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언론이 보도한 기부금단체들의 투명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기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기사보기]
이 기사는 국세청 공시자료를 기반으로 기부금단체들의 재무, 회계 현황에 대한 공개가 충분치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세청의 공시해야 할 의무를 가진 단체의 수가 3,991개(전체 기부금단체 2만9509개)로 14%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충실하게 재정자료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기부금단체들을 ‘효율성’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효율성의 기준은 ‘총 경비 대비 순수 사업비 비율’이다.
순수 사업비 비율이 높아야만 신뢰도 있는 단체?
기사에 따르면 1위를 차지한 기부금단체의 순수 사업비 비율은 96.95%다. 총 경비 1,347억원 중 1,306억을 실제 사업비로 지출했다는 것이다. 기부한 돈의 95%가 넘는 돈을 온전히 사업에만 쓰였다니 언뜻 생각하기에 ‘정말 믿을만한 단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취업포털사이트를 보면 이 단체의 총 사원규모는 1200명 가량이다. 그렇다면 사업비를 제외한 금액 47억원 가량을 연평균 인건비로 보고 직원수로 나눠보면 1인당 평균 341만원이 산출된다. 이 단체의 평균 임금수준은 꽤 높은 수준이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이렇게 통상적으로 알려져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의문이 생긴다.
순수 사업비, 즉 ‘고유목적사업비’는 법인의 정관에 명시된 고유한 사업의 목적에 부합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유목적사업비의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 단체가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라는 의미기도 하다. 이런 평가가 가능하려면 고유목적사업비의 재무,회계 처리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우리 나라에 등록된 공익법인들의 수는 3만여개에 달한다. 공익법인은 종교사업, 각종 법률에 정한 사업,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설립법)의 적용을 받는 사업, 지정기부금단체등이 운영하는 고유목적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법인들을 말한다. 그렇다보니 이 안에는 특별법에 근거해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이나 학교법인, 의료법인, 장학법인 등도 포함된다. 법인이 다양한 것처럼 적용받는 재무회계규칙 또한 다르다. 이런 이유로 ‘고유목적사업비에 대한 표기’도 단체마다 다른 것이 현실이다.
그 예로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에 따라 인건비의 일부를 고유목적사업비로 표기할 수 있도록 언급하고 있다. 이에 반해 다른 공익법인들에게는 구체적으로 제시된 규칙이 없다. 따라서 어떤 곳은 인건비의 일부를 고유목적사업비로 표기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운영비 항목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거기다 단체에 따라 국가의 위탁운영을 맡으며 인건비 일부를 보조받는 경우에는 이 항목을 별도의 운영비로 표기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서로 제각각 다른 기준으로 표기하여 국세청에 제출된 재무회계자료를 기반으로 기부금단체들의 효율성을 측정하고 순위를 매긴 셈이다. 더욱이 ‘순수 사업비’ 비중이 높은 단체가 효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시선은 여러 가지 위험성을 갖는다.
기부금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변화를 위한 투자인데, ‘당장 필요한 사람에게 그 금액이 전달되었는가’라는 단기적인 관점으로 매몰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단체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제도적 보완 절실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의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이 재무, 회계 운영의 투명성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단체 스스로 연차보고서 등을 통해 단체의 재정상태와 살림살이 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단체의 노력과 함께 관련 제도들의 보완도 절실하다.
영국의 경우 중앙정부를 통한 세부적인 공시가 45년 전부터 이뤄졌고, 미국의 경우 국세청(IRS)에 제공해야 하는 자료가 15페이지에 육박한다. 수입지출의 세부항목 뿐 아니라 연봉 1억이상 받는 직원수가 몇 명인지 평균군로시간, 이사회 회의록 작성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까지 기재해야 한다. 단지 수입, 지출의 단순한 재정의 흐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의 항목을 통해 단체의 살림살이와 운영방식, 건전성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 취합된 자료를 통해 이 단체들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민간기구들 또한 많다. 정부는 공익법인들에게 철저하고 표준화된 기준을 제시하고 감시는 민간에서 스스로 주도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공익법인들에 대한 법률적 정비와 행정절차 등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꾸준하게 비영리단체들이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기부금품 및 모집 등에 관한 법률’, ‘나눔기본법’ 등 단체들에게 얽혀 있는 법률과 주무부서에 대한 교통정리가 시급하다.
우리 사회 기부문화가 더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부처별 이해에 따른 법률 제·개정이나 관리와 통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부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와 관점으로 통합적 법체계와 공시 방안이 수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국세청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해 올해부터 상세한 내용들을 요구하는 양식으로 개선되었다고 한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그 첫걸음이 투명한 기부문화를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기부는 사회변화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
흥미로운 것은 외국의 경우에는 순수사업비, 즉 고유목적사업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오히려 당연히 지출되어야 할 행정과 운영에 있어서 지나치게 인색하여 다른 문제가 있는 곳으로 판단해 오히려 저평가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앞서 기사에서 언급한 순수 사업비 비중으로 단체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판가름하는 것의 오류는 두 번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단체의 제대로 된 운영과 투명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유목적사업비 외에 다른 곳의 지출과 운영상태도 고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재정,회계에 대한 평가와 함께 단체가 중점적으로 추구하는 활동과 사업의 내용성 또한 그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공익법인의 생명은 투명성이다. ‘기부자들의 단돈 만원에 대한 사용’에 대한 질문에도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이 수반돼야 한다. 법인들의 재정, 운영에 있어서의 자발적인 노력이 가능하려면 혼란스러운 법률의 정비, 쓸데 없는 행정절차에 대한 간소화가 절실하다.
이와 함께 기부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기부금이 ‘운영비는 결국 단체가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비용이다’라는 편견이다. 기부란 결국 사회변화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다. 그러기 위해선 법인에서 이런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사람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도 비용을 투자할 수 있다는 열린 관점과 신뢰가 필요하다.
글. 박준서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