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기획 해외] – 따, 옴 팀
여름, 열여덟, 낭랑 여행
한 친구는 여권을 잃어버리고, 또 한 친구는 열이 펄펄 끓었다. 지하철에서, 건물에서 헤매기도 부지기수. 완벽하게 짰다고 자부했던 일정은 폭염과 여독에 치여 좌절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찾은 여권과 밤새 앓는 친구의 이마를 짚어주던 새벽은 두고두고 퍼 올리기 좋은 에피소드로 남았다. 길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줄을 이었지만, 이를 주체적으로 수습하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 ‘친구’와 자신감을 얻었노라 입을 모은다.
한번쯤 꼭 가봐야 할 나라
‘따,옴’ 팀을 만난 건 이들이 4박5일 간의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지 열흘 남짓 지났을 즈음이다. 여행 이야기를 들려 달라 청하자, 여섯 명의 여학생은 한꺼번에 웃음부터 터뜨렸다. 18세, 여름방학, 해외여행. 이 세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웃음 속에 담긴 무수한 사연을 대략 가늠해볼 만도 하다.
대동세무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영지, 소희, 수민, 혜정, 혜영, 예지는 교내 동아리 국제교류반을 통해 인연을 맺은 친구들이다. 그 중 쌍둥이 자매인 혜정과 혜영은 친구들이 인정하는 ‘일본어 능력자’로, 현지인과의 ‘소통’을 담당하며 독학으로 갈고 닦은 일본어 실력을 발휘했다. ‘정보통’으로 불릴 만큼 각종 소식에 밝고, 모둠원 중 유일하게 일본 여행 경험이 있는 소희는 이 여행의 물꼬를 텄다. 평소 기부문화에 관심이 많아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청소년 자발적 여행활동 지원사업’ 공고를 접하고는 바로 동아리 친구들을 소집했다.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자발적 의지로 만들어가는 여행이란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마감을 열흘 쯤 남겨둔 시점이라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으나, 방과 후와 주말을 이용해 모임을 갖고 의견을 나누며 꼼꼼히 지원서를 작성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십대시절, 이런 경험은 다시 못할 것이다’라는 절실함으로 열망했다.
“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도 되는데, 마지막 날까지 매달려 있느라 직접 트래블러스맵 사무실로 가서 접수했어요. 아슬아슬하게 마감 5분 전에 도착해서 접수 성공하고, 박수도 받았어요.”
일본을 택한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와 개인적인 로망이 교차한다. 주어진 여행 경비 안에서 최대한 여유를 갖고자 물적 거리와 심적 거리가 가까운 나라를 택한 것이기도 하고, 국제교류반 활동을 통해 꾸준히 키워온 일본에 대한 관심도 한 몫 했다. 가령, 영지는 교토 기온거리에서 게이샤를 실제로 보고 싶었고, 혜정이와 혜영이는 실전 일본어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설국>을 감명깊게 읽은 수민이는 눈의 나라 속 온천을 꿈꿨고, 예지는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가보는 게 꿈이었으니…. 이렇듯 다양한 위시리스트 속에서, 소희의 말마따나 ‘한번쯤은 꼭 가봐야 할 나라’가 일본이었다.
길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
사진 촬영, 영상 기록, 총무, 통역과 같은 역할을 하나씩 나눠 갖고, 첫째 날은 영지, 둘째 날은 소희가 맡는 식으로 4박5일 여정의 매 하루 하루 책임자를 정했다. 일행 모두 돌아가며 1일 책임 가이드가 되는 셈이었다. 가이드는 관광지 간 동선을 비롯해 교통편과 맛집 탐색 등 자신이 맡은 하루 여정을 앞장서서 안내하기로 했다. 취향과 체력이 제각각인 친구들의 바람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은 기본 임무. 물론,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여정을 이끌어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때는 무자비한 폭염으로 한껏 달구어진 여름의 정중앙. 아침 7시 반에 숙소를 나와 밤 10시에야 숙소로 돌아가는 여정을 이틀쯤 강행하자, 셋째 날 아침엔 눈을 뜨고도 몸을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한계점을 깨닫고 일정을 수정, 자유시간을 가졌다. 관광지를 더 돌고 싶은 친구들은 그들대로,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고픈 친구들 또한 그들대로, 각자 체력에 맞춰 자유로이 여정을 이어간 것. 그렇게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며 사건사고의 클라이맥스라 할 넷째 날을 맞았다.
