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름다운재단에서 개인기금 상담을 담당하는 손영주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모금을 담당하는 팀에 와서 일하게 된 지 어느 덧 3년이 넘어버렸습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업과 재단을 오가며 제 나름대로 고액 기부 담당자로서 꼭 필요한 자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많았는데요. 추상적인 성질의 것들이라 ‘맞다, 아니다’의 비판적인 시각을 내려놓고, ‘아, 이 자리에 이런 자질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정도의 시각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그래서 오늘 준비한 포스팅은 ‘고액 기부 담당자에게 필요한 것!’ 입니다.
< 고액 기부 담당자에게 필요한 것 >
개인 고액 기부를 담당하며 요구되는 수많은 자질 중 가장 첫 번째로 요구되는 자질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추상적인 표현이라 요구되는 자질에 대해 설명하기 쉽지는 않죠. 모금팀에서 만나는 기부자들의 성향은 매우 다양합니다. 직업, 성격, 성별, 나이 등 매우 다양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과 만나도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저 사람은 특이하다’라고 표현하던 제가 상대방이 살아온 환경을 이해하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이해하게 되었나 봅니다.
재단의 업무 방식이 내규와 원칙 없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이 기부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더욱더 넓은 유연함을 필요로 합니다. 평생의 숙원 사업을 실천하는 고액 기부자의 뜻이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재단의 정해진 원칙 안에서 기부자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그 의사소통 과정에서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기부자와 모금팀 담당자와의 첫 번째 덕목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일(Work)’은 기업의 서열화된 원칙이나 정해진 법규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에게는 비영리의 업무 환경이 매우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상대방의 한 쪽 면만 보지 않고, 다양한 면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면 더욱 좋겠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상대방의 한 쪽 면만 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가령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청을 했을 때 그가 들어주지 않았던 이유는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응해줄 수 없었던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른 면들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거죠. 상대방의 한 쪽 면이 아닌 다양한 면을 보다 보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재단의 사람들은 천천히 사고하고, 천천히 말합니다. 회의 시간도 기본 1시간 이상이 걸리고, 회의에는 되도록이면 다양한 유관 부서의 담당자들이 빠짐없이 참여하도록 권유합니다. 시간 싸움을 위해 책임자를 통해 의사 결정이 내려와서 빠르게 진행해야했던 영리의 업무 스타일과는 매우 다른 환경입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경영학에서는 회의가 많은 조직은 성장이 더디다는 말을 대놓고 들어왔는데도 말이죠.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이유는 하나의 새로운 지원 사업을 만들기 위해 지원을 받는 지원자분들은 물론 함께 협업하는 여러 조직, 구성원들의 상황을 여러 측면에서 꼼꼼히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은 보육 시설을 퇴소한 만 18세의 아동들을 위한 신규 지원 사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설명하면, 보육 시설의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나와 혼자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불안은 바로 잠자고 쉴 수 있는 ‘집’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에 아름다운재단은 이 아이들의 조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위한 지원 사업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하나의 신규 지원 사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지원을 받게 될 아동들, 그리고 이 아동들을 관리하는 보육 시설, 보육 시설 외 위탁 아동들, 그리고 전국의 크고 작은 아동 자립 지원 단체, 그리고 정부의 역할(LH), 아름다운재단의 내규 그리고 그 기부금을 모으게 될 기부자들까지. 기부금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여러 요인들을 한꺼번에 고려해야 합니다. 고려해야만 하는 요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신중함’과 ‘신속한 의사 결정’은 항상 상충하죠. 여러 요인들을 한꺼번에 고려하기 위해 다각도로 준비하지만, 그 사이 소외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갑니다.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정책이 마련되면, 그 정책에 혜택을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소외 계층이 생겨나는가 봅니다. 기부를 하는 사람과 지원을 받는 사람, 그리고 유관 단체들을 위해 보다 신중하게, 그리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이유이죠.
마지막으로 ‘진정성’입니다. 이는 가령 개인 고액 업무를 위한 자질만은 아닐겁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진정성. 절실함이 바탕이 된 진정성은 예측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합니다.
국내에서는 한때 배우 황정민의 밥상 소감이 매우 유명했었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수상 소감 구절이 있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버드맨이라는 영화로 멕시코 출신이 아카데미에서 최초 시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줬죠.
“누군가 이기면 누군가 지기 마련… (중간 생략) 하지만 모순이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개인적인 경험, 이런 것들을 다 융합해서 우리가 함께, 훌륭한 분들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훌륭 한 작품은 세대를 넘나들어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오늘 제가 영광을 대신 먼저 누리게 됐다. 여러분 모두 천재고 아티스트다. “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alez Inarritu) |
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진.정.성’ 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의 힘이 여러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부자를 만나러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건강한 자의식, 업무의 프로세스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행위, 제안서가 아니라 우리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거라는 의사소통. 내가 마음이 움직이면, 상대방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정작 내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하겠죠. 설령 가능했다고 하더라고 과연 그것을 진짜라고 할 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매 순간 모든 일에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기란 쉽지 않죠. 그래도 재단에 있으며 벌어지는 일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살아가면서 받은 사랑이 많고, 또 주는 것보다 받은 것들을 더 오래 기억하며 산다면, 마음 안의 진정성이 쉽게 녹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아름다운재단 모금팀에서 고액 기부자들을 만나며 느끼게 된 주요 덕목들이었습니다. (물론 이외 다른 덕목들도 너무 많지만^^)
내용을 정리할수록 다소 작아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앞서 나열한 고액 기부 담당자의 자질들에 대해 ‘그러는 너는 정말 이 많은 성품들을 다 갖고 있다는 거니?’ 라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연함, 신중함, 진정성, 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계속해서 고민하며 조금씩 채워나가자고.
글 | 손영주 간사
두씨
모금팀에서 일하는 것, 쉽지않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