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광명세계민주교육한마당 IDEC을 갔다가 사회학자 엄기호 교수님의 “단속사회 속 청년의 종말”이란 강의를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내용이라 여러분들께 나누고 싶네요. 내용이 좀 어렵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맥락이 좀 뜰 수도 있다는 점 감안해주세요.

호모사피엔스의 종말, 신인류의 탄생

아래 중 여러분은 몇 번에 해당하나요?
1.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2.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긴, 안나빠지면 다행이다.
3. 그런 질문은 나에게 하지 말아요. 하루 하루 살아갑니다.

1번,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예측하고 기획하는 것, 생애사적 기획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2번,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긴, 안나빠지면 다행’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냉소와 우울로 가득차 있죠. 

3번, ‘그런 질문은 나에게 하지 말아요.’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의 종말이에요.

2014 광명세계민주교육한마당 IDEC (출처:IDEC 페이스북)

바뀌어버린 시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너무 어렵고, 노동력이 가치절하 되며 일회용 일자리가 넘쳐나는 요즘, 아이들은 미래를 계획하지 못합니다. 옛날처럼 역사 속에서 자기를 위치시키고, 미래를 예측하고 기획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탈락 = 개인의 무능’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탈락에 대한 공포가 무섭게 지배합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 모두가 적이 되고, 타인의 아픔에 동조하면 나도 탈락된다는 두려움으로 사회는 점점 개인화될 수 밖에 없죠. 

‘단기적, 비연속적, 가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과중심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는 미친 듯이 소진해서 성과를 (뽑아) 내는 사람, 그리고 무기력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 두 그룹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큰 갭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이 둘은 반대 개념이 아닙니다. 소진과 무기력의 상태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소진과 무기력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뭐하고 싶니? 라는 질문에 담긴 폭력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뭐하고 싶니?”라는 질문을 쉽게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연마하는 과정은 즐겁게도 할 수 있지만, 강요하거나 강제할 때 폭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없고, 뭘 하며 살 것인가 하는 것은 나이가 먹어도 계속되는 고민입니다. 중학생 때 혹은 고등학생 때 꿈을 반드시 찾아야 할 필요도 없고 강요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뭐하고 싶니?”라는 질문에 등 떠밀려 여유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경험하고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수록 더욱 초조해집니다. 체험의 과잉 속에서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죠. 즐거움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 괴로운 과정이 됩니다. 진짜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는 ‘성찰’하는 데서 오는 것인데, 성찰을 통해 경험은 비로소 경험이 됩니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자기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엄기호 교수님의 강연 “단속사회 속 청년의 종말” (출처:IDEC 페이스북)

쓸모 있는 교육이란?

쓸모 있다는 말은 이익이 되는(interest, benefit), 사용할 수 있는(helpful), 도움이 되는(helpful) 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미래의 쓸모를 위해 교육 받고, 학교는 미래의 쓸모를 위해 연마하는 곳이죠. 대안교육은 ‘쓸모’랑은 별개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를 너무 강조 받고 있는 우리, 대체 누구에게 ‘쓸모 있는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부모님? 선생님?

우리는 자기 세계 안에서(예: 또래집단)의 쓸모가 무엇인지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연루되어있는 집단 내에서의 쓸모 말이에요. 요리나 목공 같은 실질적인 것을 예를 들 수 있겠죠. 요즘 아이들은 몸을 사용하는 것에 매우 둔한 경향이 있는데, 자신의 손과 몸을 써서 타인을 위해 실제적 도움이 되는 경험, 타인을 기쁘게 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교육의 목적은 미래의 가치 상승이 아니라 자아실현입니다. 자존감은 미래의 몸값을 높이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의 상호 의존과 도움을 통해, 삶에 밀착적인 지식과 교육-쓸모 있는 교육-을 통해 자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나눔의 경험을 할 때 아이들은 ‘내 삶이 가치 있다’ 느끼고 사회적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 사회 문제를 같이 해결해나가는 동반자로 생각할 때 아이들의 이야기에 경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뭐가 잘못 되었는지 같이 발견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외에도 많은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으나, 요기까지만 소개합니다. 강의를 들으며 요즘 일어나고 있는 많은 청소년 문제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은 채 어른들의 의견만 강요하는 데서 기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내용이 조금 어렵긴 했지만 새로운 시대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동청소년 영역 배분 담당자로서, 진짜 쓸모 있는 지원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덧붙여, 단속사회란?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패러다임 ‘단속사회’, 엄기호 교수에게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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