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각 2011년 5월 25일 오전 6시 45분
이른 아침 신라호텔 초입은 검정색 세단으로 가득하다. 뭔가 무슨 일이 벌어질 듯 유독 신라호텔 주변만 짙은 양복을 걸친 신사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고 운전기사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차된 검정색 차량을 연신 닦고 있다. 호텔 로비의 직원들은 긴장된 모습으로 무전기로 00도착, 00도착을 연발하며 이제 막 도착한 검정세단의 문을 열며 분주하게 손님들을 맞고 있다.
오늘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주관하는 ‘SERI CEO’ 조찬세미나가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는 날이다. 이런 모습은 매월 2회 신라호텔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 중 하나다. 사실 내가 ‘SERI CEO’에 대해 안지는 그리 얼마되지 않았다. 재단의 고액기부자 중 한분께서 기금미팅 중 회원으로 매월 참석하시는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 CEO’에 대해 처음 언급하셨고 감사하게도 재단의 고액기부 활성화를 위해 이번 세미나에 함께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이 때문에 재단에서 고액기부자를 담당하고 있는 나에게 고액기부자를 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최고경영자를 위한 상상력 발전소’ 라 불리는 ‘SERI CEO’는 연100만원의 회비를 내는 고액 유료회원제로 유명하다. 하지만 짧은 동영상 강의가 2만개를 넘고, 강의를 들으려는 회원수가 1만명이 넘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원래 ‘SERI CEO’는 삼성그룹 임원 1,000명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는데 2002년 9월 외부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게 되어 지금은 회원이 1만명을 훨씬 뛰어 넘게 되었다고 한다. ‘경영족집게’, ‘SERI CEO 베스트셀러’ 등의 말은 그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반증하는 말이라 하겠다.
800명의 CEO가 모이는곳
어쨌든 그 유명한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CEO가 아닌 재단을 사랑하는 주인된 마음으로…양복군단을 뚫고 영빈관을 지나 최근 한복사건으로 본의 아니게 유명해져버린 본관 2층 다이너스티 홀에 도착했다. 홀 앞에는 방문한 CEO에게 스텝들이 일일히 명찰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여 홀 앞에서 이번 세미나의 주선자이신 최상무님을 기다리며 참석자들의 면면을 명찰을 통해 관찰하니 대기업인 S사, G사, H사 등의 CEO와 상무, 전무급 임원에서 약간은 생소한 중소기업의 대표까지 다양한 참여자들이 입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참석자들만 보면 사회에서 잘나가는 임원들인데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배움의 마음으로 오시는 것을 보면 대단하단 생각과 함께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은 최대 9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이다. 그런데 대충 봐도 거의 만석이다. 시작 시간인 오전 7시도 안됬는데 벌써 엄청난 인파로 북적된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아침부터 일찍 오게 만들었는지 더욱 궁금해지는 풍경이다. 한 테이블 당 10명이 앉아 대략 테이블이 80개이니 최대800명 정도가 참석하는 듯하다. 그런데 테이블에 빈자리가 별로 없는 걸보니 세미나 시작할 때 쯤엔 거의 800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원 800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미나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앉자마자 같은 테이블에 동석한 임원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명함을 꺼내 서로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뭔가 항상 그래왔듯이 익숙하게 간단한 인사와 명함을 주고 받으며 간단한 대화가 오고갔다. 난 누가 봐도 처음 왔다는 식의 표정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아름다운재단’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단에 대해 너무나도 잘알고 계셔서 조금 놀라웠다. 내 옆자리에 계신 금융지주회사에 근무하시는 상무님은 재단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셨다고 했다. 혹시 누가 ‘너는 왜 왔니?’ 라고 물어볼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짧게 재단 소개도 드렸다. 긴장한 마음이 조금 풀릴 때 쯤 조찬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찬메뉴는 전복죽과 절인 생선, 후식으로 포도와 멜론이 나왔다. 메뉴 하나가 빠졌나 싶을 정도로 아침은 이렇게 조촐하게 마무리 되었다.
강의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세미나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앉은 자리에서 무대가 너무 멀어 홀 옆면에 재연되는 모니터로 의자를 틀어 강연에 임한다. 잠시 후 사회자가 등장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 업하는 의미에서 5월 ‘가정의달’을 맞아 가수 싸이의 ‘아버지’라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상영되었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애니메이션인데 ‘싸이’라는 가수가 이 곳 분위기와 어울리지는 않지만 스토리는 생각보다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임원들 대부분이 아버지 나이 또래인걸 감안하면 꽤 괜찮은 도입부라고 생각된다. 뮤직비디오가 끝나고 강연자가 등장했다.
‘명품 강의’의 시작
오늘의 강연자는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의 권순우 상무님이었다. 세미나 자료집 뒷면 조찬세미나 히스토리를 보면 권순우 상무님이 2009년부터 4회째 경제관련 강의를 이끌고 계셨는데 까다로운 CEO들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경제 강의를 이끌어 오신걸 보면 보통 분은 아니실듯하다. 참고로 권순우 상무님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오늘 주제는 ‘금융위기 이후 경제환경 변화와 한국경제 전망’이다. 사실 내가 듣기에 어려운 내용이라 교양차원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로 하여 필기공책을 내려놓고 귀만 기울였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신흥경제국가(중국,인도)가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절대 강자인 미국과 기존 선진국들은 저성장을 만회하기 위해 신흥시장을 쟁탈하기 위한 총성없는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 간 자원전쟁은 심화되고 경제 판국이 재편될 것이며, 우리나라에는 수출성장세 둔화, 중국에 대한 높은 수출의존도로 외부충격에 취약해지고 내수시장 발달이 미흡할 거란 영향을 준다. 종합해서 결과만보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작년 6.2%에 비해 모자른 4.3%로 예측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어려운 내용임에는 분명하지만 CEO입장에서는 향후 좋은 판단기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린다
이렇게 1시간이 지나고 세미나가 종료되었다. 조찬세미나의 슬로건이 ‘우리는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린다.’ 라고 하던데 마법에 걸린 듯 마음이 빠져 듣고 있으니 금방 세미나가 끝나버렸다. 소위 필요없는 군더더기는 모두 빼버린 깔끔한 강연이어서 듣기 편했던 것 같았다.
끝으로 세미나를 참석하며 느낀 점을 정리해보면 ‘SERI CEO’는 형식적인 상류층의 사교모임이 아닌 듯하다. 사교도 있지만 지극히 부수적인 것이고 이 모임에 그 수많은 CEO들이 이른 아침 일찍 참석하는 것은 아마 배움을 통한 변화에 있지 않나 싶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교육 컨텐츠 판매 매출이 엄청나다고 하니 CEO들이 얼마나 배움을 갈구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SERI CEO’는 배움을 넘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개인관계망을 형성하는 프리미엄 모임이다. CEO입장에서 ‘이 얼마나 구미당기고 설레는 장소일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오늘 세미나는 NGO실무자의 입장에서 잠재적인 기부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 읽을 수 있는 자리였다. 돈을 벌기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느낄 수 있었으니 앞으로 모금을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월례회의’라는 곳에도 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기회가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