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을 믿고, 알아서 하니 나는 크게 궁금하지도 않다”라며, 기금으로 지원하는 사업에 대해 늘 무심한 듯 믿고 맡기는 주필호 기부자님이시지만 이번 제안에는 흔쾌히 오케이 해주셨습니다. 그건 바로, <김윤심나눔교육기금>으로 지원하는 나눔교육 청소년들이 기부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의미있는 자리였기 때문인데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명의 청소년, 그리고 나눔교육 지원을 통해 또래들보다 한층 성숙한 시선을 가지고 어느덧 대학생이 된 두 명의 청년. 이렇게 네 명의 친구들이 영화 제작사 대표가 아닌, 기부자 주필호 님과 직접 마주했습니다. 모두가 처음 만나 낯설고 어색한 만남, 하지만 이내 그 대화가 깊어졌는데요. 혼자만 알기 아까운 귀한 이야기들이 담긴 인터뷰를 여러분께도 공유합니다. |
김채림 : 반갑습니다. 대표님을 만나서 가장 먼저 여쭤보고 싶은 건 기부를 결심하게 된 동기였어요. 많은 기부단체들 중에서 아름다운재단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주필호 : 기부라는 행위에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굳이 있다면 제 어머니의 영향이랄까. 제 경우엔 본능적으로 그냥 하는 게 기부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나누면 좋지 않을까, 자기위안일 수도 있고요. 영화 제작을 하며 계속 앞만 보며 달리니까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15년 전쯤 모 국제 NGO 단체의 기부광고를 보고 나도 모르게 정기기부를 신청했어요. 그때만 해도 아름다운재단과는 인연이 없었고요. 한데 계속 제 일터 가까이서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삼청동에 회사가 있을 때도 옆에 있었고 몇 년 후 서촌으로 이사를 와서도 근처에 있었고. 뭐하는 곳이지 궁금하던 차에 밥 먹으러 가다 “여기 뭐하는 곳이냐?” 들어가서 물어봤죠. 다른 기부단체가 있었다면 거길 들어갔겠죠(웃음).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은 기부금을 내면 투명하게 사용하겠다. 시민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제대로 무장돼있는 곳이구나’ 싶은 깨끗한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 기부방식을 생각한 건 아닙니다. 다만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니까 영화 수익과 관련된 무엇이면 어떨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네요.
정한결 : 보장되지 않은 수익의 절반을 미리 약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 <관상>이 잘 돼서 많은 수익이 날 거라는 예상을 하셨나요?
주필호 : 초등학교 이전부터 영화를 많이 봤고 그토록 염원하던 영화를 업으로 가지게 됐죠. 들어와서 보니 영화는 상상도 못할 돈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어요. 베팅을 한다는 개념이 강하고 요행을 바랄 수도 있죠. 영화산업은 일반 직업과 달라서 노력에 비례해 큰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가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영화 <관상>의 천만 흥행을 개인인 내가 감당할 순 없겠더라고요. 온당치 않다고도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많이 관람해서 생긴 수익이니까 이것을 사회에 돌려야겠구나 결심이 섰죠. 어떤 방식으로? 기부로! 좋은 영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약속하지 않았다면 기부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웃음).
정한결 : 수익 절반을 기부하는 거니까 기부금액도 덩달아 커졌잖아요. 정말 큰 금액이었는데, 조금도 아깝지 않으셨어요?
주필호 : 사촌조카가 초등학생 때 “삼촌 그걸 왜 해요? 하는 이유가 뭐예요? ” 그렇게 물으면 “좋아서 한다”고 답했어요. 성의 없는 답 같지만 이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길이 없어요. 왜 하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냥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죠. 지난 9월에 빌 게이츠의 롤모델인 찰리 척 피니가 자기 회사 재단을 해체하면서 9조4천억 원을 기부했더라고요. 은퇴재산을 남겨두긴 했지만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아서 “왜 전 재산을 기부하냐” 물었겠죠? 그 답변은 한 마디였어요. “당신도 해봐라, 진짜 좋다!”
김연서 : 정말 해보니 좋으셨나요?
