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너머 어떤 분들이 일하고 계신지 만나보았습니다. 

장애인법연구회는 2021 변화의시나리오 지원사업으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에 따른 개인통보제도 해외 사례를 연구, 우리 사회에 적용하는 모의 개인통보제도를 통해 선택의정서 비준 이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업 너머 사람, 정다혜 활동가를 만나보았습니다.

작년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는 게 있대요. 달리기를 하면 기분이 좋고 상쾌해지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거죠. 변호사 시험을 치루고 나니 코로나가 찾아오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치면서 답답한 마음에 성북천을 달리기 시작했어요. 하루에 딱 30분 달리고 오면 마음이 나아지더라고요. 건강에도 도움이 되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느렸는데 어플 기록을 보면 점점 빨라진 게 보이니까 뿌듯하고요.. _정다혜 활동가

Q. 매일 시간을 정해서 뭔가를 한다는 건 그게 뭐가됐든 성실함이 느껴지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A. 꾸준히 뭔가 해 본적이 없는데 달리기라는 운동이 오히려 저에게 그런 마음을 주는 것 같아요. 아 진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다. 이렇게. 빨리 달릴 필요도 없어요. 옆 사람이랑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가 적절한 것 같아요. 너무너무 추천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녀로부터 어플 세 개를 추천받았다. 나이키 런 클럽, 스트라바, 가민 )

장애인법연구회 정다혜 변호사


Q. 공익변호사를 하시게 된 동기가 무엇일까요? 

A. 학부에서 정치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는데 재미있었어요. 내전, 평화구축에 관심이 있어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러 제네바 국제대학원에 진학했거든요. 막상 해보니 내전이 있는 지역이 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지역인데 그 곳의 역학관계, 역사, 사회나 문화적 맥락도 모르고 제3지역에서 온 사람이 개입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아서 크게 흥미롭지가 않더라고요.

졸업을 하고 인권을 중심으로 일을 하다 보니, 스페셜리스트가 되려면 법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돌아와 로스쿨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보다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공부였고 치열해서, 내 길이 맞나를 고민하던차에 장애인법연구회 임성택 대표님을 뵙게 된 거에요. 학생들과 밥도 먹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는데, 그 분의 인권감수성이나 가치관을 보면서 법률가로서 저렇게 깨어있을 수 있구나, 그럼 나도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2학년 여름방학에 두루에서 실무수습 인턴을 하면서 공익변호사분들을 뵈었는데 가슴이 뛰더라고요. 제 꿈이 그저 이상이 아니라, 그 길을 먼저 걷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 진짜 기뻤고, 로스쿨의 남은 절반을 달려나갈 추진력을 얻었어요. ‘앞으로 1년 반만 더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면 저런 모습으로 있을 수 있어, 얼른 되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요.

Q. ‘저런 모습’에 대한 이야기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A. 제네바에 있던 당시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북한 인권 이슈였어요. 한국에서도 증언하러 오신 분들이 계셨는데 당사자 8-10분을 시민단체 활동가 한 분이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을만큼, 우리나라의 인권외교는 취약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기자회견 구성, 통역, 변호사지원 등에 정부의 지원이 미미하다 보니 시민사회가 온전히 감당해야하는 몫인 거죠. 그래서 저도 종종 이동이나 통역을 돕기도 했는데 홀로 증언하시러 오신 할머니 한 분을 만났었거든요. 그 분은 남은 인생은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 추가로 얻은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어서 왔다고.

할머니의 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곁에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더라고요. 일부 인권 문제는 정치성향으로 나뉘어져서 얘기되기도 하는데, 그런 거 다 떠나서 사회적 약자와 함께 선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졸업을 했는데 마침 장애인법연구회에서 처음으로 상근자를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정말 거쳐거쳐 왔어요.

개인적으로는 연대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통하고 이끌어 가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요. 저희만 해도 장애인법연구회가 혼자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어요. 장애인탈시설에 대한 이슈를 갖고 갈 때도 장애인법연구회, 두루, 공감, 장애단체와 당사자분 모두가 함께 뭉쳐서 굴러가거든요.

Q. 애정이 있는 사례 이야기 듣고 싶어요.

A. 연구회가 참여하고 있는 공익기획소송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어요. 2018년부터 시작된 ‘1층이 있는 삶’인데요, 우리나라는 규모가 300m2가 넘어야만 장애인들의 접근 편의시설을 구비해야 할 의무가 생겨요. 90평 규모여야 한다는건데, 그 정도 되는 편의점은 거의 없거든요. 크기가 아니더라도 사업주의 규모, 종업원의 수.. 다양하게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고 이미 해외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는데 우리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해요.

