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여중 희망나눔반 ‘미혼모에게 사랑 전하기’

“안녕하세요, 저희는 미혼모를 지원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둘러봐주세요. 감사합니다!”

토요일 오후, 아름다운가게 숙대입구역점 앞. ‘미혼모에게 사랑 전하기’를 주제로 거리 캠페인을 펼치는 금호여중 희망나눔반 친구들을 만났다. 직접 만든 피켓과 모금함, 밤새 구웠다는 쿠키로 꾸린 아기자기한 부스, 씩씩하고 앳된 목소리에 실린 간곡한 호소가 발길을 붙든다.

미혼모 지원 캠페인

미혼모 지원 캠페인

당신의 용기 있는 선택을 지지합니다

‘나는 ‘엄마’입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내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엄마와 아기는 함께여야 합니다. 용기 있는 미혼모와 함께 해 주세요!’

가던 길을 멈추고 피켓 속 문구를 찬찬히 읽어보는 이들에게나, 힐끗- 한번 쳐다보고 그냥 지나치는 이들에게나, “감사합니다!” 소리는 똑같이 우렁차다.

호응이 없으면 쑥스러워 웃고, 반응이 오면 반가워 웃는 아이들. 민서(중3), 태희(중3), 성주(중2), 유진(중2)은 금호여중 희망나눔반 안의 3개 모둠 중 ‘잘났조’ 소속 친구들이다.

아름다운가게 입구 한쪽에 아이들이 차린 자그마한 부스엔 모자, 양말, 지갑, 티셔츠 등의 다종다양한 기부물품과 수제쿠키, 모금함이 놓여있다. 금호여중 선생님들이 모아준 기부물품과 아이들이 간밤에 직접 구운 쿠키는 오늘, 모금에 동참해준 이들께 드릴 선물이다. 모금함 옆으로, 캠페인의 취지를 밝힌 글이 눈길을 끈다.

‘미혼모들은 누구보다 용기 있는 분들임에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고립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까지 이어져 더 큰 고통이 됩니다. 미혼모들과 아이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공감하며, 미혼모들에게 세상의 편견에 맞서 당당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작은 힘을 드리고자 이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용기있는 선택을 한 미혼모를 응원하기

용기있는 선택을 한 미혼모를 응원하기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낙태반대운동연합 방문이 계기가 됐다. 원래 ‘잘났조’ 모둠원들이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낙태 문제로, 낙태반대운동연합을 찾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낙태는 개인의 신념과 종교적 신념, 인권과 사회적 상황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주제인 만큼 어린 학생들이 다루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낙태 대신 미혼모 문제를 다뤄 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에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자연스레 미혼모들의 용감한 선택을 바로 보게 됐다. 편견과 차별의 장벽 앞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지킨 사람들.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고픈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저희 또래에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잖아요. 예전에는 십대 미혼모를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 생각 없이…’ 하며 봤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그 어린 나이에도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자식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진짜 용기 있고 멋지다고 생각해요.” (성주)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나부터 단단해지는 일

나눔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 아이들 스스로 주변의 문제와 그 해결방안을 찾아 캠페인을 진행하고, 모금된 금액을 직접 배분까지 하며 마치게 되는 나눔교육은 이전의 동아리 활동과 사뭇 다른 경험을 안겨주었다.

“1학년 때는 거의 놀기만 하는 동아리였는데, 희망나눔반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 더 좋았어요.” (유진)

‘궁금해서, 친구 따라, 선생님 권유로, 봉사하시는 분들이 멋지다는 생각에…’ 등등,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제각각이지만, 동아리 활동에 대한 만족도는 엇비슷하게 ‘좋아요, 뿌듯해요, 보람돼요’를 달린다.

민서와 유진은 캠페인 전날, 새벽 2시까지 쿠키를 만들었다. 두 친구 모두 요리를 좋아하는 터라 즐거운 일이었다지만, 한창 잠 많은 10대 소녀들이 새벽잠을 설치며 쿠키를 굽고 포장한 정성은 칭찬해줘야 마땅한 일이다. 거리 캠페인 이전, 태희와 성주는 이미 교내에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진행하며 쏠쏠한 성취감을 맛봤다. 모금함을 들고 교무실에 들어가 캠페인 취지를 말씀드리자, 모두들 관심 있게 지켜봐주셨다는 것.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선생님들의 시선을 받기도 처음이었다. 옷과 신발, 화장품 등의 물품을 기증해주신 덕분에 거리 캠페인 부스를 알차게 꾸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모금액도 벌써 15만원을 웃도는 상황. 응원을 위한 또 하나의 응원이랄까. 선생님들의 따뜻한 지원사격에 힘입어, 캠페인을 벌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우렁찼나 보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나도 응원받는 일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건 나도 응원받는 일

부스 앞을 지나는 행인이 생각보다 많지 않자, 아이들은 부스 지킴이 한 명만 남겨놓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을 찾아가기도 했다. 드문드문 이어지는 관심의 발길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련마는, 그럴수록 더욱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피켓을 높이 든다. 첫 거리 캠페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활발하고 적극적인 자세엔 그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며 해결해온 소소한 성취의 기억과 자신감이 밑바탕이 됐을 터였다.

“선후배, 친구들이 함께 하는 공동의 프로젝트 속에 자기 역할이 다 있다 보니, 본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책임감을 더하게 된 것 같아요. 봄부터 진행해온 나눔교육 과정 속에 스스로 나눔의 가치 정립이 됐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요. 다소 소극적이었던 친구들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한 게 놀라워요.” (지도교사 안영미)

캠페인을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는 분유, 기저귀 등을 구매해 미혼모 지원단체인 ‘위드맘’에 기부할 계획이다. 기부처 역시 ‘잘났조’ 모둠원들이 직접 찾아낸 곳. 기부를 위해 위드맘을 찾는 날, 아이들은 다시 한 번 미혼모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희망나눔반 활동이 끝나도 아이들의 나눔 활동은 지속될 전망이다. 유기견, 가출청소년, 전쟁고아 등 관심 가는 주제도 제가끔 다양하다.

편견에 맞서는 미혼모들을 위한 작은 보탬

편견에 맞서는 미혼모들을 위한 작은 보탬

아이들에게 나눔은 ‘응원’과도 같은 말이다. 미혼모 지원 단체에 기부할 분유와 기저귀는 ‘부디 힘내라’는, ‘당신을 지지한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 모름지기 응원은 신바람 나게 해야 맛이라, 캠페인도 그 준비과정도 내내 들썩들썩 즐거웠다. 그러면서 알았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일은 자기 자신부터 충만해지는 일임을, 책임감과 보람과 자신감으로 단단하게 여무는 일임을. 아이들은 지금, 그 응원의 마법을 실감하는 중이다.

책임감과 보람으로 단단해진 나눔

책임감과 보람으로 단단해진 나눔활동


글 고우정 l 사진 조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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