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레터는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이 숨을 후~후 불며 쉴 수 있도록, 변화의 증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입니다. 5월은 어린이 권리 증진을 위해, 변화를 후후 불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다’란 말이 있어요. 어른이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어린이들이 배운다는 뜻인데요. 비단 어른들만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어른들의 사고가 반영된 콘텐츠를 보면서도 세상을 보는 방식을 체득해갑니다. 어른이 지니고 있는 차별과 편견, 고정관념마저도 빠르게 습득하죠.
어린이 콘텐츠 플랫폼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는 어린이들이 어른의 틀에 갇히기보다는, 더 넓고 건강한 세상을 만나기를 바랐습니다. 8가지 기준에 맞춰 성평등 그림책을 큐레이션하고, 인권, 직업, 환경 등 오늘 일어나고 있는 삶의 주제를 담은 그림책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유튜브 뉴스 채널 ‘우따따TV’도 시작했어요. 어린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 ‘나중에 다 알게 돼’라며 답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친절하게 답하는 뉴스입니다. 어린이가 직접 자신의 권리를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직접 그린 어린이 권리선언문’ 캠페인도 진행했답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를 위해, 어른들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할지 들어봤습니다.
“성별, 인종, 체형… 세상에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야.”
Q. 브랜딩 관련 일을 하시다가 딱따구리를 창업하시게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른이 아닌, 어린이를 위한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A. 교실 내에서의 성혐오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어린 나이에 성별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죠. 당시 페미니즘이 화두였는데 저도 결혼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에 조카가 보던 그림책에도 고정관념이 들어있는게 보였어요. 함께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어린이 그림책 큐레이션 기준이 있다고 들었어요.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8가지 선정 기준이 있는데, 사실 모든 기준에 맞는 그림책은 찾기 힘들어요. 그래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분은 아이들이 직접 책을 되짚어보면서 독후활동을 할 수 있는 워크북에 넣고 있어요. 예를 들어, 아이가 3명 이상 나오면 반드시 체형이 다양한 아이들을 그리거나, 엄마나 아빠의 체형이나 자세를 전형적으로 그리지 않는거죠. 여러 인종의 아이들을 배치하고, 장애가 있는 친구도 함께 그립니다.
Q. 8가지 기준 중에서 특히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체형이 다 비슷해요. 뚱뚱한 아이가 별로 없죠. 양육자도 부모님으로만 그려지고 한부모가정이나 조부모가정, 다문화가정을 다루는 경우가 없어요. 친구로 등장해도 다 한국사람으로만 등장하더라고요.
Q. 책을 선정하시다가 구성원 간에 이견이 있을 때는 없나요? 아무래도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A. ‘현실을 반영하는 책을 계속 선정할 것인가’를 두고 생각이 달랐던 적이 있어요. 남자아이들이 핑크 리본을 좋아하면 다른 남자아이들이 ‘계집애’라고 놀리고, 다른 구성원의 지지로 극복하는 내용이 꼭 나오거든요. 처음에는 한국 사회의 남자 아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니까 선정했었어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을 놀릴때 사용하는 단어로, 여성성을 가져온다는 것을 배우는게 마음에 걸렸어요. 남자아이들이 말괄량이처럼 놀리고, 괴롭히는 것도 사실 학습하는 거거든요. 고민하다가 선정하지 않게 되었죠.
넓어지는 어린이들의 세상에 발맞춰, 우리도 나아갑니다.
Q. 어린이들이 실제로 이러한 성별 고정관념을 어떻게 체화하고 있나요? 곁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는 양육자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A. 아이들은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면서 성별 고정관념도 흡수해요. 가끔 어른들보다 강하게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남자는 절대 ~하면 안 돼’, ‘여자는 예쁜 거야, 멋있는 거 아니야’, ‘엄마는 나를 지켜줄 수 없어. 엄마는 여자니까.’와 같은 것들입니다. 어린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 누군가를 구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남자로만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거죠. 양육자들이 그런 부분을 많이 걱정하시고 있어서 책뿐만 아니라 워크북 가이드북으로 이런 말 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또 성별 고정관념 발언을 했을 때 상호작용하는 방법도 말씀드리고 있어요.
