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너머에는 어떤 분들이 일하고 계실까요? ‘지구숨숨’은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환경운동을 하는 개인 활동가(카페사장, 제로웨이스트 활동가 등등), 단체를 엮는 작업’ 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 너머의 사람. 박시호 활동가를 만나보았습니다. |
저는 고래를 만나 그 엄청난 생명의 크기에 압도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번 다이빙을 했는데 아직도 한 번을 못 봤어요. 책을 찾아보거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그들의 생태를 공부하는 것이 아쉽지만 현재는 전부죠. 여전히 고래는 나에게 이만큼이나 경외로운 대상이에요. 그런데, 그 엄청난 고래가 고작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고 죽어서 떠내려온다고? 와, 정말 뭔가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죠. 내 방식으로.
그렇게 쓰인 라디오 환경극 ‘요나 이야기’는 두 명의 아이가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더미와 고래의 영혼 ‘요나’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지구숨숨의 시작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개를 듣고 싶어요.
지구숨숨의 힐러(healer)이자 읽는 사람- 리더(reader) 박시호 입니다. 명함을 처음 받아든 분들이 그러세요 “아 시호씨 이거 오타났어요 리더는 L 이잖아요”.. 저 그 정도는 알고 있는데(웃음). 상황을 읽고 사람을 읽는 걸 좋아해요. ‘힐러’라는 건 꽤 거창한 느낌이지만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을 담았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환경과 관련한 활동도 지구를 치유하고 싶은 마음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감히 자연을 치유한다니.. 조금 거창하지만 작게나마 어떠한 역할을 찬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해양에 관심이 많으셨나봐요. 다이빙이 취미이시기도 하고요.
맞아요. 이집트 홍해에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땄는데 환경에 대한 교육을 꽤 철저하게 받았어요. 바닷속에 있는 어떤 것도 잡거나 망가뜨리면 안된다고요. 당시 제가 다이빙에 푹 빠져서 틈만 나면 바다로 달려갔는데, 할 때마다 내 눈에 들어오는 바다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작년에 어떤 곳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다음 해에 또 왔는데 보이는 물살이들의 종류가 줄어있고..
처음에는 시기를 잘 못 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해에 또 왔는데 더 줄어있고, 형형색색이던 것들이 녹조들에 파묻혀 칙칙해지면서 부유물이 많아지고, 가시거리가 점점 짧아지는 게 느껴지는 거에요.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너무 단순하게 ‘아니 고작 이런 풍경을 보러 내가 시간과 공을 들였나’ 싶었어요.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갑자기 훅하고 느껴지더라고요. 이거 정말 심각하구나.
그때 처음으로, 예술가로서 뭔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나의 안식처인 바다에서의 활동과 내가 업으로 하는 예술활동을 이어 볼 생각은 한번도 못 했는데, 고요한 바닷속을 유영하며 내가 영감과 위로를 받았으니 그동안 받아오기만 했던 내가 뭔가는 해야겠다. 쓰레기를 줍는다거나 직접적 활동을 할 수도 있지만 예술가는 결국 예술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술로 이야기한다는 건, 요나 이야기 같은 환경극을 만드는 것 같은 것인가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거대 기업이 바뀌지 않으면 페트병이며 플라스틱은 계속 나오는건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청와대 앞에서 피켓 드는 게 더 직접적인 거 아닌가 하는. 예술가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있었는데, 다들 비슷한 고민을 갖고 혼란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그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활동가들이 행동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면, 예술이 하는 일은 사유하게 하는 거라고. 그 말이 참 와닿고 위로가 되더라고요. ‘생각하고 되뇌게 만드는 일’이 우리가 예술로 말을 건네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해요. 일하다 비슷한 생각으로 현타가 올 때마다 우리는 역할이 다르지, 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취미가 활동의 동력이 되어서 본래 하시던 예술작업의 방향도 환경분야로 집중하게 되신 거잖아요. 추진력과 에너지가 엄청나신 것 같아요.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어요. 아홉살인가 열살 때인가, YMCA에서 하는 환경교실에 참여했어요. 강물에 떠내려오는 쓰레기 사진을 찍어 한국일보에 보냈는데 그게 기고된 거에요. <어린이 기자가 찍은 환경고발 사진> 이렇게. 고발까지는 아니었는데(웃음). 여하튼 그 때, 내가 생각하는 걸 행동으로 옮겼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고, 영향을 받는구나에 대해 처음으로 자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돈을 많이 버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이 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명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하게, 엄청 많이 벌어서 엄청 많이 기부하고 싶거든요. 번 돈의 90%를 지구를 다시 아름답고 숨쉴 수 있게 만드는 여러 곳에 쓰는 게 제 모토이고 목표입니다. 요새 인터뷰마다 계속 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자꾸 말을 해야 책임을 질 것 같아서 이 목표 때문에 없어 지던 투지가 새롭게 또 불타기도 해요 하하. 주변에서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5%기부도 힘들다’ 그러는데, 90% 기부하고도 10%로 1억 남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빌게이츠도 했잖아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앓는 소리 하지 않으면서 성공할 것인가. 요즘 저의 화두입니다.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을 통해서 진행하는 사업은 네트워크 사업이잖아요. 실제로 꾸려진 지구숨숨마을이 있고, 선생님이 이장님이시기도 하고요. 네트워킹이 어렵지는 않으세요?
