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은 공익활동을 하고자 하는 시민모임, 풀뿌리단체,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합니다. 특히 성패를 넘어 시범적이고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지원함으로써 공익활동의 다양성 확대를 꾀합니다.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 너머에는 어떤 분들이 일하고 계실까요? ‘토닥토닥그림책 작은도서관’은 2021 변화의시나리오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그림책으로 토닥토닥’ 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장상인분들에게 그림책 꾸러미를 전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입니다. 사업 너머의 사람. 김동헌 활동가를 만나보았습니다. |
본래 책을 좋아하시나요? 어떻게 책을 주제로 활동까지 하게 되셨어요?
본래는 쓰고 싶어 했던 사람이에요. 등단을 준비하다가 어느 시점에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아하는 책을 늘 곁에 두고 사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도서관 사서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을 도서관이고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책에만 집중할 수 없는 순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오늘처럼 강의를 다니시기도 하고요.
강의하는 일을 싫어하지 않아요. 제가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아하는데, 외부강의를 다니는 게 또 저랑 맞는 지점이 있거든요. 심지어 강의 내용이 주로 우리 도서관의 사례를 공유하고 연결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는 일이고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더이상 좋아하지 않게 될까봐 일부러 취미로 남겨두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어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저는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도서관 외의 일도 많죠. 사업이 진행되면 서류 작업도 생기고요. 그치만 제가 좀 단순한 사람이라 뭘 하든 고민을 엄청 많이 하거나 길게 가져가지 않는 편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저를 만났던 청소년들은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에 호의를 갖게 된 친구들이 많아요. 실제로 사서가 되겠다고 진학한 친구들도 꽤 되고요.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내 일을 대하는 태도나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나보다, 내 만족이 드러나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해요.
선생님께 좋은 책은 어떤 책인가요? 애정이 있는 그림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고 무장해제 되는, 읽고 난 다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같은 세상인데도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을 좋아해요. 요즘 관심이 가는 건 고정순 작가의 책이에요. 뭐랄까, 우선 마음을 짠하게 하는 그런 주인공들이 나오고요, 그 주인공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자연들이 주인공을 좀 더 따뜻하고 풍성하게 해요.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책과 현실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들도 있잖아요. 고정순 작가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시장에서 혹은 동네에서 늘 만나는 사람 같고, 어딘가 부족하기도, 어떤 슬픔도 갖고 있는 그럼 사람. 책 안에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이나 기쁨이 녹아져 있어서 공감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요즘 좀 꽂혀있어요.
도서관에 비치되는 책들은 어떤 기준을 갖고 선정이 되나요?
활동가들이 논의해서 정해요. 의도를 갖고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가르면서 가르치려고 하는 책은 제외하는 편이고요,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을 주로 선정하려고 해요.
다양성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예전 인터뷰 기사에서 본래 다문화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보았거든요. 해외에 다녀오실 때마다 그 나라의 원서 그림책을 사 오신다는 이야기도요. 토닥토닥 도서관도 그 정체성을 갖고 있나요?
우리 지역에 외국인 노동자분이 많이 살고 계세요. 도서관을 만들면서도, 주말만큼은(주중에는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런 분들이 쉽게 와서 마음 편히 놀다 가는 그런 도서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뭣보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시장 안에 있는 도서관 특성상 다양성을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노력들을 통해서 실제로 경험한 어떤 변화들이 있나요?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딱히 이해하거나 해소할 자리가 없어서 선입견을 갖고 있던 부분에 대해 정리가 되는 것도 있어요. 일례로 악세사리 가게 사장님은 청소년 아이들은 잠재적 범죄자, 속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CCTV도 꼼꼼하게 보고 하셨대요. 화장품 가게 사장님은, 청소년들이 물건은 매장에서 보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게 얄밉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청소년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분도 있거든요. ‘그래도 염치는 있어서 작은 거라도 하나씩은 사가지 않냐’ 라는 얘기를 듣고 보면 실제로 그런거죠. 비싼 건 온라인에서 사는 게 여전히 얄미워도, 오늘 걔는 좀 귀엽더라, 이런 식으로 조금씩 시선의 변화도 생기고요. 실제로 ‘내가 너무 비뚤게만 본 것 같다’고 이야기 하세요. 역으로, 시선이 달라지면 청소년들도 느껴요. 우리를 대하는 게 좀 달라졌다는 걸.
