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 반디 영상 파트너이자, 청소년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창작집단3355의 ‘문문’ 작가가 2016년 청운중학교 학생들의 활동을 지켜보며 기록했습니다. 문문작가의 나눔교육에 대한 생각과 청운중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왜 하필 의자였을까?
“의자요?”
“네, 근데 그냥 의자가 아니에요.”
처음 ‘의자’ 이야기를 들은 건 겨울의 문턱에서였다. 광화문 광장으로 캠페인을 나갔다가 온 청운중의 한 모둠이 의자를 사려 한다고 나눔교육을 진행하는 반딧불이선생님에게 듣게 되었다. 그 모둠이 캠페인을 벌인 날은 그 며칠동안 유독 추운 날이었다. 청운중 학생들의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 속에서도 모둠원들은 퍽 추워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리본 만들기를 하면서도 손에 몇 번이고 입김을 호호 불기도 했다. 나는 영상 기록을 보면서 ‘이 모둠은 캠페인을 마치고 모금한 돈으로 광화문 광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핫팩이나 방석을 사드리겠구나’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의자라니.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냥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를 사고 싶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그걸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광화문에 가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분향소를 들르고 리본공작단 자리에서 노랑 리본을 만들고 유가족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 온 청운중 학생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등을 받쳐주고 싶어했다.
나는 그제서야 영상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오래 한 자리에 앉아 있게 된 그들의 표정은 불편하고 뚱해 보이기까지 했다. 리본을 만들거나 세월호 유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몸을 계속 움직이고 뒤척거린다. 영상을 모아서 편집하는 우리끼리는 그 표정을 두고 ‘추워서 그런가, 중학생들은 아무래도 나눔교육 자체도 낯선 데 캠페인까지 하라니까 너무 낯설었나 보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우리가 틀렸다.
2015년에 처음 청운중학교에 갔을 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겉으로 드러난 표정과 말소리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하는 사려 깊고 성숙한 ‘어른’이지만 ‘너’는 배려심 없게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중학생’ 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아직 못 벗어났다.
안녕? 중학생
2015년부터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이 청운중학교로 찾아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재단의 나눔교육은 방학기간에 청소년 신청자들을 모집해서 진행되는 형태였다. 같은 지역에 사는 청소년들이 한 모둠이 되어 다른 지역에서 온 다양한 나잇대의 벗들과 공통된 워크숍을 같이 들은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참가자들에게는 하나의 교육이 되는 상황이었고 분위기 자체가 매우 풍요로웠다. 다만 또래집단 끼리 나눌 수 있는 긴밀함이 없다는 점과 신청자를 받아서 운용하는 교육이다 보니 아무래도 나눔 자체에 평소 관심이 많던 참가자들이 많다는 점이 아쉬워 보였다.
창작집단3355는 2015년 여름에 처음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 영상 파트너로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그해 가을 청운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눔교육을 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눔교육이 실시되는 시간은 진로적성 시간이라고 했다. 본인들이 신청하거나 선택하지도 않은 교육인데다가, 처음 들어보는 낯선 프로그램, 대다수 학생에게는 매우 소중한 휴식 시간일 게 뻔 한 진로적성시간, 게다가 중학생이라니 ! 나는 걱정 반 흥미 반을 떠안고 청와대 뒤편에 있는 청운중학교로 3355동료들과 내기를 하며 갔다.
역시나 그들은 내 예상대로 매우 시끄러웠고 나눔교육 자체에 엄청나게 낯설어했으며 교육이 끝나면 반딧불이 선생님들은 점심으로 밥을 두 그릇씩 드셨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기본적인 교육이 끝나고 나서 내가 사는 지역의 문제점을 같이 고민하고 그걸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으로 왔을 때 학생들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도로에 즐비하게 서서 등굣길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큰 관광버스들에 대한 울분에서부터 청소년 연애와 성교육, 학교폭력과 왕따 얘기, 길고양이와 유기견 등등 생활과 밀접한 사회적 의제들이 나왔다. 비영리기관이 뭔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는 학생들이 절대 다수였지만 듣고 나서 호감을 표명한 학생들 역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뒤 청운중 학생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지역사회의 문제들을 좀 더 큰 테두리 안에 넣어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을 방문했는데 그게 그들에게는 시민단체들과의 최초 만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서 학교 안을 돌거나 자신이 사는 아파트단지 입구에 서서 캠페인 구호를 (매우 어색하고 멋쩍게) 외치거나 사람들에게 설명했는데 나는 그 머뭇거림에 격한 감정이입을 했다. 아무도 캠페인 자체를 반대하거나 동참하지 않은 청운중 학생은 없었다. 투덜거리거나 멋쩍어하더라도 모두 끝까지 마무리했고 모금을 성공적으로 성공한 모둠은 ‘기쁘다’고 말했다. 좋네요, 기뻐요, 잘 됐어요, 라는 말 속에는 나눔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감정이 단순하고 반듯하게 들어가 있어서 그 목소리들은 나를 즐겁게 했다.
