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지 씨(가명)는 1998년생으로 올해 스물 두 살이다. 신발 가게 점원부터 택배 배송, 공장 노동, 입학처 사무보조 등 안해본 일이 없다. 스스로 돈을 벌어 대학에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6월 갑작스러운 사고로 모든 일을 접어야 했다. 1년 3개월 가량 일했던 식당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전 학비 벌려고 일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이었어요. 그날 주방에서 일하는 동생이 물을 쏟고 저한테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걸 모르고 코너를 돌다가 넘어졌죠. 그때 제가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깨지면 큰소리가 날까봐 떨어뜨리지 않으려다 개구리 자세로 주저 앉았어요. 접시는 멀쩡했는데 제 다리뼈가 으스러졌어요.”
사고 당시에는 조금만 앉아 있으면 금방 회복될 줄 알았다. 일하다 넘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괜히 병원에 갔다가 시급이 깎이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삼십분을 넘게 쉬어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리 통증도 갈수록 심했다. 부축 없이는 도저히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사장은 자리에 없었고, 매니저가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했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양쪽 다리의 뼈가 조각난 상태에서 탈골이 됐다. 조각난 뼈를 빼내고 나사로 뼈를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병원비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식당 노동자들이 그렇듯 그는 4대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상태였다. 산재 처리를 요구 했으나 사장은 2주가 넘도록 “개인 실비 처리하자”며 버텼다. 엄마는 “실비 보험료를 사장이 냈냐”며 어이없어 했다. 다행히 사장을 겨우 설득해 산재 보상을 신청했는데 이번엔 근로복지공단이 감감무소식이었다.
저는 공단에서 빨리 처리해줄 줄 알았어요. 사람이 다친 일이니까 다를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처리만 3주가 걸렸어요. 공기업이니까 바쁠 거라 생각해서 참고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제가 3주만에 전화하니까 그제야 ‘아 이민지(가명)님이요’ 하면서 처리해주는 거예요. 결국 재촉하는 사람만 빨리 처리해준다는 거잖아요.”
사장이 버텨서 2주, 근로복지공단에서 3주. 5주 동안 마음을 졸였던 건 당사자인 이민지 씨뿐이었다. 늦어진 보험금 지급 때문에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친척에게 빚도 졌다. 치료에만 전념해도 힘든 시간이었는데 산재보상이라는 끝없는 산은 그를 더 지치게 했다. 그 과정에서 그를 도운 건 근로복지공단이 아니라 병원에서 만난 손해사정사였다.
제가 가장 어린데 양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으니까 병원에 소문이 난 거예요. 방문판매하는 손해사정사 분이 찾아왔더라고요. 이때다 싶어 산재보험에 대해 물어봤어요. 그분은 정말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줬어요. 휴업급여가 뭔지도 그때 알았어요. 공단에서는 정확한 안내를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산재 승인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그가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휴업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민지 씨(가명)는 자신은 사이버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말했지만, 공단 직원은 “학생의 본분은 학업이기 때문에 지급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사이버대학에 다니면 정식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 장학금을 받지 못해요. 그런데 산재보상을 받을 때는 대학생이라면서 휴업급여를 줄 수 없다는 거예요. 다 나라에서 하는 건데 상황마다 기준이 다르니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7월에 졸업을 하며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양쪽 다리를 다쳤는데 보조기기 지원은 하나만 받았다. 보상 기준과 한도가 다리 하나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보조기기 없이는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본인부담금 40만 원을 내고 양쪽 보조기기를 구입했다. 산재 비급여 치료비 80만 원도 부담해야 했다.
그날의 사고는 그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재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 계단이 있는 버스를 타는 것도 불가능하다. 세무회계를 전공한 그는 곧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취소를 고민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시험장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 그는 인도에 있는 턱 하나도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무리 할 즈음 그는 “요즘 유행하는 뮬 운동화(슬리퍼 모양의 운동화)를 못 신어요”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재활병원 의사는 그에게 앞으로 1년간 일을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럼에도 “휴업급여 연장은 꿈도 꾸지 말라”라며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는 조언을 함께 했다. 친구들은 “보험금 많이 받았겠다”라며 속 모르는 소리를 하지만, 모아둔 돈이 없는 그는 당장 다음달 생계가 막막하다. 그나마 받은 휴업 급여도 병원을 오가는 택시비와 비급여 치료비로 대부분 썼다. 산업재해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그. 앞으로 재활 수술을 몇 번이나 더 받아야 할지 알 수 없다며 다친 다리를 만졌다. 이민지 씨의 휴업급여는 10월 말 종료됐다.
글ㅣ우민정, 사진ㅣ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