네트워킹이 초기 설계는 정말 힘들지만 재미있고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네트워킹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친구가 되는 장을 만드는 게 좋아요.
몇 해 전에 동료와 둘이서, 예술가,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는, 혹은 예술을 좋아하는 관객들을 모아 ‘월간 난장’이라는 네트워크 파티를 기획/진행 했었어요. ‘난장’이라는 이름처럼 정해진 포맷이 없이 자유롭고 유연하게 진행되는 파티였지만, 실제로는 참여자들의 앉는 자리까지 모두 정해져 있을 만큼 정교하게 설계했어요. 혼자 오는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게 한 명 한 명 긴밀하고 친근하게 통화하면서 미리 연결고리도 만들어 두고요. 신청서를 통해서 미리 개개인의 관심사를 파악해서 카테고리를 구분하고, 현장에서 비슷한 키워드의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했어요. 얘깃거리가 많을 수 밖에 없죠. 충만한 자리였고 성공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뭉클한, 애정이 있는 장면도 있어요. 드라마테라피를 5-6년 정도 했어요. 중학생 친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적이 있는데, 뭐랄까, 표현하기가 복잡하지만 아무튼 다들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는 친구들이었지요. 제가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끝난 후에도 가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그림을 그리거나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걸 그냥 놔뒀거든요. 약간의 놀 거리나 재료들만 준비해두고 너희끼리 놀아, 나는 내 할 일 할께. 하는 식이었는데, 그 시간을 아이들이 좋아했어요.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다가 자기들끼리 이런 얘기를 하는거죠. “너는 언제부터 왕따였어?“ 라고. 본인들도 느낌이 있는거죠. 저와의 수업 중에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얘기나, 친구들이 본인을 싫어한다 이런 얘기를 서로 나누었었으니까. 그랬더니 질문 받은 애가 ”나?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어, 좀 오래됐네“ ”힘들겠다, 그럼 나한테 문자해“ 라면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거예요. 저와 함께하는 수업시간 중에 눈물을 흘리고, 눈에 띄게 성격이 활발해지고 이런 것보다도 저는 아이들이 저 정도로 서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와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게 정말 기뻤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요.
본능적으로 네트워크를 잘하시는 분 같아요.
그 장면에서 제가 한 건 자리를 깔아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저런 이야기를 내가 옆에 있는데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다 싶어서, 그때 울컥하더라고요. 내 수업보다 값진 시간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의 명함에 적힌 리더라는 직책이 얼마나 그를 잘 설명하는 말인지 실감했다.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서로 지지하고 공감받을 수 있도록 상황과 사람을 읽고 적절한 판을 깔 수 있는 사람. 그가 우리 사회를 위해 깔아 준 ‘지구숨숨’이라는 판 안에서, 어쩌면 우리도 더 나은 지구를 위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환경친화적이려면 주어진 편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고단한 의무감을 넘어, 굳이 거창한 대의가 있지 않아도. 왁자지껄 즐겁고 유쾌하게. 낭만적으로!
지구숨숨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배워가고, 또 어떤 방법으로 알릴 지 고민하는 배우, 퍼포머, 작가, 연출가, 기획자, 미술작가 등의 예술가로 이루어진 콜렉티브 그룹입니다. https://www.facebook.com/jigusumsum
내가 딛고 있는 지구, 이 아름다운 별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도록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지구별 숨숨마을 https://cafe.naver.com/jigusumsum/
글, 사진|박혜윤
전(前) 변화의시나리오 담당자 /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
옥옥
멋져요 reader님!^^ 지구, 환경, 사람.. 계속해서 많은걸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