주필호 : 네, 보람이고 즐거움입니다. 어찌 보면 자아실현이기도 하고요. 단지 개인적 자아실현일 뿐인데 사회적 이슈와 만나니까 사회적 자아실현으로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아름다운재단에서 잘 해주고 계신 거고요. 재단을 통해서 많이 배웁니다. ‘필란트로피(Philanthropy)’ 같은 용어를 재단 아니면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홈페이지에 늘 들어가서 봐요. 사회운동이나 시민운동, 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은 아니지만 재단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단체에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박진주 : 기부나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주필호 : 별다른 고민은 없습니다. 다만 여러 사람들의 사회 환원에 관심이 많아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관련 글을 찾아봅니다. 인상 깊은 말은 기억하려고 노력하고요. 예를 들면 부모 때부터 부자였던 워런 버핏의 “자기는 특별하게 성장했고 부모 덕분에 성공했으니 90% 이상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말, 워런 버핏이 존경하는 그의 누나 도리스 버핏의 “운이 나빴을 뿐인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순 없지만, 그들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다”는 말들이요. 아마도 제가 품은 어떤 생각을 닮아서일지도 모르겠네요. 반복되는 말이지만 사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는 몰라요(웃음). 되짚어보자면, 저는 어린 시절 촌에서 자라 영화를 자식처럼 바라보며 돈에 집착하지 않으며 살겠다고 결심한 지 수십 년이 흘렀고 제법 잘 지키며 살고 있죠. 한데 살다보면 돈이라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렇게 욕망이 덧붙여지기도 하고요. 돈을 욕망하는 삶에 휩싸이기 싫어서 나누는 삶을 더 구체화했을 거예요.
김연서 : 문득 기부자님께 돈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지네요.
주필호 : 확실한 건 돈이 있으면 불편함은 덜 수 있어요. 하지만 분명 돈이 전부는 아니에요. 돈이 없으면 불편하지만 돈을 절대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탐욕은 다른 영역이죠. 롤모델이기도 한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José Alberto Mujica Cordano)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선택한 ‘자발적 가난’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가 인생을 간소하게 살기로 결심하며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게 참 좋았어요. 정말 가난한 사람은 조금밖에 갖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던 말이 가슴에 꽂혔죠.
박진주 : 처음부터 청소년 활동, 그 중에서도 나눔교육에 초점을 맞춰 기부하신 건 아닌가요? 일회성, 결과가 눈에 보이는 기부가 아닌 지원사업을 선택하신 배경은 뭔가요?
주필호 : 기금이 마련된 후 재단에서 여러 제안을 주셨는데 나눔도 습관이고 교육이다, 싶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습관으로 굳어져야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와서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면서, 특히 청소년 나눔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시는데 바로 납득했습니다. 그리고 나눔교육보다 앞선 것이 나눔교육을 진행할 선생님을 양성하는 것이고,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구상에 백퍼센트 공감했죠. 백년지대계가 바로 이런 거구나 절감했고요. 재단에서 투명하게 사업을 진행하니까 믿고 속속들이 알려고 하진 않았거든요. 막연히 선생님 교육만 떠올렸는데 청소년이 주체가 돼서 직접 무언가를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사실 무척 신기합니다.
정한결 : 대표님이 기부를 계속 하셔서 부족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시는 게 인상적이에요. 한꺼번에 들어온 많은 돈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데 사용하셨잖아요. 게임 중에 일정투자를 하면 알아서 잘 크는 느낌의 게임들이 있는데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제 가치관도 그렇고 여기 함께 자리한 친구들 성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해요. 멀리서 지켜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궁금해요.
주필호 : 저도 이렇게 앉아서 네 분과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게 신기해요. 이분들이 앞으로 뭐가 되려고 이러나 싶고(웃음). 제가 자랄 때와 너무 다르니까 참 무섭기도 하고, 큰 인물이 될 분들이구나, 든든하기도 하고. 만남 자체가 벅차고 놀라운데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다는 건 더 놀랍고 대단합니다. 음, 제가 어떻게 표현할 다른 단어를 못찾겠는데… 여러 흥미진진한 게 많을 텐데 기부니 나눔이니 이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궁금하달까. 여러분은 대체 뭐가 되려고 나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건가요?