2015년의 청운중학교 나눔교육 사진과 영상을 꺼내서 다시 보니 안 보이던 게 하나 더 보인다. 아무도 자고 있지 않다. 엄청나게 시끄러웠는데 우리를 보거나 친구들끼리 밀린 얘기를 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원했던 대로 모둠끼리 떠들고 있다! 그랬구나, 계속 깨어 있었구나, 낮잠 시간인데 안자고 우리랑 같이 한 공간 안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구나.
우리는 반디, 나눔을 퍼트리죠
2015년에 이어 2016년에도 나눔교육을 실시한 청운중학교만 학교 안에서 나눔 교육이 실시된 게 아니다. 다른 중학교들은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나눔교육을 실시한 학교가 생겼다. 또래 집단이 모여 있을 때 생기는 긴밀함은 집중력으로도 이어진다. 학교 안으로 들어간 나눔교육 반디는 학교 담당 선생님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서 또 다른 성장이 이루어지는 게 보였다. 학생들에게 학교라는 친숙하고 답답한 공간 속에서 새로움을 만들어주자 그들은 바로 돌파구를 만들었다. 신청자를 뽑아서 진행할 때보다 더 급진적이고 구체적인 문제해결 실행방안들이 나오기도 했고 이전에 나눔교육 영상들을 유투브를 통해 다 보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3355는 나눔교육의 스케치 영상별로 음악과 구성을 모두 다르게 해야 하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
청운중학교는 탄핵과 탈핵, 환경문제와 인권문제 등 오래전부터의 사회문제와 지금 막 우리 앞에 도착한 미래적 경고가 모두에게 공감을 샀다. ‘나눔전구’와 ‘애플펜’ 모둠은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를 다뤘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디에 상담하면 좋을지 홍보하는 영상 만들기에서부터 손피켓을 들고 학교 안을 돌면서 학교폭력과 왕따를 없애자는 캠페인까지 아날로그와 첨단을 오가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청운중 학생들은 “내가 당하게 되면 어디로 전화해야 할지 알게 되어 좋다‘ 고 환하게 웃거나 ’앞으로 교실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겠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환경 문제 역시 자신의 문제로 많이 인식했는데 ‘완벽하조’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에 따라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에코마일리지 활용과 적립을 시민들에게 홍보했다. 전단지가 줄어들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활동가들만의 비밀도 ‘완벽하조’는 완벽하게 알아버렸다.
‘나눔전구’ 모둠은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성분 때문에 많은 영유아가 사망한 옥시사태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그걸 막기 위해서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전불감증과 소비자운동차원에서 팩트 체크 운동을 했는데 많은 시민이 호응해주어서 기쁜 방면 생각보다 사람들이 여전히 어려워하는 걸 느끼기도 했다.
마음만은 부자인 ‘거지기부단 모둠’을 통해서는 다른 모둠원들이 수도인 서울에서조차도 장애인 이동을 위한 편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눔의 연결고리’ 모둠은 사교육과 입시문제에 대해서 지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는 순간부터 성적의 압박은 몇 년을 따라다니는 데 그것이 얼마나 모두에게 비교육적이고 좋은 인재의 성장을 막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은 부모님을 설득해서 다니고 있던 학원을 그만둔 모둠원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세상에 외치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해보면 캠페인 당일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은 너무 놀라웠다.
