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교육은 명확하고 거창한 정의가 있거나,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물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의지를 가지고 나눔 교육을 하면 아이들은 분명 달라져요. 생각지도 못한 때 나눔에 대해 얘기하고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하죠.” 동광초등학교 전성실(39)·조일구(36) 교사. 직장 동료에 앞서, 나눔 교육에 뜻을 같이하는 든든한 지지자다. 교육 현장에서 나눔 교육을 실천하는 건 물론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교사연구회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초등학교 교사 15명으로 구성된 나눔교육교사연구회는 2004년 설립됐다. 나눔 교육에 관해 함께 고민하고 배울 뿐 아니라 교구재 개발, 나눔 교육 강의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성실 교사는 나눔교육교사연구회 대표다. | |
나눔교육교사연구회 회의 장면.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모여 교육 현장에서 느낀 어려운 점과 정보를 교환한다. | |
‘무조건’ 나눔보다 철학이 서야 한다 | |
“무조건 나누는 게 정답은 아니에요. 나눠야 하는 이유와 무엇을 나눠야 하는지, 어떠한 효과가 있을지 등에 관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철학이 서지 않은 나눔은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죠. 그런 상태에선 본인이 가진 것이 없다고 느끼면, 나눔을 지속할 수 없잖아요.” _전성실 특별히 ‘나눔의 이유’를 따져보지 않았던 터라, 전성실 교사의 말은 다소 생경했다. 나눔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냐고 되묻는 기자에게 “무수히 많다”며 입을 모아 말하는 전성실·조일구 교사. “한 예로 학생 대부분 의미도 모른 채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합니다. 한 아이에게 ‘왜 1만 원씩이나 내니?’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줬어요’라고 답하더군요. 이런 게 ‘진정한 나눔’은 아니라는 소리죠. 3월, 학기 초에 던진 질문 하나에도 나눔의 의미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어요. ‘12월 불우 이웃 돕기를 할 텐데, 왜 해야 하니?’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스스로 의미를 찾고, 천천히 힘을 모읍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나눔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죠.” _조일구 너무 빤한 이야기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첫 단추를 잘 꿰기란 의외로 어렵다. 요즘에야 나눔 교육 전도사로 통하지만 이들 역시 나눔 교육에 첫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처음엔 막연했죠. 뭘 하긴 해야겠는데 딱히 도덕, 바른 생활 등과 다를 게 없는 것 같고,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험 때만 되면 중단되기 일쑤고…. 나눔교육교사연구회에 모인 선생님들과 어려운 점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듣는 과정을 통해 실마리를 찾아 나갔죠. 전에는 생각이 나면 나눔 교육을 하는 식이어서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았는데, 체계를 갖추니까 좋더라고요. 아이들도 미리 어느 시점에 어떤 걸 배울지 아니까 기대감이 상당하고요.” _전성실 | |
나눔 화폐, 나눔 장터, 간식 나눔, 나눔 통장 등 이들이 담임을 맡은 반에는 여느 초등학교에선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나눔 화폐는 친구를 도와주는 등 칭찬 받을 일을 하면 주는 것으로, 나눔 장터에서 사용할 수 있다. 나눔 통장에는 하루에 한 가지씩 나눔과 관련한 일을 적도록 했다. 간식 나눔은 토요일 간식 시간에 아이들이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한 것. 아이들은 의외로 먹을거리에 집착한다고 전성실 교사는 말했다. 먹는 것에 대한 벽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자연히 ‘공유’의 개념에 눈을 뜬다고. 나눔 교육은 이처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아이들 학년에 맞춰 나눔 교육 커리큘럼도 해마다 작성한다. 1, 2주에는 나눔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4월 책의 날에는 지식을 나누고,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이 되어보는 식이다. 모두 평범해 보이지만 교사의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 |
나눔은 학과 공부가 아닌, 생활 속 교육! | |
“학년 초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부분 ‘의사, 판사, 검사 등이 되고 싶다’고 할 뿐 앞에 수식어가 없죠. 그런데 학기 말 다시 장래 희망 조사를 하면 아이들이 달라진 걸 알 수 있어요. 단순히 의사를 꿈꾸던 아이가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을 위해 의사가 되겠다’고 합니다. 저도 처음엔 의식하지 않고 조사했는데, 아이들이 나눔에 대해 마음속으로 늘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죠. 아이들은 제가 가르친 공부보다 나눔 교육이 기억에 남는다고 얘기해요. 하하하.” _전성실 간혹 나눔 교육이 아이들 교육에 지장을 주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전성실·조일구 교사는 나눔 교육은 교과 과목이 아닌 생활 속 교육이라는 걸 강조한다. “나눔 교육이 학교 교육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학교 공부까지 저해하면서 나눔 교육을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죠. 다만 교사가 평소 나눔 교육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면 교과 공부도 나눔 교육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눔 교육을 단순히 학과 공부 측면에서 다룬다면 지속되기 힘듭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시험 기간이 되면 당연히 나눔 교육을 중단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_조일구 다행히 학부모들은 이들의 행보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직접 나눔 공책을 만들어 보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 반이 바뀌었는데도 꾸준히 나눔 장터 등 관련 활동에 참여하는 엄마들도 많단다. “부모님들도 나눔에 대한 욕구는 있는데, 분출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아이들이 나눔 교육을 통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느끼고, 그것을 더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세요. 외부에서 가족 단위로 나눔 장터를 할 때도 있는데, 아이들보다 부모님들이 좋아하십니다.” _전성실 | |
어렵기보다 오히려 배울 점이 많아 즐겁다 | |
“처음 교사가 됐을 때 잠시 갈등한 적이 있어요. 종전 권위에 쌓인 선생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희망했는데, 정작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가…. 그때 해법을 제시해준 게 나눔 교육이에요. 아이들에게 나눔 교육을 하고 있다지만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어려웠던 적은 없어요.”_조일구 “어렵기보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없다는 제약 정도? 예를 들어 아이들을 데리고 복지관에 가고 싶어도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안전성 문제가 있다 보니 학교에서 결제를 받기도 힘들고요. 더 큰 문제는 단체마다 나눔 교육을 위한 특별한 커리큘럼이 없다는 겁니다. 간혹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오히려 힘겨워하는 사회복지 단체들이 있어요. 물론 환영은 하지만, 인력과 시간 등이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하고 함께 할 것들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외국의 경우 사회복지 단체 안에 아예 나눔 교육기관이나 담당자가 따로 있을 정도로 정부 지원이 탄탄해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계속 노력해야겠죠.”_전성실 돈이 되는 일도, 학교에서 딱히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즐겁다는 전성실·조일구 교사.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이들에게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엔딩’이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공들여 직조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걸 체득한 지 오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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