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낙상 사고는 가벼운 부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사망까지 이를 만큼 심각한 상황을 야기하기도 하거니와, 잦은 낙상의 경험은 불안감과 위축감으로 발을 묶어 사회와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늘도 바람도 볕도 참 좋은 가을날엔, 일 없이도 걷고 누구라도 만나야 하는 법.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이하 ‘경기도재활공학센터’)가 2011년부터 진행해온 노인 낙상예방 보조기구 지원사업은 어르신들의 안전한 이동권을 보장함으로써 삶 전반의 행복권을 찾아드리고자 한다. 올해의 지원 대상자 가정에 보조기구가 들어가는 날. 경기도재활공학센터 최동일 대리와 어르신들을 직접 뵙고, 맞춤 지원되는 보조기구의 종류와 사용법 등을 설명해드리는 여정을 함께 했다.
건강을 기원하는 신통방통 선물세트
“세상에, 신통해라! 내 발에 딱 맞네. 그렇잖아도 편한 운동화를 하나 살까 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새 신발에 발을 넣는 순간의 설렘은, 소녀나 할머니나 매한가지. 미끄럼방지신발 두 켤레를 번갈아 신어 보며, 강여옥(가명) 어르신(76세)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난다.
“지난번에 제가 어르신 발 사이즈를 정확히 재갔잖아요. 끈이 아닌 찍찍이 방식이라 신고 벗기 더 편하실거예요. 아껴 신지 마시라고 두 켤레 준비했으니, 신나게 신으세요.”
행복한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어르신 덕에, 경기도재활공학센터 최동일 대리 역시 유리구두의 임자를 찾은 왕자처럼 싱글벙글이다. 미끄럼방지 신발에 이어 또 새로운 보조기구가 등장할 때 마다 강여옥 어르신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화장실에 설치한 흡착식안전손잡이도, 눕거나 앉았다 일어날 때 지지대로 유용한 일어서기bar도, 가볍고 든든한 네발지팡이와 접이식지팡이 세트 모두 어르신에겐 신통방통하기 짝이 없다.
“어르신이 잘 걷는 편이긴 한데, 욕실이나 방 안에서도 낙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더라고요. 빈혈도 좀 있고 무엇보다 무릎이 많이 아프셔서, 일어날 때 지지대를 짚거나 보행 시에도 지팡이 정도는 의지해야 안전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 봤어요.”
밝은 성격의 강여옥 어르신은 바깥활동을 활발히 하는 편이지만, 골다공증과 관절염으로 무릎앓이가 심각하다. 어르신 표현을 빌자면, ‘엄청 매운 고추를 먹었을 때처럼 따가운’ 아픔이라고. 다리에 점점 힘이 빠져 낙상이 잦고, 통증이 겁나 예전처럼 마실을 즐기지 못하다 보니 우울감도 커졌다.
“어머나, 이쁘다! 가방에 쏙 들어가겠네.”
접이식 지팡이를 접었다 펼치는 연습을 되풀이하며, 어르신 얼굴에 생기가 깃든다. 예전처럼 마실도 종종 즐기고 건강히 지내시란 인사에 함박웃음이 번진다.
“덕분에 내가 오래오래 살겠어. 고마워요, 다들….”
좋은 인연은 또 다른 좋은 인연을 연결한다
보조기구와 함께 우르르 들어선 방문객을 맞으며, 김숙희(가명) 어르신(70세)은 무릎을 덮은 담요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곱게 화장한 얼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미소. 마음 들썩이는 기다림의 정황은 이토록 선명하건만, 어르신의 행동반경은 전동침대를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절단으로 의족을 착용하는 터라 거동이 편치 않은 까닭. 침대 쪽으로 고정된 선풍기와 침대 머리맡에 늘어놓은 자잘한 일상의 흔적들이, 지극히 제한된 동선을 증명한다.
