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독립작가야. 어린이도 책을 만들 수 있어!
지난 11월 중순. 안산시 상록구에 위치한 우리동네지역아동센터(이하 우리동네 센터)에 독립출판 책을 만든 어린이 작가들이 모였다. 근처의 마을카페와 놀이터와 함께 재미난 동네공간으로 자리잡은 이곳에서, 아이들은 손에 잡은 색연필로 끄적끄적 포스터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이날은 만들어진 각자의 책을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지를 아이들이 함께 궁리하는 자리였다.
“책값은 얼마로 하지?” “출판사 이름은 깔깔우동이야.” “포스터 문구는 뭐라고 적을까?” 아이들은 책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을 모금하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한다. 분주히 나누는 대화에서 자발성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책으로 만들어내는 모습.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작가들이다.
우리동네지역아동센터는 아름다운재단의 아동청소년문화지원사업 ‘문화와 룰루라라’의 일환으로 ‘우리동네 책 쓰는 아이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이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직접 문화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했다.
사업은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의 기간 동안 ‘문화 프로젝트’와 ‘지역사회 나눔공유 활동’의 두 파트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문화 프로젝트’. 우리동네 센터에서 책 만드는 동아리의 모집 과정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책 만들기와 관련된 여러 배움을 접하도록 한다. 작가 필명 만들기, 이야기 만들기 연습과 책 기획, 쓰기와 그리기, 퇴고 등 책 만드는 과정 전체를 아이들이 경험하도록 했다. 두 번째는 지역사회 나눔공유활동. 책 출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나 출판기념회 등 책을 유통하는 과정도 직접 경험해보도록 한다.
아이들에게 ‘깔깔마녀’라 불리는 신지은 사회복지사(우리동네지역아동센터)는 이야기를 만드는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가 아이들의 활동에 주목한 건 ‘자발성과 실행력’이었다.
저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해요. 학교나 교육기관에서는 커리큘럼을 짜서 ‘이런 주제로 이렇게 그리는 게 맞다’고 제시하기도 하니까요. 이번 책 만들기에 참여한 아이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상상에 대해 확실히 표현했던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쓰고 그리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직접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 이게 중요하지요.”
그림책을 만드는 김중석 작가, 독립서점인 모모책방 사장 등 아이들이 책 만들기라는 활동에 좀더 힘을 보탤 수 있는 어른들과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자신이 도전하는 분야에서 직접 일로 해내는 어른을 보며, 아이들의 창작활동도 보다 건강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 속에서 모험을 겪고 성장하는 아이들
“제 이야기에서는 꽃밤이와 친구들이 나와요. 이 친구들이 동물원을 탈출하는 내용이에요.”
“문구점에서 팔려온 지우개 연필을 한 아이가 못살게 구는 거에요. 그래서 지우개 연필이 스스로 문구점으로 돌아가는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봤어요.”
이날의 회의 현장에서는 ‘블라블라’ ‘스마일’ 등 어엿하게 자기 필명을 가진 아이들이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대해 설명했다. 회의장소 한켠에는 그간 작업한 책자 내용이 스케치북에 빼곡히 담겨 있었다. 누군가는 미스터리 소설을, 누군가는 그림일기를, 누군가는 동화를 만들어냈다. 그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담아내고 그 이야기 속에서 모험을 겪고 성장하는 경험을 해낸다.
아이들이 만든 결과물을 보니 신기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다 다를 수 있지 싶어서요. 게다가 이야기에 아이들이 녹아 있어요. 모험을 하는 아이, 아무것도 아닌 아이,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이지요. 그렇게 자기를 녹여내는 걸 보면 이야기 속 자기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게 큰 힘이에요. 그 이야기 안에서 모험을 겪고 성취를 해내요.”
곧 출판기념회까지 마치면 아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만든 책을 오롯이 쥐게 된다. 그 경험이 각자에게 어떻게 남을까? 보통의 사람도, 보통의 아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으면 작가가 될 수 있다. 작은 성취지만 아이들 각자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들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물론 책이 나오면 칭찬받고 좋겠죠. 어떤 어른이 이거밖에 못 하냐고 말하면 속상해 하기도 할 거 같아요. 책이 생각보다 안 팔려서 마음 상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한참 후에는 힘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다 해냈다는 기억이 아이들에게 녹아 있을 거에요. 서로 돕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걸 기억할 거 같아요. 그 힘을 믿고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서로 역할을 나누어 열띤 회의를 하던 아이들은 어느덧 함께 모여 있는 교실 안에서 서로 웃고 떠든다. 펀딩 포스터를 만든 후 “놀아도 된다”는 깔깔마녀의 말에 노란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놀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하나의 일을 끝낸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한뼘씩 자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들은 하나의 일을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의 경험으로 해낸 기억이 아이들의 삶에 이정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글 ㅣ 이상미
사진 ㅣ 크레파스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