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여의 아름다운 나눔 여행
4월 7일, 봄의 길목에서 금호여자중학교의 ‘희망나눔’이 시작됐다. 저마다의 이유로 희망나눔반에 모인 친구들은 낯선 분위기에서 쭈뼛거리며 제 소개를 마쳤다. 수개월 동안 함께 지낼 모둠원은 어색했다. 기대만큼 긴장되고 그래서 뻣뻣한 순간. 나눔에 대해 고민 없는 자신과 만났지만 그다지 이상하진 않았다.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랐다. 꽃이 흐드러진 두 번째 모임을 가졌을 때 나눔에 대해 공부했다. 반딧불이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걸으며 나눔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무엇을 나눌까 고민하다 덮어뒀다. 종소리가 울리면 ‘나눔’은 사라졌다.
수업시간과 다르지 않은 나눔교육이었다. 때문에 세 번째 만남이 중요했다. 문제를 찾아 더 구체적인 나눔을 이야기하는 장을 펼쳤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닿아 있는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문제는 첩첩이 쌓여있는데 당사자라고 말하기 어려운 사안은 한쪽으로 치웠다. ‘내 문제다!’ 싶은 주제를 모둠원과 다듬었고, 네 번째 회기에 그와 관련된 기관을 알아봤다. 방학에도 쉬지 않고 한두 차례 만나 직접 기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한 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골몰했고 계획을 세웠으며 이것저것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드디어 여덟 번째 모임의 날이 밝았고 희망나눔반은 저마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어떤 모둠은 캠페인을 준비했고 어떤 모둠은 자원 활동을 가졌다. 뭐든 자발적으로 일어난 나눔이었다. 처음을 떠올리고 지난 6개월여를 더듬으면 굉장한 변화였다. 어떤 순간에 친구들이 달라졌는가. 변화를 부추긴 동력이 있었나. 꼬리를 물고 늘어선 궁금증. 그 설레는 해답을 쥐기 위해 아홉 번째 만남인 ‘응원전’이 중요했다.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2016년 10월 13일 목요일 오후 1시. 금호여자중학교 3층에 위치한 과학실이 북적인다. 열다섯 명의 희망나눔반 친구들이 모였다. 7펀조, 본새, 잘났조 세 모둠의 지지자 반딧불이도 함께이다. 게다가 희망나눔반의 친구, 기관 관계자,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나눔교육의 마지막인 ‘응원전’을 위해서였다. 나눔과 희망이 선순환하며 서로를 성장시킨 희망나눔반. 그들의 그간 활동을 나누고 기운을 북돋우며 격려하는 자리다.
첫 번째 시간은 조영실 반딧불이가 이끈 ‘너와 나는 짝꿍’. 응원전에 참가한 이들이 둘씩 짝을 이뤄 서로 번갈아가며 한 사람이 안대를, 또 다른 사람은 스킨십 없이 안내를 하는 게임이었다. 구겨진 종이를 밟지 않고 여기저기 널린 볼펜을 얼마나 많이 잡느냐가 관건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여흥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을 다치지 않도록 이끌고, 목소리뿐이지만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움직이는 둘의 관계는, 배려와 지지로 단번에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찰나였다. 아직 노인이 아니며 미혼모의 막막함을 알 수 없고 성적 때문에 비관해서 삶을 포기한 경험은 없지만 희망나눔반은 매순간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조영실 반딧불이는 그것이 나눔교육의 시작이었음을 게임을 통해 알렸다.
박수진 반딧불이가 이끈 두 번째 시간은 3개의 모둠이 그간의 활동을 소개하고 궁금한 부분을 나누는 자리였다. 첫 번째 발표 모둠인 7펀조가 방류희의 소개로 포문을 열었다. ‘어르신 우울감 해소 위한 활동’으로 노인복지센터를 직접 방문해 마스크 팩과 손 마사지를 서비스한 7펀조의 정지예와 배채윤은 시간이 부족했던 게 가장 아쉬웠기에 만약 기회가 생기면 다시 신청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한지혜는 나눔을 행복, 반디를 정이라고 풀이하며 선생님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친구들과 외부활동 시간을 맞추느라 힘들었던 조수민은 어려웠던 것만큼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강조했다. 발표를 맡았던 방류희는 다음에는 유기견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고 조연우는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직접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고, 무엇보다 늙음은 언젠가 늙을 나의 문제이기도 해서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남달랐다고 소회를 밝혔다. 말보다 행동을 우선하느라 자원활동을 택한 7펀조다운 이야기였다.
수많은 사과를 품은 씨앗이 되어
두 번째 바통을 이어받은 본새 모둠의 주제는 ‘청소년 성적 비관 자살률 낮추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과 함께 ‘출신학교 차별 반대’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다. 발표를 맡은 이명경은 어떻게 환경문제에서 청소년문제로 넘어 왔는지 설명하며 급작스런 비 때문에 우왕좌왕했던 에피소드를, 나눔은 행복이고 반디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던 김지혜는 기부자 사은품 팔찌 만들기가 힘들었지만 재밌다고 이야기했다. 어디까지 베풀 수 있는가, 얼마나 베푸는 게 가능한가를 가늠하는 시간이었다는 최서연 역시 힘들게 만든 팔찌가 남아 아쉬웠다고 귀띔했다. 나눔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주원은 광화문 역사에서 캠페인 할 때 좀 더 큰소리로 동참하자고 외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눔이라고 생각하는 양지원은 캠페인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서 집회신고를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고 뿌듯해했다. 또한 자신이 줄 수 있는 만큼 나누고 싶다는 박지은은 새로운 체험인 반디를 통해 시야가 확장돼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잘났조’의 ‘미혼모에게 사랑전하기’를 발표한 윤지수는 조사하기 전에는 그 심각성을 몰랐고 관심도 없었는데 상황을 알게 되니 그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면서 도움을 받아 건강하게 꾸려나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유진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한 관심과 사랑을 나눔이라고 정의하면서 반디에서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눔을 작은 희망으로 생각하는 김민서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거리에 머무르자고 서로를 응원했던 친구들이 고맙다는 속내를 전했으며, 박성주는 모금한 사람에게 이런 활동을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 감동스러웠다는 에피소드를 나눴다.
세 모둠의 발표를 지켜본 금호여자중학교 박명순 교장선생님은 “여러분이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다”며 “희망나눔반의 응원전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새삼 깨달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셀 수 없는 사과를 품은 씨앗” 닮은 희망나눔반 친구들에게 아름다운재단의 증서 전달식이 진행됐다. 참가자 전원이 낙오 없이 과정을 마쳤다. 그저 수행을 완수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다. 금호여자중학교 희망나눔반은 봄과 여름과 가을을 함께하며 나눔을 깊이 생각했고 행동했으며 함께했고 확장했다. 자신의 문제라는 인식이 이끌어낸 변화였다.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니더라도 시간과 장소를 떠나 맞닥뜨리게 될 ‘나’는 ‘당신’이 되었다. 당신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로 전환됐다. 공감이라 불리는 경험은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그러나 혼자였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은 모둠원과 손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떤 순간, 왜, 어떻게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응원전’의 설레는 해답이나 마찬가지. 시작과 달리 자발적으로 일어난 나눔은 분명 금호여자중학교 희망나눔반의 오랜 자랑으로 남을 것이다.
글 우승연 ㅣ 사진 조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