가까운 거리엔 목발을, 비교적 장거리 외출엔 전동휠체어를 사용해왔지만, 둘 다 쉽진 않았다. 목발을 오래 짚다보니 겨드랑이 쪽 신경이 눌려 통증이 심했고, 복닥복닥한 길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자면 행인과 부딪칠까 지레 움츠러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집안에 홀로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최동일 대리와는 오늘이 두 번째 만남. 어르신은 다짜고짜 전동침대 이야기부터 꺼내든다. 침대가 생기니 얼마나 편한지, 한데 높이 조절은 어떻게 하는지, 밀린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진다. 기실, 김숙희 어르신 댁에 전동침대가 놓이게 된 데에는 최동일 대리의 활약이 한 몫 했다.
“어르신 댁 현장평가를 제가 진행했습니다. 와서 보니, 목발과 전동휠체어 외엔 사용하는 보조기구가 하나도 없더라고요. 하지절단 장애인은 바닥 생활이 굉장히 어려운데, 침대도 없었고요. 김숙희 어르신의 경우, 경기도 의료비지원사업을 통해 의료비 및 보조기구 구입비를 15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음에도, 그걸 모르셨어요. 그래서 제가 의료비지원사업 신청과정을 도와드렸고 전동침대를 지원받게 되셨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사업을 진행하는 와중에 또 다른 경로의 지원사업을 연결시켜드릴 수 있어 저도 보람이 컸죠. 오늘 저희가 준비한 보조기구까지 더해지면, 그 시너지가 크리라고 봅니다.”
집 밖으로, 세상 속으로 호출하기
김숙희 어르신께 지원된 보조기구는 롤레이터와 목욕의자, 천장형안전손잡이와 두 종류의 지팡이다. 수납바구니를 탑재한 롤레이터는 보행시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줄 뿐 아니라 장을 보러 갈 때도 유용할 터. 어르신이 가장 반색한 기능은 의자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행 중 휴식이 필요할 때, 언제든 의자로 변신 가능한 롤레이터는 어르신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는 목욕의자도 마찬가지. 최동일 대리는‘좋은 의자를 욕실에만 두긴 아깝다며 방에서 쓰고 싶다’는 어르신께 욕실 내 낙상사고를 예방하는 목욕의자의 장점을 거듭 강조했다.
“어르신, 이 의자는 꼭 목욕할 때 쓰세요. 한번 사용해보면 얼마나 편한지 아실거예요. 접었다 펼칠 수 있으니 사용 후엔 접어서 한쪽에 세워두시면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요.”
비좁은 욕실 내 공간 활용을 염려하는 어르신의 마음까지 살뜰히 살피는 그다. 비교적 키가 큰 어르신의 체격을 감안한 천장형안전손잡이는 침대 옆에 설치했다. 침대에서 일어날 때 지지하기 좋도록 배치한 것. 머지않아 이사를 가야 하는 어르신은 안전손잡이를 떼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얼마든지 옮겨 설치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두 달 뒤에 제가 다시 방문했을 때, 싱크대든 현관 앞이든,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다면 이야기하시고요. 불편한 점이나 궁금한 점은 언제든 문의주세요. 고장이 나도 고쳐드리니까 아끼지 말고 사용해주세요.”
보조기구업체의 대표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기구마다 부착하며, 최동일 대리는 거듭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숙지시켰다. 롤레이터 브레이크 작동법이라든지 접이식지팡이를 펼치고 접는 방법 등이 그것. 여러 번 반복해 보여주고, 어르신이 직접 다뤄볼 수 있도록 찬찬히 이끌었다.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온 김숙희 어르신은 의족을 착용한 뒤 지팡이와 롤레이터를 차례차례 경험했다. 실내용으로 제안한 네발지팡이와 외출시 가방에 챙겨 넣기 좋은 접이식 지팡이는 가벼우면서도 안정정적인 사용감으로 또 한 번 어르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고, 참 편하네. 목발은 겨드랑이가 아파서 짚을 수가 없었는데, 이건 짚기도 좋고,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기도 좋겠어.”
뜨거웠던 지난 여름, 내내 집안에만 계셨다는 김숙희 어르신.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도 침대 위에 머물던 어르신이 어느덧 걷고, 움직이고,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날, 어르신의 롤레이터가 매일매일 힘차게 바퀴를 굴려나가길 기원한다.
글 고우정ㅣ사진 임다윤
관련 글 –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는 사려 깊은 안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