모임을 통한 변화는 확실히 있어요. 시장의 특성상 대부분 본인 점포를 벗어나지 않아서, 나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인 경우도 많은데, 책을 통해 대화의 새로운 주제를 찾고 다른 시각들을 접할 계기들이 생겨나는 거죠. 서로 교류하지 않던 사람들끼리 만나기도 하고요. 일례로 같은 업종의 사람들끼리는 내심 라이벌처럼 여겨서 잘 만나지 않아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면 그 업종에서만 갖는 고충들도 나누고 하면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직 본인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는 단계는 아니지만 굉장히 작은 틈들이 계속 생겨나요. 그런 부분들이 쌓이고 이어지면서 변화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죠. 책 자체가 가져온 변화라기보다 책을 통해 물꼬를 튼다는 게 적절한 것 같아요.
그림책 꾸러미 사업을 통해서, 혹은 도서관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변화를 담은 그림책이 있다면 소개 받고 싶어요.
‘소영이네 생선가게’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서울 망원시장에서 상인의 자녀로 자라온 어린 소영이의 시선으로 생선가게의 일상을 담은 책인데, 제가 시장 상인들에게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기 전에 그 책을 읽으면서, 뭐랄까.. 상인들은, 상인의 자녀들은 이런 마음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상인분들도 그 책을 보면서 공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어떤 거창한 이상보다, 서로(혹은 스스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같아요.
본래는 정해진 책이 담긴 꾸러미를 돌려가며 읽는 기획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가게나 사장님 개인의 성향이나,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한 책을 골라서 드리게 되더라고요. 가끔 읽는 거니까 이왕이면 더 꼭 맞는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게 많은 분들이 그냥 먹고 사는 방편으로 어쩌다 시작하게 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책을 보면서, 내가 수단으로 생각했던 일이 이런 의미가 있고, 이렇게 그려지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애정을 갖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제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반찬가게 하시는 상인 분이 있어요. 정말 정성껏 만드시고, 활동가들이 도서관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 걸 아시고는 반찬도 챙겨주시거든요. 작년에, 감사한 마음에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그 분이 하는 일과 비슷한,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책을 일부러 골라서 가져다 드리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읽지도 않는 책 가져온다고 불편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오래 두고 읽으셔도 괜찮다고 그냥 두고 왔는데, 이후에 찾아가니까 그 분이 책을 읽으면서 울컥하는 순간이 있으셨다면서, 마음 써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사실은 저 도서관에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책을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주 오는 사람만 봤지 도서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어릴 때부터 집안 일을 도왔는데, 공부하고 책 읽는 걸 싫어하셨대요. 시간 뺏긴다고. 반찬가게 사장님이 젊으신 분이라 그 이야기가 더 놀랍고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세대와 상관없이 이런 환경에 있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었지요.
요청하지 않아도 찾아가서 책을 전달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게 꾸러미 사업의 시작이기도 해요. 책에 있어서만큼은 조금 더 평등하면 좋겠는 마음입니다.
그는 요즘 새로운 결심을 했다. 고기는 한 달에 한 번만 먹겠다는 결심. 도서관에서 조천호 박사의 <파란 하늘 빨간 지구>를 읽고 토론하면서 함께 관련한 영상을 보았는데, 그 때 기후위기의 위험을 실감했다. 지구가 정말 뜨겁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얼마 전에는 아이들과 ‘도서관에서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했는데, 아이들이 그에게 ‘선생님은 그럼 뭘 실천할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플라스틱을 줄이고, 장을 보러갈 때 미리 용기를 챙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고 있다. 책이 가진 힘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적어도 그의 삶에서는 이미 책의 힘이 담겨 있기에. 책이 튼 물꼬는 그의 일상에도 흐르고 있었다.
여주한글시장, 청소년 문화아지트, 어르신 장날 들르시는 곳
토닥토닥 그림책 도서관 https://www.facebook.com/library.todaktodak/about
글, 사진|박혜윤
전(前) 변화의시나리오 담당자 / 귀 기울여 듣고 애정을 담아 질문하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