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소리를 내고 나오려고 하면 어떻게 해? 사람들한테 들킬 뻔 했잖아!
여러분의 마음 속에도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나요? 열여덟 어른 안연주 캠페이너는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용기 내어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주했던 경험을 따뜻한 글로 풀어내어 동화 <나의 어린, 고래에게>를 집필했습니다. 동화를 통해 안연주 캠페이너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안연주 캠페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사실이 숨겨야 하는 열쇠 목걸이 같았어요.”
Q.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집 열쇠를 자주 잃어버렸어요.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고 다니곤 했는데 어느 날 학교 담임 선생님이 “집에 혼자 있다는 걸 알면 위험할 수 있으니 목걸이를 옷 안으로 집어넣어 보이지 않게 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사실이 꼭 목에 열쇠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열여덟 어른 캠페인 제안을 받았을 때, 목걸이를 숨기려는 심정으로 캠페이너를 거절했었습니다. 거절을 하고 난 뒤에도 재단에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셨어요. 그래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꽤 가졌던 것 같아요. 만약에 캠페인을 한다고 했을 때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이였거든요. 그런데 이미 시즌 1에서 캠페인을 했던 캠페이너들을 보면서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큰 일 이랄 게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선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보다는 나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일이 나를 만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마주해보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두려웠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한다는 것에 용기를 얻었고, 생각보다 우리들의 울타리는 튼튼했고, 세상은 그리 제게 큰 파도를 불러오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Q. 왜 글을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문맹이었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거의 집에 계시는 시간이 없었어요. 어릴 때 TV에서 부모님이 어린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장면을 봤어요. 그게 너무 부러워서 글을 잘 읽지도 못하는 어머니에게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떼를 쓰다가 끝내 짜증을 부렸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떼를 쓰고 짜증을 내는 것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다르게 먹기 시작했어요. ‘어머니에게 글을 알려줘야겠다. 나한테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게.’
나중이 되어서 어머니는 여전히 글을 읽을 줄 모르셨지만 저는 받아쓰기를 정말 잘하는 초등학생이 되어있었어요. 공부를 잘하지는 못 했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 글을 배웠던 것 같아요. 점점 자라면서 생활이 어려워지고, 집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인터넷도 되지 않는 컴퓨터에 메모장을 켜서 하루 종일 글을 썼어요. 어떤 글을 썼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주인공은 항상 저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머니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기도문을 쓰기도 했고, 털어놓을 곳 없는 마음을 적는 일기장을 쓰기도 했고요. 심심해서, 심란해서, 간절해서 썼던 글들이 제게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안연주 캠페이너의 마음을 담은 첫 번째 동화 <나의 어린, 고래에게>
Q. 여러 장르 중에 동화를 만들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어릴 때 읽었던 글이 자라면서 종종 생각나더라고요. 그때는 몰랐던 의미들도 나중에는 삶에서 해석이 되고, 또 그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얻고요. 어린 시절에 해결되지 않은 마음들, 안아주지 못한 마음들은 몸이 자라도 그대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어린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어주고, 몸과 함께 자라면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동화를 첫 작품으로 쓰고 싶었어요.
Q. 책을 읽다 보니 설정에 대해 궁금하더라고요. 배경을 마음 바다로, 주 등장인물을 ‘고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쿵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날 따라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참고,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하루였거든요. 마음이 울컥울컥 하고 무거워서 걷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어요. 저는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기 보다는 슬픈 기분이 들어요. 짠 맛이 나는 것은 눈물 같고, 그 슬픔들이 다 모인 곳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바다의 무게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대충은 알 것 같은 기분으로, 마음에는 그동안 꾹꾹 참느라 쏟아내지 못한 눈물들이 모인 바다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마음 바다라는 배경을 잡게 되었어요. 바닷가를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로만 채우려는 것은 ‘나’보다는 ‘남’들에게 맞춰진 제 모습이에요. 마음 속에 몸집만 커지고 자라지 못한 고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 바다에 나와서 내 스스로를 꾸짖고 아프게 하는 슬픈 하루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하루들을 보내는 것이 벅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가 쿵쿵 내리치는 게 고래처럼 커다랗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 동안 꼭꼭 숨기느라 나 자신도 돌보지 못한 마음, 건네지 못하는 고백을 고래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Q. 연주 캠페이너가 생각하는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은 어떤 부분인가요?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하기로 했어.
그동안 마음 바다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두었던
내 오랜 친구에 대해서 말이야.
“있지…… 내 고래의 이름은 고백. 고백이야.”
이 부분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제 고백을 마주하고 사람들에게 건넬 수 있게 된 지금 같아서요. 지금은 딱 그 정도를 해낸 것 같아요. 그리고 제 고백과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앞으로 할 일인 것 같습니다.