‘나눔다운 재단’ 모둠과 나눔의 연결고리‘ 모둠은 박근혜 탄핵 서명과 세월호 진실을 밝히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사람들이 지나치지 않고 리본을 가져가주어 사람들에게 너무 고맙다‘ “서명을 하지 않더라도 눈이 마주치거나 리플렛을 받아주는 시민들로도 무척 고맙더라’는 얘기를 할 때는 이미 활동가이자 시민으로서의 성장이 부쩍 느껴졌다. 나눔교육을 마무리 하면서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을 인터뷰하면 힘들고 속상하고 피곤하고 소위 말하는 ‘쪽팔리고’의 고생담이 주욱 나오고 하나같이 얼굴이 환해지면서 주섬주섬 선물처럼 한 마디씩 꺼낸다.
‘이거 하면서 생각했던 게 학교폭력 문제가 생겼을 때 방관자가 되지 않고 도와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일단, 관심을 갖는 게 행동보다 중요한 거 같다.’
‘끝나고 보니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캠페인이 끝나도 세월호에 대해 잊지 않고 내 생활에서 운동하고 싶다.’
‘사람들이 우리 피켓을 보고 모금에 응해줄 때 정말 해주는구나 놀랐다.’
두 가지 질문과 백 번의 답변
내가 아름다운재단의 나눔교육 반디에 대해 추천하거나 영상을 보여줄 때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눔 교육이 그렇게 좋은 건가요?’ 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눔이라면서 그게 왜 봉사가 아니라 시민교육이죠?’ 라는 것이다. 세상에 ‘그렇게’ 엄청 많이 좋은 교육은 없다. 교육을 듣고 나서 무언가 바뀐다면 그건 교육자 자신일 것이다. 마찬가지다. 나는 나눔 교육이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성인들에게 아주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는 거로 생각한다. 크기로 치면 겨자씨 정도일 것이다. 변화의 폭이나 진동은 나눔 교육의 참가자인 청소년들보다 본인이 교육받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성인들에게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나 역시 지금 그러하다.
이번에 세월호 캠페인을 한 청운중 학생들을 생각해본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면 미안해했다. 더우면 더운 게 미안했고 추우면 추운 게 미안했고 먼저 일어서야 하는 게 미안했다. 미안해서 광화문 광장을 돌아간 적도 있었다. 나눔교육에 참여한 청운중 학생들은 어떠했나. 그들은 다리가 불편하다고 느끼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하네, 등받이 있는 좌식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 나라면 그게 좋겠다고. 나는 여기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말이다.
불편함을 배우는 것 그리고 계속 질문하는 것. 질문의 주어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일 것, 그게 민주주의다. 나눔 교육 안에서의 세상은 완벽하고 평화로운 게 아니라 부조리와 고통이 있고 그게 있어서 내가 마음이 불편한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 부족한 것도 많고 넘치는 것도 많다.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는 모자란 것이 아니다. 내가 채워주면 된다.
나눔교육은 주어가 ‘나’로부터 시작해서 ‘우리라는 과정을 거친다. 생각해보자. ’지금 사회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니?‘라는 질문과 ’너는 지금 네가 사는 동네와 학교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는 엄청나게 다른 질문이다. 내가 문제라고 느낀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는 탐구를 통해 ’나‘ 라는 사람이 가진 힘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작고 작고 작고 작고 작은 나. 그러나 모든 질문과 행동은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걸 가르쳐준다.
나눔교육에서의 나눔이란 내가 가진 물질적 정신적 무언가를 타인 혹은 세상을 위해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지 생각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것이다. 정면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서로 생각을 나누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 “나눔”이다. 무언가를 주는 것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본다면 나눔 교육에서의 나눔은 주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다. 기부와 모금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현재의 나눔교육 반디의 설계도이다. 그러므로 이건, 시민교육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눔 교육을 듣고 나도 참여자들은 금방 잊을 것이고 당장은 (아마 꽤 오랫동안)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인 데다가 특히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만났다.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만남은 씨앗을 심고 반드시 가능성을 남긴다. 우리는 한 번 만났다. 아주 옅고 사소하게 만났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 만났다. 백번이고 대답해줄 수 있다.
글 문문(창작집단3355) l 사진 창작집단3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