오전에는 온천에서 여독을 풀고, 오후에는 오사카 최고의 아쿠아리움인 가이유칸에서 모처럼 시원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밤답게 맛있는 요리까지 한껏 즐기던 와중, 예기치 못한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가장 적극적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이끌어가던 소희가 아프기 시작했고, 예지는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밤중, 숙소에선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영사관 위치와 여권 발급에 소요되는 시간 등을 알아보며 부지런히 대책을 강구했다. 여권 발급이 계산대로 되지 않을 경우, 예지와 멘토 선생님을 남기고 귀국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니 속이 바짝바짝 탔다. 이 와중에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열이 펄펄 끓는 소희에, 다음 날 예정된 일정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첩첩산중이었다.
하지만 다 같이 머리를 모아 잃어버린 여권의 행로를 찾던 중, 온천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예지의 가방이 열렸던 순간을 기억해냈고, 택시 안에서 찍은 영상을 찾아냈다. 그 영상 속에서 발견한 택시기사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니, 다행히도 그가 여권을 보관하고 있었다. 예지는 극적으로 여권을 찾고, 소희는 친구들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 차차 회복하고, 마지막 쇼핑 여정까지도 한껏 에피소드를 양산하며 마무리한 이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소소한 실천으로 만들어 간 공정여행
사실, 넷째 날의 사건이 워낙 커서 다른 소소한 사건사고들이 묻히고 말았지만, 하나하나 떠올려보자면 밤을 새고 이야기할 만한 분량이다. 칼로 물 베기 하듯 싱겁게 끝나긴 했으나 아침부터 파우더 통이 날아다녔던 자매간의 싸움도 그 중 하나일 터. 플랜B‧플랜C까지 생각하며 여행준비를 철저히 하고도 지하철 안에서 헤매고만 소희, 캐리어를 넣을 만한 라커를 찾지 못해 동분서주했던 수민의 일화처럼 당혹스러운 일들은 매일매일 매순간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마다 길눈이 밝은, 일본어에 능숙한, 명랑하고 다정한 친구들이 힘을 보태준 덕에 따뜻하게 갈무리되곤 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책임을 맡았던 날의 실수를 가장 아쉬워하면서도,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눈을 빛냈다. 해보니, 해볼만하다는 걸 알았다. 길 위에서 붙은 자신감은 뿌리가 단단하다.
“아쉬움도 많죠. 일본 고등학교 탐방이라든가 일본 고등학생들과의 교류를 꿈꿨지만, 사전에 충분히 협의된 부분이 아니라 포기했거든요. 일본인의 정서를 고려해, 현장에서 무리한 시도는 하지 않았어요.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 또한 공정여행이니까요.”
공정여행 워크숍을 통해 배운 착한 여행의 덕목은 소소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파른 경사 길에 인력거 이용의 유혹을 이겨낸 것, 일본의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한 것도 그러한 실천의 일환이었다.
모둠원 개개인이 이번 여행에 품었던 로망은 대부분 이루어졌다. 영지는 정말 예쁜 게이샤를 만났고, 수민은 온천을 경험했으며, 혜정과 혜영은 현지인과 ‘소통’에 성공했다. 소희는 친구들과 많은 추억거리를 쌓은 게 뿌듯했고, 예지는 첫 해외여행에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됐다. 다만, 다수가 원하는 가이유칸에 밀려 유니버셜스튜디오를 못 간 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지만, 여행지에 남기고 온 미련은 다시 그곳을 찾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여권을 잘 챙깁시다!”
예지의 한 마디에 터지는 웃음소리가 낭랑하다. 아직 여행의 추억이, 여름의 열기가 유효한 날의 웃음이다.
글 고우정 ㅣ 사진 조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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