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0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에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는지 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음 밭에 뿌려진 평화의 씨앗, 움트다!
삶의 주인 되기 실험실 “꼼지락 오무락” 프로젝트 ver.2

최근에 가장 괴롭고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선생님이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혼을 낼 때.”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공부안하냐고 뭐라고 할 때.”
“짝꿍이 먼저 시비를 걸었는데 나만 혼날 때.”
“코로나로 어디 가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해서.”

최근에 즐겁고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엄마와 함께 요리했을 때.”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 때.”
“수학문제를 잘 풀어서 칭찬을 들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친구가 위로해주어서 마음이 풀렸다.”

어린이 평화교육 첫 만남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과 즐거움이었다. 지나치게 선을 넘거나 관계의 단절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있었다. 관계가 너무 가까워져도 또 너무 멀어져도 힘들고 괴롭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교실이다. 그 교실에서 무슨 말들이 오고 갈까? 직접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짐작은 간다. 다년간 초등학교 교실에서 평화교육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교실에서는 교과서처럼 아름다운 말들이 오고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긍정의 언어, 지지와 격려, 칭찬과 응원은 닭살이 돋는다며 오글거려한다. 그리고 조롱과 비난에 익숙하다. 어쩌면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여기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질문꾸러미 신청 페이지 이미지

장수 YMCA와 순창청소년문화의집, 그리고 아름다운재단은 변화의 시나리오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기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실험을 했다. 주요한 도구는 질문꾸러미이다. 질문꾸러미는 성장, 실수, 용기, 절제, 사랑, 무기력, 지지, 차별, 거절, 기여 등으로 구성되었다. 질문을 통해 내면을 살펴보는 질문꾸러미를 통해 자신의 진짜 속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2020년 2월에 불어 닥친 코로나의 광풍은 무시무시했다. 몇 달간 머릿속은 하얘졌고 마취라도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행사와 대면 모임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면으로 못 모이면 비대면으로 모이면 되잖아! ZOOM과 같은 화상회의가 시도되고 있었고 학교도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ZOOM은 당시에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임을 하지 못하는 게 답답했고 청소년들도 답답하게 느끼고 있던 차에 날짜와 시간을 정해 카카오톡에서 만나기로 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확히 7시부터 9시까지 무려 2시간을 카카오톡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놀라웠다. 한 번의 경험은 자신감을 높여주었다. 어떻게 하면 SNS를 활용해서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뉴스레터에서 메이커스 꾸러미를 보게 되었다. 재료를 보내주면 가정에서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질문으로 꾸러미를 만들면 되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더 나은 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질문꾸러미’이다. 매주 1개의 질문에 대해 자기만의 답을 찾는다. 기록들을 모아 책을 만든다. 이것이 질문꾸러미 기획의 첫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과연 청소년들이 이걸 한다고 할까? 지난해에 활동했던 청소년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물었다. 반반이었다. 청소년들은 심심하니까 뭐라도 좋겠다는 의견이었고 청소년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키트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었다. 청소년들이 받으면 대접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급지게 만들고 싶었다. 내용과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질문지를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만들었고 청소년들이 원하는 문구가 새겨진 우드펜과 1회용 카메라를 제공했다. 장수와 순창, 완주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49명이 신청했다. 신청서는 구글폼으로 만들었고 참가하는 이유와 과정을 마치고 나면 자신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에 대한 기대 등을 묻는 항목을 넣었다. 호기심으로 신청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진지하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많았다. 6월부터 8월까지 약 3개월간 진행된 이 실험은 기대이상이었다. 이어서 후속활동에 대한 계획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꾸러미 구성품 - 카메라, 질문지, 펜, 자, 토닥카드가 들어있다

꾸러미를 받아보고

열어본 순간 카메라가 있어서 설레었다. 오랜만에 봐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힘든 학교생활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누군가 선물을 두고 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고 내용물과 구성에 설렜다. 질문꾸러미 박스를 궁금한 마음으로 열어보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내용물이 많아서 놀랐다. 내가 원하는 문장이 새겨진 펜이 예뻐서 맘에 들었다. 이제 일주일마다 질문지를 하나씩 채워갈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되면서도 살짝 귀찮으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를 위해서 꾸러미를 만들어주셨으니 최대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청소년들이 질문꾸러미에 참가한 이유

“정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치고 나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은 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깨닫는 무언가가 있을 거 같아요.” (박○람, 순창)
“코로나로 지루하던 삶에 질문을 받으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참여한다. 질문꾸러미를 마치면 허무하게 날리는 시간 없이 뿌듯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박○현, 순창)
“생각하지 못했던 이런 활동에 자신감 있게 신청 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활동을 하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자신감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박○하)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참여했다. 이걸 마치면 생각이 깊어지고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 (안○민, 장수)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고, 마음이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참여합니다. 저의 미래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원, 장수)
“조금 더 생각의 폭을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 대해 가치를 좀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김○현, 완주)

질문꾸러미 세번째 질문 : 용기를 내지 못한 순간

“사이가 좋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당시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하다가 말다툼으로 번졌다. 결국 연락도 자연스레 끊기고 언젠가 한번 마주쳤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나쳐서 어쩌면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만약 싸우고 나서 연락이 끊기기 전에 용기 내어 그 친구와 화해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친구에게 미안하고 보고 싶다.” (배○숙, 장수)

빈 그네 이미지

‘용기를 내지 못한 순간’에 대한 질문에 ‘아무도 없는 그네가 친구가 떠난 빈자리 같다’며 쓸쓸하고 미안한 느낌을 표현했다

 

질문 꾸러미를 하고 난 뒤 청소년들의 작은 변화

“질문꾸러미를 하기 전엔 아무 생각 없이 일주일을 흘려보냈는데 이걸 하면서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경험과 그때 했던 생각들, 그로인해 배웠던 점들을 떠올리며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미, 장수)

“질문꾸러미를 하는 10주 동안 잠을 아주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질문꾸러미를 시작할 때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엔 온통 다 하지 못한 과제와 수행평가로 꽉 차 있었다. 질문꾸러미를 주로 자기 전 시간에 하니까 머릿속이 비워지고 나를 위한 생각으로 채워져서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양○은, 순창)

“질문을 꾸준히 받아 본적이 없고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질문들이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되는 질문이어서 내가 이때 이런 행동을 했었구나, 어느 부분은 고쳐야겠구나 하는 자기반성의 시간이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일 것 같았는데 정작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초반에는 조금 귀찮게 느껴졌지만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현, 순창)

“질문꾸러미를 하면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사소한 거 하나라도 실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내가 하는 행동이 차별이나 혐오가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지구 그 외에 모든 존재들을 조금만 더 존중하고 신경써주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확실히 자리 잡히게 되었다.” (김○희, 장수)

참가자들이 적은 질문꾸러미 기록지 2장. 각각 '나에게 참기 어렵고 힘든 것은?' 과 '나는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고 싶나요?'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적혀있다.

질문꾸러미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장수에서 질문꾸러미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청소년들은 백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들이었다. 곧 고3이 되기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1년간 활동을 치하하고 싶어 문자를 보냈다. 함께 한 1년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고 모두들 애쓴 것에 감사하며 혹시라도 2021년에도 참여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고3이 되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들이 오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내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울컥했다. 짧은 지면에 많은 것을 담지 못해서 아쉽다. 장수와 순창, 완주의 청소년들이, 지역사회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평화로 물들어가고 있다.

질문꾸러미 기록을 모아 만든 책의 표지

질문꾸러미 기록을 모아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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