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서울 NPO지원센터 1층 대강당에 나눔교육 반디 3기 친구들이 모였다. ‘k3-girls’, ‘대단하조’, ‘나눔을배우조’ 등 제각각 개성 넘치는 이름의 8개 모둠이 지난 1월 초부터 두 달 남짓 진행해 온 반디 활동의 과정과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다. 아쉬움과 보람, 물음표와 느낌표를 가감 없이 공유하는 시간. 가장 추운 계절, 따뜻한 나눔을 꿈꾸며 기획하고 실천해온 청소년들의 성장일기가 봄을 부른다.
나에게 나눔이란, 반디란
‘나에게 나눔이란 마음 속 숨은 용기이다. 반디란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선이다. (도토리 책날개, 박하은)’
‘나에게 나눔이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반디란 세상을 바꿀 작은 열쇠이다. (쿼터백‘s, 고세현)’
행사장에 들어서자 모둠별 활동사진과 캠페인 피켓, 모금함 및 기념품 등을 전시한 공간이 시선을 잡아 끈다. 동네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위안부 협상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자 고군분투해온 시간들이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나눔과 반디 활동의 의미를 되새겨 본 참가자들의 글귀도 인상적이다. ‘마음 속 숨은 용기’를 꺼내 들고, ‘세상을 바꿀 작은 열쇠’를 손에 쥐었던 지난 두 달 남짓. 나눔교육 반디를 통해 청소년들이 마주한 세계는 분명 그 이전과 다를 것이다.
각 모둠별 활동 보고에 앞서 그간 나눔 활동을 진행하며 가장 고마운 사람의 얼굴을 풍선에 그려보기로 했다. 반딧불이 선생님과 모둠 친구들, 모금에 동참해준 분들을 차례차례 호명하다 보니, 결국 반디 활동을 통해 만난 모든 인연에 감사 메시지를 전하게 됐다. 풍선 하나에 담아내기엔 고마운 이들이 너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잊지 못할 뜨거운 공감의 순간
모둠 활동 발표의 첫 테이프는 ‘k3-girls(김민채, 임수안, 유영은, 윤소연, 한채린)’가 끊었다. ‘세 살 인성, 여든까지 간다’는 슬로건 하에 바른 인성 캠페인을 펼친 이들은 예절, 효도,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바른 인성의 8가지 덕목을 담은 책갈피와 양초를 직접 제작하여 판매한 후 수익금을 ‘매화복지관’에 기부했다.
“캠페인을 처음 진행할 땐 대중 앞에 서는 게 부끄럽지만, 2차 캠페인 때는 보다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매화복지관에 기부한 금액은 어르신들의 3, 4월 생일상 준비에 사용되며, 잔치엔 저희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우리 동네 대모산 쓰레기 문제 함께 해결하기’를 주제로 다룬 ‘대단하조(김은찬, 우상원, 이서진, 박상은, 이가현)’는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한편, 쿠키와 떡을 준비해 어린이집을 방문하는 등 모금 캠페인을 진행했다. 캠페인 모금액은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에 전달했다.
‘나눔을배우조(박진주, 오예나, 한다현)’는 한․일 ‘위안부’ 협상의 문제점을 주목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방문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와 아픔에 깊이 공감한 모둠원들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아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와 함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실태를 직시했다. 대중모금 캠페인을 벌이며 만난 시민들의 관심은 큰 힘이 되었다. 그냥 지나치고는 몇 번이고 뒤돌아보다가 결국 걸음을 돌려 기부와 서명을 하고 간 커플, 차를 멈추고 기부금을 쾌척한 아저씨 등 뜨거운 공감의 순간들을 만날 때 마다 용기를 얻었다.
“1, 2차 캠페인을 통해 모은 기금은 ‘정의와 기억재단’에 기부했습니다. 기금 전달 차 참석한 수요 집회에선 자유발언대에 올라 우리들이 진행한 캠페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며 진전도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힘을 보태는 사람들의 진심이 더욱 뜨겁게 느껴진 자리였습니다. 우리의 캠페인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스치듯 ‘위안부’ 협상의 문제점을 접한 이들이 잠깐이라도 이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됐다면, 헛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각종 후원 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참여할 계획입니다.”
