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임팩트 o 지원단체 :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
10년 전, 야근하던 한 활동가가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개인 보험은커녕 4대 보험도 없던 그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다. 보통의 공익활동가들이 그렇듯 모아둔 돈도 없었다. 활동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지만 두 아이가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활동가가 떠났는데 유족이 살아갈 생계 기반이 전혀 없었다. 여진(동행 사무처장)은 이 사건이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하 동행)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당시 많은 공익활동가가 깨달은 거예요.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많이 해왔는데, 정작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다는 걸요. 그때부터 활동가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공익활동가의 월평균 소득은 133만 원. 십 년이 지난 지금 181만 원으로 소폭 상승했지만, 전체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300여만 원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여전히 낮다.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며 살 수는 있지만, 자칫 아프거나 사고가 나면 목돈을 마련하기가 요원하다. 오랜 세월 이들의 생활고는 그저 당연했고, 개인의 문제로만 다뤄졌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이 문제를 더는 외면할 수 없던 몇몇 활동가들이 모여 공제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공제회도 보험이에요. 어려울 때를 대비해 함께 돈을 모으는 거죠. 다만 보험은 수익을 위해 운영한다면, 공제회는 서로 돕는다는 상호부조의 의미가 강해요. 내가 매달 회비를 냄으로써 어디선가 활동하는 공익활동가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다. 공익활동가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공제회를 만드냐는 이야기였다. 연대와 상생을 늘 말하던 활동가들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시작한 동행에 손을 내밀었던 건 아름다운재단이었다.
“시민사회가 발전하려면 시민단체가 성장해야 하고, 그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시민단체를 만들고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지원한 사업은 아름다운재단의 ‘변화의시나리오’가 유일했어요. 토대를 만들 때까지 3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지원했다는 점도 중요했고요. 당시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동행이 만들어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2013년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동행이 처음 한 일은 공익활동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일이었다. “아무리 일해도 아플 때 병원에 갈 돈이 없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이사를 갑니다”, “학자금 대출이 3천만 원인데 제 월급으로는 이자 갚기도 벅찹니다.” 예상했지만 활동가들의 삶은 훨씬 퍽퍽했다. 최소한의 안전망을 위해 2014년 긴급자금대출사업부터 시작했다.
“활동가라서 돈을 빌려준다고? 모두 놀랐죠. 공익활동을 하지만, 정작 내 삶 속에서 사회 연대를 경험하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요. 그런데 동행은 활동가란 이유로 대출을 해주고 내가 갚은 돈으로 다른 활동가를 돕는다니까 다들 놀란 거예요.”
2017년에는 상호부조 사업도 시작했다. 덕분에 2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활동가에게 3천만 원의 상호부조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지만, 10년 전을 떠올리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학자금으로 고통받는 청년활동가를 위한 대출 지원도 있다. 연이율 1%의 낮은 이자로 2천만 원까지 대출 지원을 해 원금을 상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 활동가는 이 지원을 받고 “10년 동안 이자만 갚았는데 나에게도 빚 없는 삶이 가능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 사업은 이제 활동가들이 매달 상환하는 돈으로 다른 활동가들에게 재대출하고 있다. 서로를 지원하는 상생의 선순환이 생긴 것이다.
“제로에서 시작했던 동행의 조합원이 2020년 10월 현재는 1,880명이에요. 이제 2천 명의 조합원을 내다보게 됐어요. 그만큼 활동가들에게 동행이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10년 전만 해도 활동가의 생활고는 뒤풀이 자리에서나 암암리 하던 이야기였다. 동행은 그 문제를 수면 위에 올려 함께 풀어야 할 문제로 만들어왔다. 여진은 직접적인 지원만큼 활동가들이 삶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누군가 아프거나 전세 보증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침묵 대신 질문을 한단다. ‘동행 조합원이세요?’ 공익활동가들이 어려울 때 찾을 곳이 생긴 것이다. 이것이 동행이 꿈꾸고 만들어온 사회적 안전망이다.
글 | 우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