Q. 아이들에게 차별과 편견을 먼저 가르치기보다,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시려는 노력이 느껴져요. 실제로 어린이들이 딱따구리의 그림책을 보며, 기존 동화책과 다른 지점을 캐치하는 편인가요?
A. ‘남자는 피아노를 치면 안 된다’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많이 변했다는 후기를 전해주셨어요. 또 공주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왕자가 성에서 나를 구해주는 방식이 아니고 성을 탈출하는 놀이로 바뀌었대요.
Q. 그림책 이외에도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우따따TV를 제작하고 계신데요. 그림책에서 유튜브로, 채널 확장의 배경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넓히고 싶은 마음에 콘텐츠 제작도 하고 있어요. 어린이들이 그림책만 보는건 아니고 다양한 것들을 보기 때문이죠. 우따따TV의 경우에는 모티브가 있어요. 2020년, 질병관리본부에서 진행한 ‘어린이날 특집 정례브리핑’인데요. 어린이들에게 직접 질문을 받고, 또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답을 하는게 참 좋더라고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하죠.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질문에 좀처럼 설명을 안해줘요. 답하기 어려운건 몰라도 된다고 하죠. 그래서 인터넷을 찾다보면 자극적이고, 혐오가 담긴 답들을 먼저 보게 되는 구조예요. 그래서 아이들이 궁금해는 것들을 직접 질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전문가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우따따TV를 제작하고 있어요.
‘나도 권리가 있어요!’ 어린이가 직접 그린 권리 선언문 이야기
Q. 얼마전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가 직접 쓰는 어린이 권리선언문’ 캠페인을 진행하셨어요. 캠페인 기획 배경이 궁금해요.
A.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존중받고 즐겁게 지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날인데요. 즐겁게 지내는 것 말고, 존중받고 있는지 되새겨야 한다는 두번째 의미는 빠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린이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알고, 자신에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죠. 총 172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해주었고, 참여해준 어린이의 이름으로 아동보호시설에 그림책을 기부했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이 다양한 답변을 줬어요. ‘놀리지 말아라’, ‘키작다고 뭐라하지 말아라’, ‘우리는 지금 자라나는 중이다’ 어리다고 생각이 부족한 게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가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납작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어른들이 어떤 어린이였는지 반추해보는 테스트도 개발하셨어요. 이번에 출시하신 ‘만화 캐릭터로 보는 나의 어린시절’ 테스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 우리 모두가 어린이였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에 만들게 됐어요.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시절로 돌아가, 눈 앞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건지 고르면 돼요. 테스트 결과로 어떤 캐릭터와 닮은 어린이였는지, 또 자신과 닮은 어린이를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드리죠. 배포한지 3일 정도 됐는데 9,500명 정도 참여해주셨어요.
Q. 동시다발적으로 여러개의 프로젝트를 하시다보니, 체력적으로 힘들고 지치실 것 같아요. 일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같이 일하는 팀원들입니다. 우리가 해결하고 있는게 무엇인지 알고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또 함께 만드는 것들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Q. 다양한 국가기관과 협업하시고 있고, 또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계시다는 건데요. 체감하고 있는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2020년 1월에 비영리 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과 함께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어요. 문구와 의류 등 영·유아 상품이 성별에 따라 색깔이 구분되는 것은 아동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용이었죠.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전 인권위에서 ‘성차별 편견을 심화할 수 있다. 기업 관행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줬어요. 그런 대답을 줄지 몰랐거든요. ‘아, 조금씩 바뀌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할때마다 그런 말씀을 많이 드려요. ‘옳다고 생각하면 목소리를 더 많이 내야 한다’고요. 결정권자 입장에서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