‘EASY(이지훈, 윤혁진, 이창준)’ 팀은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문제 대안 찾기’를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스마트쉼센터를 방문해 스마트폰 중독 예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는 미션수행으로 기금을 마련한 모둠원들은 보드게임 3종류를 구입해 인근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했다. ‘본인 스스로도 스마트폰 사용량이 많이 줄였냐’는 질문에, ‘캠페인을 진행할 땐 그랬다’며 뒷말을 흐리는 윤혁진 군의 솔직한 답변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번지고 퍼질수록 빛나는 나눔의 기억
‘도토리책날개(권소정, 박하은, 임여원, 강자은)’와 ‘끼리끼리(정민아, 김지연, 김진환, 공지웅)’ 모둠은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 돕기’라는 공통된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우리 동네의 문제점들을 찾는 과정 속에, 빈곤한 노인의 삶을 주목하게 된 까닭이다. ‘오렌지리본 캠페인’을 진행한 아름다운재단을 방문해 폐지 줍는 노인들의 생활고와 그분들이 노출되어 있는 위험요소에 대해 조사한 반디 친구들은 일시적인 도움보다는 꾸준한 관심과 배려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도토리책날개’는 어르신들께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생활 속 실천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하나, 폐지는 끈으로 묶어서 내보기기. 둘,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만나면 천천히 운전하기. 셋, 무거운 폐지수레 밀어 드리기. 넷, 폐지 줍는 동네 어르신께 인사드리기] 위 문구를 적은 쪽지와 함께 사탕과 초콜릿을 예쁘게 포장하여 거리로 나선 모둠원들은 1, 2차 캠페인 수익금을 ‘굿페이퍼’에 전달했다.
한편, 어르신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의미를 담아 카네이션 볼펜을 손수 제작한 ‘끼리끼리’ 모둠은 볼펜 판매 수익금을 ‘안양3동 주민센터에’ 기부했다. 소담스런 카네이션 볼펜은 첫눈에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예뻐, 볼펜 만드는 법에 대한 질문이 줄을 이었다. 반디 친구들은 나눔 활동에 대한 소감으로 ‘관심을 가지면 비로소 보이는 세상’에 대해 입을 모았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굽은 등, 누군가를 돕고자 캠페인을 벌이는 이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독도 문제를 주목한 ‘쿼터백’s(김범준, 이정연, 고세현, 박영석)’는 독도연구소를 방문해 이원택 박사와 인터뷰 형식의 Q&A 시간을 갖고, 독도체험관에서 독도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했다. 제대로 알아야 지킬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였다. 팸플릿과 구운 계란을 준비해 거리 모금 캠페인에 나선 ‘쿼터백’s‘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계획해서 진행해보니, 나눔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문제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게 뿌듯함으로 남았습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진주상아(정남주, 박수아, 나상민, 신서진)는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을 주제로 잡고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를 방문해 유기동물 입양을 비롯, 동물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접했다. 인권을 넘어 동물권까지, ‘생명’이라는 더 너른 범주 안에서 나눔을 고민한 이들을 팜플렛과 쿠키를 만들어 1,2차 거리 캠페인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마련한 기금을 ‘카라’에 전달했다.
겨울의 심장을 관통한 반디 3기의 뜨거운 나눔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주제 선정을 둘러싼 끝없는 회의와 의견 조율의 시간도, 모금에 동참해줄 기부자들을 위해 쿠키와 초콜릿, 볼펜 등의 기념품을 만들던 기억도, 손이 곱도록 추운 날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열고 조금씩 목소리를 키우던 거리 캠페인의 추억도, 돌아보니 모두 그리움이다.
스스로 우리 주변의 문제를 찾고, 이를 풀어낼 실마리를 고민했으며,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고자 캠페인을 진행했다. 아쉬운 시행착오도, 소소한 성취의 기억도 스스로 주체가 되었던 자부심은 반디 친구들에게 든든한 뒷심이 되어줄 것이다.
짙푸른 어둠 속 반딧불이의 군무는 사랑을 위한 교신으로 알려져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의 밀어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밤처럼,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만나 환하게 피어나는 순간처럼, 서로를 물들이며 둥글게 번지고 퍼져 나간 나눔의 시간은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기억임에 틀림없다.
글ㅣ고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