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은 한국에자이의 ‘나우기금(나를있게하는우리기금)’을 조성하고, 암생존자리빙랩 온랩(이하 온랩)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2020 암경험자주도프로젝트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암경험자들이 살기 좋은 지역사회 조성을 목적으로 암경험자 커뮤니티 활동 지원, 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정보 제공, 암경험자의 사회 및 일상 복귀를 위한 인식개선 캠페인, 정책적 지원체계 마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랩의 랄라, 다크매터랩스 강은지님의 인터뷰를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건강관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만큼 건강은 현대인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그 말에는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할 수 있다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건강중심주의는 아픈 몸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 건강이 기본값인 사회에서는 아픈 사람이 자기 관리를 못 한 실패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질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는 일은 불행의 상징일 뿐, 그 이후의 삶이 그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온랩은 이런 건강중심주의 사회에서 지워진 암 경험자의 삶에 대해 말하는 단체이다. 암 경험자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를 집단지성으로 풀어나가는 리빙랩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암 경험자와 암 연구자, 간호사, 기업인, 디자이너, 변호사, 심리치료가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모여 활동하는 걸까. 지난 7월, 서울혁신파크에서 온랩의 랄라, 다크매터랩스의 강은지 씨를 만났다.
“아파도 괜찮다는 인식이 필요해”
“온랩은 따뜻한 온(溫)이라는 뜻과 연구소라는 의미의 랩(lab)을 결합한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연구소’라는 뜻이에요. 암 치료를 받고 나서도 일상으로 복귀하기 어려운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자원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온랩에서 활동하는 랄라는 한국 암 경험자의 사회 복귀율이 30.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포용적 사회기반이 구축된 선진국들의 평균 복귀율이 63.5%인 것을 생각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구성된 일터나 학교 등의 사회 시스템이다. 일례로 온랩에 참여하는 한 암 경험자는 회사로부터 퇴사를 권고받기도 했다. 단순히 치료를 위해 2주에 한 번 평일 낮 시간을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현 사회의 시스템이 아픈 이들과 함께 가기 위해 어떤 유연성도 발휘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실사례이다.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통계도 있잖아요. 건강관리라는 표현을 하지만, 관리해도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어요. 앞으로는 아파도 괜찮은 사회, 아파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암 경험자의 목소리를 사회로
현재 온랩은 <암경험자주도프로젝트지원사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30, 40대 암 경험자들의 뜨개질 모임인 ‘암파인니팅클럽’이다. 모임 제목은 암경험자로 구성된 룰루랄라합창단의 노래 ‘I’m fine, thank you’라는 노래 제목에서 가져왔다 이름하여 아파도 괜찮은(癌fine: 암이 있어도 I’m fine이란 의미)사람들이 모인 니팅(뜨개질) 클럽이다. 이들은 2주에 한 번 수요일마다 모인다.
“암파인니팅클럽을 하러 2, 3시간을 걸려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오랫동안 외부활동을 안 하던 분들이 이 모임을 계기로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모이니까 공감대가 형성되고, 뜨개질이란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니까 일상의 활력이 생기는 거죠. 그게 자조모임의 역할인 거 같아요.”
‘암파인니팅클럽’은 또 다른 암 경험자들의 자조모임 ‘룰루랄라합창단’에서 시작되었다. 합창단원 중 한 명이 뜨개질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게 계기였다. 이렇듯 자조모임은 한 번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모임으로 확장해간다.
온랩에서는 투병 정보를 공유하는 일도 한다. 현 의료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보가 부족해 환자가 주체적으로 치료 방법을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신장암환우회이 출판한 <신장암 환자 맞춤형 투병 정보>는 투병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한다. 저자는 배우자를 병간호하며 정보의 부족함을 깨닫고 단체를 설립하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온랩 멤버들이 자신의 암 경험기를 담은 <암밍아웃 – 암이 탄생시킨 새로운 단어들>도 출판했다. 온랩은 이처럼 다양한 경로로 암 경험자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메시지를 사회로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케어링 소사이어티, 서로 돌보는 돌봄사회를 향해
얼마 전에는 다크매터랩스와 씨닷의 안내로 공통의 비전과 미션을 명료화하고 사회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매핑하는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다크매터랩스 강은지 씨는 온랩의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며 꼭 필요한 운동인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묶어줄 하나의 미션을 정리할 필요를 느껴왔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 워크숍에 적용한 방식은 ‘시스템 체인지 맵’이다.
“‘시스템 체인지 맵’은 진정한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변의 시스템과 문화가 통합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연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답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요. 말하자면 그간 해왔던 일을 상자 밖에 나와서 보는 거예요. 거리를 두고 보면 다른 시각이 생기고 하던 일들이 구조화돼요.”
이번 워크숍으로 정리된 온랩의 미션은 ‘암 경험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포용적인 지역사회 만들기’이다. 랄라는 이 워크숍을 계기로 온랩이 사회적협동조합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개개인의 건강이나 권리 확보가 아니라 서로 돌보는 돌봄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온랩의 방향이라는 걸 확인했기에 가능했던 시도 중 하나이다.
“저희가 원하는 건 암 경험자만을 위한 사회가 아니에요. 암을 경험했든, 나이가 들었든, 성 정체성이 다르든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거예요.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마인드(mind)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어요. 모두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부터 필요해요.”
코로나19의 여파로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 덕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번 워크숍도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동시에 진행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앞으로도 온랩은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통해 암 경험자들이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향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글 | 우민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