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8월 3일부터 트위터 타임라인에 떠도는 사진이 있습니다. 제목이 ‘진정한 복지란’입니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에서 모두를 경악하게 할 사건을 저지른 인간형을 만들어냈다는 충격에서 진정한 복지에 대한 물음으로 옮겨가는 글의 내용입니다. 사실 저는 스웨덴의 복지제도의 장점과 한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충격적인 사례 하나로 전체 시스템의 성공여부를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계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총격사건이 여러 번 있었으니,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실패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물질적인 재분배와 형식적인 평등에 머무르는 물질문명시대의 복지가 얼마나 위태로운가’….그리고, ‘복지의 주체가 국가나 부유한 사람들이고, 국민과 약자는 복지의 대상에 머무르는 한 진정한 인간성 회복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의 대목이나 기부나 나눔실천사례를 언급하면서 ‘빈부에 관계없이 자신의 복지의 주체임을 알고 자존감을 찾고 양심을 회복한 사람들’이라는 설명은 조금 투박하지만, 제목대로 ‘진정한 복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지원했던 기관 중 ‘해뜨는집’이라는 집수리 자원봉사 사업이 있습니다. 마을의 독거노인분들이나 장애인 가정 등 형편이 여의치 않은 이웃을 찾아가 도배, 장판부터 지붕수리까지 집을 고쳐주는 사업입니다. 매달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여 매우 성공적인 사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담당자를 만나서 사업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라고 요청하자 ‘사실, 자원봉사자 10명이 와서 하는 것보다 전문 기술자 한두명 불러서 하는게 더 빠르고 싸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일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아니, 소중한 기부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실까요?
사실, 집수리 자원봉사 사업은 몇 채의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수리하는가 만을 볼 수 없는 사업입니다. 왜냐하면, 집수리 자원봉사를 나온 사람들이 그 기회를 통해 가까운 이웃에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수리를 하면서 음료수로 얻어 마시면서 서로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관계를 맺게 되면, 가끔 문을 두드려 소식도 물어보고 음식도 나눠 먹으면서 서로를 보살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교류를 소위 복지사업으로 만들라치면 ‘독거노인 말벗사업’, ‘독거노인 음식배달사업’으로 거창한 이름을 달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할 뿐 아니라 만족도를 높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사업에서는 어르신들이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점점 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면, 노인들은 마을의 어른으로서 대접도 받고 또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베풀 수 있는 상호교류를 경험하게 됩니다. 게다가 젊은이들도 어려울 때 지혜도 구할 수 있고, 급할 때 택배라도 부탁할 수 있는 이웃이 생기니 얼마나 좋습니까?
관계의 회복은 또 다른 말로 모두가 도움을 주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 사회에서 도움을 주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면서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 기부자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한 축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좋은 기회를 만드는 일’도 매우 중요한 비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복지’라는 것은 부족한 사람에게 물질을 보충해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물질의 부족도 메꾸고, 서로서로 관심을 주고 받는, 그래서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과정임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복지’의 의미를 묻는 글을 만난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원작자는 찾지 못했지만, 이런 생각을 고운 글로 만들어서 올리신 분과 그것을 RT로 퍼트리는 분들과 마음이 통한 것 같아 더욱 반가웠습니다.
글 | 전현경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