‘모두의 영화관’은 더 오래됐죠. 청각장애인의 경우 자막 없이 상영되는 우리나라 영화는 관람하기가 어려워요. 시각장애인에게는 별도의 화면해설이 필요하고요.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영화관이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 소송이에요. 어플을 받아서 이어폰을 끼거나 스마트글라스를 끼고 휴대폰으로 자막을 동기화를 시키는 방식인데 그렇게 고도의 기술이 아니어서, 외국에는 이미 상용화 되어 있거든요. 심지어 일본은 우리가 소송을 제기하던 시점에 우리보다 뒤쳐진 상태였는데, 지금은 훨씬 앞서 갔어요.

공익변호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시야가 좁아질까봐 영역을 한정짓지 않고 있다가, 실무수습을 하면서 장애 영역에 애정이 생겼어요. 장애문제에서 촉발된 움직임이 다른 영역으로도 뻗어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장애인 탈시설이 아동의 탈시설, 장애인 접근성 개선이 노인의 접근성 개선 이런식으로요.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장애인을 위한 환경이 좋아지면 이 혜택은 모두가 누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두 소송 모두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는 게 되게 답답해요. 실무 수습때 들었던 1층이 있는 삶을, 제가 변호사가 될 때까지 하고 있게 될 줄 몰랐어요 (웃음)

Q. 선택의정서* 비준도 10년이 넘도록 길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슈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다보면 현안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선택의정서 비준이 되지 않은 상황에 그 이후를 준비하는 사업이 인상적이에요.
※  선택의정서 :
장애인이 개인의 권리가 침해 되었을 때 국내에서 구제절차가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이를 청구할 수 있는 개인통보 제도이다. 즉, 권리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의 인권보호와 장애인권리협약의 실효적인 이행을 위한 법적 보호 장치.

A. 장애인법연구회 설립멤버이기도 한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원님께서 제안 해 주셨어요. 비준 이후를 생각하지 않으면 비준이 되어도 이도저도 안된다고 적극적으로 얘기 해주셔서 준비하게 된 거에요. 단체에 선견지명이 있는 선배님들이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아요.

Q. 개인통보제도의 활용 말고도 선택의정서 비준과 관련하여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A. 비준과 관련한 건 단체에서는 이 사업 정도이지만, 비준을 촉구하는 연대의 자리가 있다면 저희도 당연히 결합을 할거에요(*지난 3월 31일에는 국회에서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도 통과가 되었다. (자세히 보기) 최근에 UNESCAP(유엔 아시아 태평양 경제 사회 위원회)에서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 호주 해서 6개 국에 CRPD(장애인권리협약) 이후 상황 공유를 위한 자료를 모으고 있어요. 한국의 케이스는 장애인법연구회 임성택 대표님이 담당하고 이주언 사무국장님, 이수연 변호사님과 제가 서포트할 예정입니다. CRPD 가입 이후 우리나라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훑게 될 거라 의미가 있을 거에요.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 해 볼 수도 있고요.

Q. 궁극적으로 선생님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에요? 유토피아랄까,

A. 내가 남을 대할 때도 당연히 존중이 있어야겠지만 동시에 나도 존중받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왔어요. 지혜로운 조언을 주고, 어려울 때 응원과 위로를 주었던 친구, 선생님, 후배.. 그 분들로부터 나무에서 편히 쉬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나무같은 존재가 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 많이 해요. 대단하고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겪은 것들을 바탕으로 나처럼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이야기 나누고 쉬어가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되면 좋겠다

이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준 순간이 많을 것 같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본인은 아직 멀었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번 눈을 반짝이면서 본인은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좋은 기운이 이미 공간에 가득하다. 간혹은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어도 ‘10년 뒤, 20년 뒤에 나도 저런 모습이고 싶다’를 기대하게 하는 좋은 선배들과 돕는 동료들이 곁에 있는 게 정말 큰 행운이고 복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의, 온전히 신뢰하고 신뢰받는 사람의 건강한 기운. 거쳐거쳐 일궈 이룬 지금의 꿈이 이후에 또 어떤 상황을 거쳐 갈지는 모르지만, 늘 누군가의 곁에서 마음을 주고 받고 있을거라는 걸, 그녀가 말한 유토피아에 이미 그녀는 살고 있다는 걸 알겠다.

장애인법연구회는 장애인 인권신장과 권리옹호를 위하여 공익소송, 입법운동 등의 활동을 하는 법조인,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의 모임입니다
장애인법연구회 http://kdla.kr/


글,  사진|박혜윤
전(前) 변화의시나리오 담당자 /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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