정한결 : 저는 나눔교육의 커리큘럼이라고 할까요, ‘반디’ 교육을 거쳐서 청소년배분위원회까지의 과정에 입문하게 된 게 단순히 생활기록부에 적을 봉사활동이 필요해서였어요. 그런데 과정을 겪고 나서 제 가치관이 변했어요. 나눔교육을 받으면서 실제로 돈도 모아보고 나눔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스스로가 원해서 하고 있나, 아니면 따라가서 하고 있는 건가, 순간순간 굉장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나눔교육을 꽤 오랫동안 받아오니까, 특히 오늘 만남을 통해서 확고해진 것 같아요. 나중에 돈을 벌더라도 나눔을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대표님이 기대하신 건 아닐지 몰라도 나중에 내가 돈을 갖게 된다면 무조건 나눔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연서 : 저도 한결 님처럼 봉사기록 남는다고 하니 생활기록부 채워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글 쓰고 이야기 짓는 것을 좋아해서 소설도 쓰고 작가나 영화감독을 꿈꾸는, 나중에 출판사나 이야기를 짓는 회사에 들어가야지 생각하는 평범한 청소년이었죠. 그런데 교육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좋더라고요. 여러 과정 중에 차별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게 꽤 인상 깊었어요. 관심이 생겼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기부가 제 시선을 확장시킨 거예요.
김채림 : 사실 처음에는 청소년이 사회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면서 청소년배분위원회와 반디를 시작했어요.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이 제한돼 있잖아요. 지금은 달라졌지만 제가 활동을 시작할 땐 정말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건 공부 외엔 별 게 없었어요. 그때 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제 또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을 주체적으로 꾸릴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제 진로를 결정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박진주 : 중학생 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기회가 닿아 반디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사회와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배분위원 활동을 제안받고 기뻤죠. 가이드만 주고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배분할 기회를 준다는 게 참 신선했고요. 다른 데는 청소년들을 겉보기로만 세워두고 어른들이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직접 해보라고 하니까 설레더라고요.
주필호 : 재밌네요. 아름다운재단 간사님도 교육 선생님도 대단하시고요. 천만 원이라는 돈을 어떻게 배분했을까, 듣고 있으려니 저도 궁금해요. 청소년들은 비청소년과는 다를 텐데 어떻게 돈을 쓰는지도. 불안하기도 했을 텐데 그걸 존중해 주었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김채림 : 저희처럼 대표님도 나눔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바뀌신 게 있나요? 어떤 변화를 느끼고 계신가요?
주필호 : 글쎄요, 제 생활의 변화는 전혀 없어요. 다만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변한 것 같아요. 나를 향한 외부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죠. 무엇보다 칭찬을 많이 받게 돼요(웃음). 한 번은 영화계 대선배가 어느 날 제게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가장 멋있게 돈을 썼다!”는 ‘인생의 칭찬’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고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저 나 좋아서 시작한 나눔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는 걸 목도할 때마다 어쩌면 이것이 선한 영향력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요. 아마도 그렇게 덜어내고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세상, 그게 제가 바라는 내일일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죠?
박진주 : 저는 청소년과 대학생이 나눔의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재단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해요.
김채림 : 음, 자신이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는 것이 당연한 사회요. 그리고 진주 님 의견처럼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들도 지금처럼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연서 : 저는 사람들이 차별이나 차이에 대해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한결 : 저는 대표님처럼 쾌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를 포함해서요. 나중에 제 분야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아름다운재단에 현금다발을 들고 오고 싶어요(웃음). 그러면 나눔교육을 받은 청소년이 자신의 길을 찾아 만족스런 결과를 쥐고 기부를 하는 거잖아요. 대표님처럼 “기부하러 왔습니다” 말할 때의 그 기분이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어요.
주필호 :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학철 선생님의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을 하라.”는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저는 나눔과 기부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믿거든요, 우리는 왜 나눔을 실천하는가, 사회와 교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잊지 않고 하루를 지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새삼 나눔교육이 참 소중하구나 생각합니다. 제가 늘 바라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멀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뜁니다.
글 우승연/ 사진 이지환
영화제작사 ㈜주피터필름이 영화 <관상> 수익금의 절반을 2013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 ‘김윤심나눔교육기금’을 조성하였습니다. 기금명은 2013년 영화 제작 중에 타계하신 주필호 대표의 어머니, 김윤심 여사를 기리는 추모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기금은 미래세대들이 나눔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즐거운 책임’을 배우고 받아들였으면 하는 뜻에 따라 2014년부터 청소년들의 나눔교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김윤심나눔교육기금의 뜻에 공감하는 분들은 기금에 기부 참여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