨미투가 결국 개인이 오롯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기록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프로젝트 기간은 1년 남짓이었으나 스쿨미투 공론화 활동 기간을 포함하면 우리는 약 1년 반의 시간을 이 이슈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보냈다. 그만큼 공들여 나온 결과물이기에 더 많은 시민들, 청소년과 학생들에게 잘 가닿기를 바랐다. 자료집을 출간하고 각 지역에서 두 번의 결과공유회를 열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었다. 전국의 성평등 교육 강사, 청소년 페미니스트, 학교 교사 등이 자료집을 신청해 스쿨미투 고발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퍼져 나갈 수 있었고 페미니즘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들은 이 자료집을 교육자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전해주기도 했다. 

스쿨미투 이슈에 대한 시민들의 응답에도 보람과 감사를 느꼈지만 무엇보다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스쿨미투 고발자와 조력자들이 이 기록의 존재에 힘과 용기를 얻고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게 되었다고 말할 때 우리도 더불어 힘이 났다. 이들의 용기 덕분에 세상이, 학교가, 우리의 일상이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음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는 ‘승리’의 이야기라고 시작했다. 스쿨미투 고발자들이 무력한 ‘피해자’로 머무르지 않고 권력에 당당히 맞선 투쟁의 주체이자 변화의 맨 앞자리에 선 여성/시민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그런 사람들이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도록 우리는 계속 듣고 말해야 한다.

“지역에서 스쿨미투를 하며 “예민하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여학생들이 많았다. 예민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변과 세상에서 끊임없이 발견한다. 우리의 기록이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에게 자책 대신 자랑스러움이, 후회 대신 보람이, 외로움 대신 위로가, 두려움 대신 용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스쿨미투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무력감 너머 이들의 목소리와 발자취 하나하나가 작은 승리로 쌓이고 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듣고 썼다. 그리고 계속 함께 나아갈 것이다. 
– 자료집 ‘여는 글’에서”

인터뷰 내용 중

 “저희는 학교 안에서 거의 고립된 분위기였어요.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욕을 되게 많이 먹었어요. 지나다가다 먼저 어깨를 치면서 시비를 걸고 그게 때문에 몇 마디 오가면 ‘씨발년’ 이런 욕도 하고요. 식당에서 우리 반 여자애들이 지나가면 ‘쿵쾅쿵쾅’ 이러고.”
 “전교회장이 된 친구가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애들을 조롱하고 학교 행사에서 배제하는 듯한 말을 하고 다녔어요. 그 친구 선거 공약 중에 ‘꽃길만 걷게 해준다’는 게 있었거든요. 이미 그때부터 그 친구 주변 애들은 ‘페미니즘적인 회장은 기대하지도 말아라, 메갈년들아.’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다녔죠. 그런데 그 친구가 회장이 된 후에 다른 반에서 우리는 가시밭길을 걷게 해주겠다고,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이 내용을 적어서 대자보를 붙였고, 나중에 학생회장 친구한테는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았어요.”
 “한 동료교사는 이렇게 묻더라고요. ‘선생님 무슨 의도로 페미니즘 교육을 기획했어요?’ 그때 알았죠. (페미니즘을) 정말 싫어하는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거 지적받으니까 찔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젠더권력 가지고 있으니까 차별을 모르는 거죠. 자기들이 (차별) 안 받으면 없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스쿨미투를 하는 거 자체는 되게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왜냐면 몰랐던 애들도 결과적으로는 이거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니까. 그리고 하는 애들은 다 행복해했어요. 수능이 코앞이지만 그래도 이 문제는 지금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함께한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중략) 그때 애들이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우리가 잘못했다고 말할까, 였어요.”
 “성인은 활동하다가 집에서 반대하면 독립할 수 있는데, 청소년은 그럴 수가 없어요. 생계수단 없이 활동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성인보다 훨씬 크죠. 이런 어려움 때문에 관계를 멀리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이 있는데,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이지 않냐고. 사건이 어떻게 풀려가든지, 공론화가 되든 안 되든, 본인이 ‘살아내고’ 있으면 그 자체가 투쟁이지 않냐고. 내가 살아 있다는 거, 그게 아직 싸우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러니 괜한 죄책감이나 부채감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프로젝트가 끝나고, 인터뷰이들의 소감

 “지금보다 단단했던 고등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페미니즘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인터뷰 때 고등학교로 돌아간다면 이제 스쿨미투 안할 거라고 했는데, 자료집을 읽고 나선 이때의 ‘우리’라면 다시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작년에 스쿨미투 하고 많이 힘들어서 빨리 다 잊고 싶었어요. 그런데 인터뷰할 때 작년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써준 편지를 읽으며 힘이 나는 느낌이었어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하게 됐고요. 지금은 그 일에 대해 더 말하고 대학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재학생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읽으며 다시 한 번 분노와 개탄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자에 제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문화기획달과 인터뷰를 하며 스쿨미투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 경험 자체보다 제가 그 일을 이겨내고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 과정을 더 궁금해 하시는 모습에 저도 용기가 났어요.”
 “아이들 인터뷰 보며 너무너무 속상하고 미안했어요. 다시 일어나 아주 조금이라도 씩씩해져야지 생각해봅니다.”

결과공유회 참여 시민들의 소감

 “피해 사실이나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를 학교에서 꺼내면 친구들마저 왜 그렇게 예민하고 피곤하게 사냐는 말을 했었어요. 오늘 패널 분들의 말을 들으며 내가 예민한 게 아니다, 피해를 당하고도 숨어 있을 친구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자리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
 “지방에서 이런 용기 있는 목소리를 담아내기가 어려웠을 텐데, 놀라운 얘기, 감동적으로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인의 이야기였지만 익숙했다. 아마도 오늘의 이야기가 ‘여성 청소년’이 겪는 보통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북토크가 나에게는 위로였고,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고 토닥거려주었다. 그리고 멈춰 있지 않고 다시 힘을 얻게 해주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발판삼아 학교에 돌아가면 자신있게 저의 의견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용기있게 먼저 한 발짝 내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기록이 힘을 만나는 공간. 함께해서 더 반갑고 책에 담지 못한 더 많은 분들에게도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패널 분이 울컥할 때 모두가 한마음으로 훌쩍이는 모습을 보고 이 자리에 온 모두와 연대됨을 느꼈습니다. 좋은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쿨미투가 세상을 바꾼다! 새로운, 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투쟁의 역사에서 함께 살아내고 있음에 더욱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출처 : 문화기획달]

글, 사진 | 문화기획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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