Q. 글 쓰면서 가장 풀리지 않았던 순간 또는 장면이 있었나요?
다른 부분들도 너무 어려워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풀리지 않았던 것은 마지막 장면인 것 같아요.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지 정리해서 좋은 문장으로 담아내고 싶은데,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너무 많다 보니 방향이 흐려지더라고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작가님과 편집자님이 함께해주신 덕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절하게 잘 담아내서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동화 <나의 어린, 고래에게>가 동화책으로, 오디오북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Q. 안연주 캠페이너의 동화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기억에 남거나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모든 과정들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 시작 했을 때부터 캠페이너 모두가 첫 유튜브 촬영을 했을 때, 그리고 작가님께 동화 자문을 받을 때, 책이 나오고 감사 편지를 쓸 때, 프로젝트가 열리고 펀딩이 마무리 되었을 때, 모든 순간 순간들이 소중하게 남았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개인 유튜브 촬영을 할 때 였어요. 제 이야기를 잘 건네지 못하던 제가 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저도 제 삶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리고 오디오 북 녹음을 할 때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소녀시대 써니님이 함께해주신다는 말을 듣고 만나 뵙기 전 날부터 긴장을 많이 했거든요. 원래 긴장을 해도 잘 티가 안 나는데 그 날은 그게 안될 정도로 너무 긴장 되더라고요. 써니님이 녹음을 시작하셨을 때는 누리와 고백이가 정말 딱 맞는 목소리를 찾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써니의 따스한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북 들으러가기(클릭)
Q.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직접 전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다면 부모님께 가장 먼저 선물하고 싶습니다. 동화를 쓰면서 살아온 날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는 과정을 조금씩 거쳤어요. 그러다 보니 남겨진 사람의 마음만 가지고 살던 제가, 떠나던 사람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께, 일이 바빠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던 아버지께 다정히 제 글을 읽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외에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룹홈 선생님들, 소중한 친구들, 가족들이요. 동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고백이 곁을 채워주고 반갑게 손 흔들어 준 존재들이거든요. 그리고 자립을 앞둔 사람들에게,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또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선물 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프로젝트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크게 느껴졌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게 달라진 점인 것 같아요. 제가 보호종료아동임을 밝히는 데에 있어서 걱정 하던 것들이 사라졌어요. 가장 달라진 건 그 동안은 ‘난 아무렇지 않아.’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었는데, 이제는 제 삶을 돌아보면서 돌보지 못한 마음들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생각보다 괜찮지 않은 시절이 많았고, 그런 시절은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아픈 채로 남아있더라고요. 남보다 나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나의 어린, 고래에게>를 만났습니다.
Q.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블로그에도 간간히 펀딩 후기들이 올라오더라고요. 혹시 기억에 남는 후기나 댓글이 있을까요?
모든 후기들을 자주자주 찾아보고 있어요. 읽어보지 않은 후기들이 없는 것 같아요. 모든 후기들이 다 저에게 너무 소중해서 하나를 뽑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책에 다 담지 못해서 아쉬웠던 부분들, 혹시 의미가 전해지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던 부분들도 잘 닿은 것 같아서 좋았어요. 올라오는 후기들을 보면서 힘을 많이 얻고 있어요.
제 고백을 향해 반갑게 손 흔들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요즘입니다.
Q.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기뻐해주시고, 너무 자랑스러워 해주셨어요. 그 동안의 제 이야기를 몰랐던 사람들도 제 이야기 보다는 제가 쓴 동화에 집중해주셔서 좋았던 것 같아요. 연락이 끊겼던 아쉬운 인연들과 다시 연락도 닿게 되었고, 그룹홈 선생님은 저보다 많은 책을 사서 주위에 선물하고 계시고, 친구들은 너무 자랑스럽다며 잊을만 할 때쯤 때때로 힘을 주고, 식당을 창업한 친구는 매장에 제 책을 진열해두고 손님들이 관심을 가지면 뿌듯해하더라고요. 또 저의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의 제 가족을 돌봐주셨던 교회 선생님들도 오랜만에 만나 뵙고 좋은 소식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요. 책이 나오고 나서 제가 받는 마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저보다 제 책을 더 소중히 다뤄 주시고 기뻐해주시는 덕분에 마음이 너무 든든해지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Q. 지금 이 순간 책을 읽으며 마음 속 고래를 마주하고 있는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마음 속에 있는 고백이 마음 어딘가에 자꾸만 부딪힌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사라지지 않은채로 사그라드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어린 날의 나를 만나는 꿈을 꾸고 난 뒤에는 그 고래가, 결국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고 만나주지 않은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나 위에 또 다른 내가 겹겹이 쌓여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어요. 그리고 그 어린 날의 ‘나’들은 고백인 것 같아요. 그 고백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어린 날의 나라고 한다면, 소중히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슬프지만 소중하니까요. 독자분들의 마음 바다는 자기 자신과 고백이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예쁘고 반짝이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편한 것들이 더 많았으면, 그 곁을 채워주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 다해 감사드립니다.
Q. 앞으로도 연주 캠페이너의 글을 또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안연주 캠페이너의 글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아직 어떤 글을 써야할지 찾아가는 중이에요.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화책 <나의 어린, 고래에게>를 교보문고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클릭)
안연주 캠페이너는 자신의 마음 속 어린 아이를 용기 내어 마주하고, 그 이야기를 동화로 녹여냈습니다. <나의 어린, 고래에게>를 통해 또다른 보호종료아동들에게, 더 나아가 마음 속 고래를 숨기며 살아온 모든 이에게 따스한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 ‘안연주 프로젝트’는 여기에서 인사를 드리지만 안연주 캠페이너의 삶에서 ‘안연주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입니다. 안연주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셔서, 열여덟 어른 시즌2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열여덟 어른 시즌3와 시즌3 캠페이너에게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송유진
삶과 마음이 담긴 글이라, 우리의 마음에도 더욱 와닿는 것 같아요~ 마음 속 이야기를 기꺼이 꺼내주셔서, 다른 이들에게 용기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