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19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가려진 일들
여성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합니다. 밥상 차리기, 청소와 빨래, 할머니 다리 주물러드리기, 아버지 심부름, 동생 돌보기, 동료의 속사정 들어주기, 친구의 이사 돕기, 공동 옥상 텃밭 가꾸기 등등 이런 일 경험은 어렸을 때부터 축적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소위 ‘스펙’ 이나 ‘임금 노동’ 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력서에는 적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일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력서에 적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활동이나 취미일뿐, 아무 의미 없는 일들일까요?
우리는 대부분 ‘이력서’를 쓰면서 자신의 사회적 일 경험을 객관화해 왔습니다. 이력서에는 학력, 재직경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직함, 저서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들을 기록하고 그렇게 해야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축적해온 일 경험들은 돈으로 환산회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는 사회가 ‘일’로 인정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려져왔습니다.
줌마네는 이처럼 비가시화되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여자들의 일 경험을 되살려내고 의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기준에 맞춘 이력서가 아닌, 개개인의 삶과 일경험을 통합적으로 성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이야기의 장과 기록양식 즉, ‘대안 이력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일경험 기록하기
설립초기부터 여자들의 일과 관련된 작업을 지속해온 줌마네는 특히 최근들어 ‘여자들의 일’을 기록하고 나누는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2017년에는 여자들이 모여 서로의 일경험을 나누고 인간적으로 돈버는 힘을 키우기 위한 캠프를 열었고, 2018년에는 글과 영상을 활용해 자신의 일경험을 기록하는 자기기록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작은 책으로 엮어 공유해 왔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에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다양한 지역 여성들을 찾아갔습니다. 여성들이 ‘자기 일경험을 불러내고 자기시선으로 기록하고 서로 나누는’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의 제안에 4개지역에 있는 여성단체와 모임들이 흔쾌히 응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19년 6월에서 10월에 걸쳐 경남 거창여성회 회원들, 익산지역에서 활동하는 미디어교사분들, 광주여성의전화 ‘바램’을 통해서 자립을 준비 중인 여성들, 그리고 정선군 여성친화도시시민협력단에 참여하고 있는 지역 봉사단체 회원들과 함께하는 ‘대안이력서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워크숍에는 10대에서 70대의 여성 58명이 함께하였고, 이중 51명이 자신의 일경험을 연대기로 기록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기의 일경험을 새롭게 바라보거나 구체적인 자신의 역량을 발견하였고, 각자의 경험과 기록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일’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도 점차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자들의 ‘일 연대기’에 담긴 것들
12월에는 4개지역 여성들이 함께 나누고 기록한 연대기들을 묶어서 하나의 책- <광주/정선/익산/거창 여자들의 일경험 모음집: 우리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으로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을 찾아가 낭독회를 가지면서 서로의 연대기를 공유하였습니다.
책에 담긴 여성들의 일경험 연대기 안에서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에세이, 구술사, 인터뷰, 녹취록 등이 주는 생생함 못지않게, 한 사람의 ‘연대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삶 전반을 맥락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울 등 대도시와 다른 지역여성들 일경험의 차별성을, 세대 간 일경험의 확연한 차이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연대기들을 읽다보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간의 진한 유대감과 묘한 위로감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들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온몸으로 겪어온 경험들을 스스로 써내려간 기록들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줌마네는 앞으로도 여성들이 모여 일경험을 기록하고 나누는 자리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또한 그 안에서 발견한 여자들의 ‘일 연대기’를 꾸준히 아카이빙해 나갈 것입니다. 이 작업들이 가려져왔던 여성들의 일경험을 가시화사고 재의미화 하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경험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줌마네 since 2001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서로 돕는 곳
글, 사진 |줌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